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서울의 아침, 영원의 침묵을 건드린 시선 ㅡ 김민정 시인의 시'서울 아침'을 읽고 ㅡ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하다

서울의 아침, 영원의 침묵을 건드린 시선 ㅡ 김민정 시인의 시'서울 아침'을 읽고 2025.10.29
서울의 아침, 영원의 침묵을 건드린 시선 ㅡ 김민정 시인의 시'서울 아침'을 읽고

□ 시인 김민정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서울 아침

시인 김민정

비바람 눈보라에 수백 년 할퀸 자국

인수봉 어깨쯤에 새 한 마리 앉아 있다

바위도 늙어 가냐고 부리 쪼며 말을 건다

서울의 아침, 영원의 침묵을 건드린 시선

ㅡ 김민정 시인의 ‘서울 아침’을 읽고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김민정 시인의 ‘서울 아침’은 단 세 행으로 이루어진 짧은 시이지만, 그 안에 담긴 시간의 깊이와 사유의 밀도는 결코 짧지 않다. 시는 비바람과 눈보라, 수백 년의 풍화 속에서 생겨난 바위의 자국으로 시작한다.

이는 단순한 자연의 묘사가 아니라, 시간의 지층을 드러내는 문명적 은유다. 인수봉이라는 실존적 공간은 서울이라는 현대 도시의 상징이자, 자연과 인간, 영원과 순간이 교차하는 경계의 자리로 제시된다.

그 위에 “새 한 마리 앉아 있다”는 구절은 시의 중심축을 이룬다. 새는 생명의 경쾌한 리듬이며, 동시에 ‘관찰자’의 눈이다. 시인은 그 새의 부리를 빌려 “바위도 늙어 가냐고” 묻는다. 이 한 줄은 시 전체를 꿰뚫는 질문이자, 인간 존재의 본질에 닿은 철학적 성찰이다.

김민정 시인의 시선은 감각의 차원을 넘어 존재론적 직관의 단계에 이른다. 그는 인수봉을 단순한 자연 풍경으로 보지 않는다. 그 바위의 주름과 홈, 침식의 자국에서 인간의 세월과 도시의 역사를 읽어낸다. ‘바위도 늙는다’는 물음은 자연에 대한 의인화가 아니라, 인간이 자연의 일부임을 인정하는 겸허한 고백이다. 자연의 변화와 인간의 생로병사는 결국 같은 리듬 위에서 호흡한다.

시인은 이 사실을 새의 짧은 울음 한 번, 바위의 침묵 한 번에 담아낸다. 그 간결함 속에 서정과 사유가 공존한다.

김민정 시인의 서재에 놓인 ‘인수봉 닮은 수석’은 이 시를 이해하는 열쇠다. 수석은 거대한 자연을 축소한 예술품이며, 손바닥 위의 산이다. 시인은 그 수석의 표면에서 인수봉의 주름을, 그 안에서 인간 존재의 늙음을 본다. 예술은 거대함을 축소하는 행위이고, 축소를 통해 본질을 응시한다. 수석을 바라보며 떠오른 이 시는, 일상의 사물 속에서도 우주의 질서를 읽어내는 시인의 직관을 보여준다. 그가 “기묘하다”고 표현한 이유는, 수석이 단순한 돌이 아니라 생의 미세한 형상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시인 김민정 시의 언어는 절제의 미학으로 빚어졌다. 화려한 수식이나 감정의 과잉 없이, 한 줄 한 줄이 마치 오랜 세월 다듬어진 수석의 면처럼 단단하다.

첫 행의 ‘비바람 눈보라’는 세월의 압축이고, 마지막 행의 ‘부리 쪼며 말을 건다’는 생명의 미세한 떨림이다. 거대한 시간과 찰나의 움직임이 교차하는 이 구조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서사’로 확장시킨다. 바위의 침묵과 새의 질문이 서로에게 닿는 순간, 시는 이야기의 생명을 얻는다. 새와 늙은 바위의 대화, 그야말로 서사다.

이 시의 탁월함은 바로 그 ‘서사의 압축성’에 있다. 사건이 없지만 이야기의 흐름이 있다. 인수봉의 어깨에 앉은 새는 순간적으로 등장하지만, 그 시선이 머무는 동안 수백 년의 세월이 지나간다. 바위의 주름은 역사이고, 새의 부리는 시간의 척도다.

이 대비가 만들어내는 긴장감은 인간의 삶과도 닮았다. 세월의 바람을 견디며 살아온 이들이 어느 날 문득 자신의 늙음을 자각하는 순간, 그 또한 이 시의 새처럼 묻는다. “나도 늙어 가는가?”

김민정 시인의 시는 도시의 아침을 배경으로 하지만, 그 본질은 인간의 내면 풍경에 가깝다. 인수봉은 서울의 상징일 뿐 아니라, 한 개인의 정신적 봉우리이기도 하다. 그 위에 앉은 새는 시인의 또 다른 자아이며, 동시에 우리 모두의 의식이다.

시인은 세계의 사물을 보는 방식이 달라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속의 침묵과 말을 동시에 듣는 것—그것이 김민정 시의 시선이다.

‘서울 아침’은 짧지만 완결된 우주다. 시간의 풍화 속에서도 사물은 자신만의 언어를 품고 있고, 시인은 그 언어를 번역해낸다. 그가 가진 ‘매의 눈’은 바로 그 번역의 감각이다. 매는 멀리서도 본질을 포착한다.

김민정 시인은 그런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눈앞의 돌에서 우주의 숨결을 읽고, 한 마리 새의 움직임에서 존재의 시간을 포착한다.

요컨대, 이 작품은 자연의 변화를 빌려 인간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며, 동시에 서울이라는 도시의 무게를 견디는 시적 선언문이다.

김민정 시인은 이 짧은 시로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의 바위는 지금 어떤 자국을 남기고 있는가.”

그 물음은 아침의 공기처럼 차갑고 투명하다. 그 투명함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자신이 걸어온 세월의 자취를 발견하게 된다.

이처럼 ‘서울 아침’은 단 세 줄로 한 생애의 철학을 응축한, 시적 절제의 정점이다.

ㅡ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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