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

엘리베이터의 예절 ― 짧은 침묵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초상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엘리베이터의 예절 ― 짧은 침묵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초상 2025.11.03
엘리베이터의 예절 ― 짧은 침묵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초상

엘리베이터의 예절

― 짧은 침묵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초상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순간, 작은 사회가 만들어진다.

그 안에는 노인도ㆍ어린이도ㆍ학생도, 낯선 사람도 함께 있다.

모두가 같은 공간에 있어도, 누구도 서로를 보지 않는다.

눈은 숫자판을 향하고, 마음은 제각각 다른 곳에 있다.

그곳은 ‘침묵의 예절’이 지배하는 가장 기묘한 장소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사람들은 갑자기 조용해진다.

대화는 끊기고, 표정은 굳는다.

누군가의 숨소리조차 어색하다.

버튼을 누르는 손끝만이 유일한 움직임이다.

우리는 짧은 이동 시간 동안

마치 서로를 모르는 척해야만 예의 바른 시민이 되는 것처럼 행동한다.

누군가는 먼저 타인의 눈치를 본다.

“몇 층이십니까?”라는 물음 하나조차

요즘엔 용기 있는 말이 되었다.

대신 눈짓으로, 손짓으로,

‘대화 없는 소통’을 시도한다.

이 작은 공간은 문명사에서 가장 성공적인 ‘무언의 협약’의 현장이다.

그 침묵 속엔 수많은 감정이 숨어 있다.

누군가는 지각의 불안에,

누군가는 냄새에,

누군가는 낯선 시선에 긴장한다.

엘리베이터의 거울은 말없이 그 불편함을 비춘다.

그 거울 속엔 서로를 피하는 인간들의 초상이 있다.

가끔은 엘리베이터가 갑자기 멈춘다.

그 몇 초의 정적 속에서

사람들은 서로를 바라볼 수밖에 없다.

눈빛이 부딪히고, 어색한 미소가 피어난다.

그 순간 비로소 인간이 ‘존재’로 복귀한다.

고장난 엘리베이터가 외려

우리에게 가장 진짜다운 순간을 선물하는 셈이다.

문이 다시 열리면, 모두는 서둘러 내린다.

누구도 인사하지 않는다.

문 닫히기 전,

어쩌면 한 사람쯤은 속으로 이렇게 중얼렀을 것이다.

“다음에 또 만나요.”

그 말은 결코 입 밖으로 나오지 않지만,

그 안엔 묘한 따뜻함이 있다.

엘리베이터는 짧은 인간극장이다.

그 안에서 우리는 침묵의 예절을 배우지만,

어쩌면 그 예절이 우리를 더욱 외롭게 만든다.

문이 닫히고 다시 열릴 때마다,

인간은 관계의 높낮이를 오르내린다.

ㅡ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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