비평

온 생을 비워 밝히는 만월의 마음 — 김달호 시인의 '고목'을 읽고 ㅡ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하다

온 생을 비워 밝히는 만월의 마음 — 김달호 시인의 '고목'을 읽고 2025.10.22
온 생을 비워 밝히는 만월의 마음  — 김달호 시인의 '고목'을 읽고

□ 김달호 시인

고목

시인 김달호

온갖 것 다 내주고

등짝만 남았어도

아무 일 없는 듯이

온 몸을 내던진다

뻥 뚫린 가슴 뒤에는

만월경滿月鏡이 서 있다.

온 생을 비워 밝히는 만월의 마음

— 김달호 시인의 ‘고목’을 읽고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김달호 시인의 시 ‘고목’은 짧지만, 한 생애의 깊은 울림을 담은 시이다. 시는 단 세 연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한 구절 한 구절이 응축된 사유와 통찰로 빛난다. 이 시는 단순히 고목의 외형을 노래한 자연시가 아니라, 삶을 다 내어주고도 끝내 아름답게 서 있는 인간 존재의 초상을 그린 철학시이다.

첫 연의 “온갖 것 다 내주고 / 등짝만 남았어도”는 이미 삶의 전부를 타인에게 내어준 존재의 초연한 태도를 보여준다. 여기서 ‘고목’은 단순한 나무가 아니라, 자식과 세상에 자신을 헌신한 부모의 상징이며, 시대를 견딘 인간의 영혼이다.

시인은 ‘등짝만 남았어도’라는 표현으로, 육체의 소멸과 상처를 초월한 내면의 존엄을 말한다. 인간의 진정한 위대함은 소유가 아니라 ‘내어줌’에 있음을 시는 묵묵히 증언한다.

둘째 연 “아무 일 없는 듯이 / 온 몸을 내던진다”는 참된 사랑의 형상을 보여준다. 이미 다 주었음에도, 여전히 자신을 내어주는 존재의 자세 — 그것은 부모의 사랑이자, 깨달음의 경지다. 세상은 흔히 남김없이 주는 이들을 어리석다 말하지만, 시인은 오히려 그 비움 속에서 가장 큰 충만을 본다. 이 구절은 삶의 중심을 ‘행동으로 드러난 사랑’에 두는 시인의 철학을 잘 드러낸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소란한 선언이 아니라, 아무 일 없는 듯 내던지는 조용한 헌신 속에서 피어난다.

마지막 연 “뻥 뚫린 가슴 뒤에는 / 만월경이 서 있다.”는 이 시의 핵심이다. ‘만월경(滿月鏡)’은 생의 완전함, 청정함, 깨달음을 의미한다. 모든 것을 내어준 뒤에야 비로소 드러나는 투명한 마음, 그 끝자락에서 비로소 ‘달처럼 환한 자기 자신’을 마주하는 것이다. ‘뻥 뚫린 가슴’은 상처와 비움의 흔적이지만, 동시에 그것이 거울처럼 세상을 비추는 통로가 된다. 이 구절은 고통을 통한 구원, 상처를 통한 깨달음의 미학을 상징한다.

시 전체의 정서는 무심(無心)의 사랑과 자각의 철학이 맞닿아 있다. 김달호 시인은 존재의 본질을 사물 속에서 읽어내는 탁월한 감식안을 지녔다. 그의 시는 대상에 대한 예리한 관찰에서 출발하지만, 결국 그 너머의 ‘존재의 빛’으로 나아간다. 느티나무 한 그루 앞에서 인간의 근원적 조건 — 주고, 견디고, 비추는 삶 — 을 발견하는 그의 시적 시선은 곧 ‘관조의 미학’이다.

용인 기흥구 탄천변의 느티나무를 바라보며 시인은 세상의 모든 부모를 떠올렸을 것이다. 다 내어주고도 미소짓는 나무, 세월의 비바람에 깎인 몸을 하늘로 곧게 세운 나무, 그 곁을 지나는 이들에게 쉼을 내어주는 나무. 바로 그것이 시인이 말하는 ‘만월경의 삶’이다. 완전함은 결핍의 끝에서 드러나며, 청정함은 상처의 그늘에서 피어난다.

시인 김달호 시의 미학은 결코 장식적이지 않다. 그는 말을 아끼되, 그 침묵 속에서 더 많은 말을 한다. 고목의 이미지를 통해 ‘비움의 충만’과 ‘희생의 숭고함’을 드러내며, 인간 존재의 본질적 가치를 성찰한다. 그의 시는 일상의 작은 사물로부터 우주적 진리를 길어 올리는 시적 행위이며, 그것은 곧 자각의 시학이다.

“온갖 것 다 내주고 등짝만 남았어도” 여전히 세상을 품는 그 고목처럼, 시인은 말한다. 주는 삶이 가장 빛나는 삶이라고.

시인 김달호 시의 세계는 결국 ‘비움으로 완성되는 존재의 찬가’이며, 그 중심에는 늘 만월처럼 환한 인간의 영혼이 서 있다.

ㅡ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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