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임솔내 시 〈내 생애 가장 소중한 이에게〉 를 읽고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하다
시인 임솔내 시 〈내 생애 가장 소중한 이에게〉 를 읽고 2025.11.10
□ 임솔내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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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가장 소중한 이에게
시인 임솔내
짧든 길든
인생을 살다 갈 그 집을 지을 때
누에는 창자에서 실을 뽑고 제비는 침을 뱉어 진흙을 반죽하며
까치는 풀을 물어 나르느라 입이 헙니다. 하물며 사람으로 사는 집, 그것도
가슴을 헐어 詩집을 짓고 산 삶은 오죽했으랴.
시인 노릇하던 나는 이제 마지막 영혼까지 헐어내고
아쉬운 작별을 준비합니다.
두 손으로 부여잡은 한 가닥 삶의 줄을 놓으려 합니다.
저승살이 길을 떠납니다.
내 소중히 사랑하는 이여!
내 죽어지거든 가장 요염한 시 한 수 걸어 주십시오.
국화꽃 대신, 방랑하던 내 눈동자 대신, 활활 불사르는 축제처럼 말입니다.
한 가닥도 후회 없이 살고 간다는 몸짓으로 너불너불 연기로
창공을 피어오르게 해 주십시오.
어느 한 곳 금 긋지 마시고, 가두지 마시고
단정학丹頂鶴보다 더 붉은 딱 한 개의 만장으로만 배웅해 주십시오.
가 닿아야 할 길이 너무 깜깜할 것 같지 않습니까
시간이 멈춘 곳, 거기 구름 몇 점 나뉘어져 너불거리면
제 손짓이라 여기시고
그때쯤은 나를 향해 띄우던 소식지, 순서지, 초대장 멈추어 주십시오.
얼마 전까지 생전에 받은 님의 환희를 끝으로 내 빨간 우체통은 문을 닫습니다.
인사동 어드메서 만나자는 러브콜 문자도 이제는 전송 말아 주십시오.
제 손전화는 오랜 시간을 방전일 테니까요
님을 향해 흘릴 눈물은 손이 자주 닿는 세 번째 책갈피에
끼워 두었습니다.
짙은 녹음, 강렬한 태양 같은 우리의 열정도, 연극을 즐기던
체취도 풍상으로 흐려지면 아주 가끔 젖은 언어가 되어 가슴 밭에
차르르 차르르 내릴 겁니다.
감동, 화해, 용서, 뜨거운 감사, 추억을 간직한 물건들 다 놓고 갑니다.
그러해도 너무 슬퍼 마십시오.
많이 사랑했으므로 애써 이승의 유쾌한 이별을 꿈꿉니다.
허나, 내 소중한 이여!
님 일랑 블타바강가에 지지 않는 천문시계처럼 늙지도 죽지도 마시옵소서.
내 가서 닿을 그곳에서 생전에 저축한 사랑마저 동이 나면 애써
견디다가 그래도 님이 목 메이게 그리우면 내 다시 올랍니다.
꽃으로, 바람으로 투명한 햇살로 반짝이는 별빛으로,
아니, 내 떠날 때 보다 더 요염한 시 한수 들고 오리다, 님 뵈오러.
모두가 떠나가고 다시 또 오니까
내 생애 가장 소중한 이여, 이제 그만 안녕,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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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임솔내 시 〈내 생애 가장 소중한 이에게〉 를 읽고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시인 임솔내,
그는 시어 조탁의 장인이다.
그의 시는 깊다. 묵직하다.
숙성된 생각의 덩어리다.
임솔내 시의 언어는 생의 문턱에서 건네는 마지막 인사처럼 고요하고 숭고하다. 이 시는 단순한 이별의 진술이 아니라, ‘죽음’을 삶의 연장선으로 받아들이는 영혼의 성숙한 독백이다. 시인은 삶을 짓는 일을 ‘집 짓기’에 비유하며, 누에의 실, 제비의 침, 까치의 부지런함을 통해 한 생애의 결을 실감 나게 엮는다. 시집을 짓는 행위가 곧 생애의 요약이며, 그 집은 육체가 아니라 ‘언어의 집’임을 스스로 고백한다. 그는 마지막 숨결조차도 시로 남기려는 시인, 존재의 한 끝까지 미학으로 견디는 사람이다.
‘가 닿아야 할 길이 너무 깜깜할 것 같지 않습니까’라는 물음에서, 시인은 이미 사후의 어둠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길을 환하게 밝히는 건 자신이 남긴 시의 불빛이라 믿는다. ‘국화꽃 대신, 방랑하던 내 눈동자 대신’이라는 대목은 시인의 혼이 한 편의 시로 환생하길 바라는 간절한 소망이다. 삶이 한 줄의 시라면, 죽음은 그 시가 완성되는 마지막 행일 것이다.
이 작품의 정점은 마지막 연의 회귀다. “꽃으로, 바람으로, 투명한 햇살로 반짝이는 별빛으로” 돌아오겠다는 구절은 윤회의 시학이자 사랑의 영속성에 대한 선언이다. 삶은 떠남으로 닫히지 않고, 다시 피어남으로 이어진다. 시인은 그 진리를 시적 언어로 증명한다. 슬픔을 비탄으로 흘리지 않고, ‘유쾌한 이별’로 승화시키는 그의 태도는 깊은 불교적 관조와 기독교적 사랑이 교차하는 지점에 서 있다.
임솔내의 시는 눈물 속에서도 웃음을 품는다. 절망을 끌어안고도 절망의 모양을 노래하지 않는다. 대신 ‘너불너불 연기로 창공을 피어오르게 해 달라’는 청처럼, 존재를 한 줄기 향기로 바꾸어 올린다. 이때의 언어는 삶의 무게를 덜어내고, 오롯이 ‘빛의 기운’으로 맑아진다.
그의 시어에는 묵향처럼 오래된 우리말의 향이 배어 있다. ‘헙니다’, ‘너불너불’, ‘차르르’ 같은 고유어들은 시인의 영혼을 가장 순수한 울림으로 드러낸다. 이 단어들이 모여 만드는 리듬은 단순한 의성어가 아니라, 영혼의 숨결이다. 세속의 언어가 닿을 수 없는 곳에서, 그는 오직 우리말의 숨으로 시를 빚는다.
시인 임솔내 시의 미의식은 ‘끝까지 아름답게 살다 가는 일’이다. 그는 죽음을 삶의 반대편으로 두지 않는다. 죽음 또한 살아 있음의 또 다른 형식으로 받아들인다. 이 시는 단 한 편으로도 시인의 인생 전부를 설명한다. 그것은 고통의 기록이 아니라, 감사의 노래이며, 절망의 고백이 아니라, 해탈의 미소다.
마지막 인사의 음성 속에서 들리는 건 ‘사랑’이라는 하나의 단어다. 그 사랑은 집을 짓는 노동이자, 언어를 새기는 기도이며, 자신을 다 바쳐도 남는 유일한 흔적이다. 시인은 그 사랑으로 스스로를 태우고, 다시 그 재로 시를 피운다.
임솔내 시인의 시 앞에서 독자는 무릎을 꿇게 된다. 그것은 경배가 아니라, 경외다. 그의 시는 죽음을 통과한 생의 찬미이며, 모든 인간이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아름다운 이별’의 교본이다. 이 시를 덮고 나면, 남는 건 단 한 줄의 숨결이다.
“모두가 떠나가고 다시 또 오니까.”
그 한마디가 곧 생의 순환이고, 시의 윤회다. 시인 임솔내의 시는 떠나면서도 돌아온다. 그가 남긴 언어의 집은 오늘도 불빛처럼 우리 마음에 걸려 있다.
ㅡ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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