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

일상은 가장 깊은 수행이다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일상은 가장 깊은 수행이다 2025.11.10
일상은 가장 깊은 수행이다

일상은 가장 깊은 수행이다

사람들은 깨달음을 먼 산에 있다고 생각한다.

고요한 절간이나, 깊은 산속, 혹은 세상의 소음이 닿지 않는 어딘가에서만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

진짜 수행은 그곳에 있지 않다.

그건 매일 같은 시간에 눈을 뜨고,

사람을 만나고, 밥을 짓고, 하루를 다독이는 일상 속에 있다.

삶은 이미 수행의 형식이다.

매일 반복되는 일들은

지루한 습관이 아니라 마음을 단련하는 길이다.

아침에 물을 끓이고, 신발을 가지런히 놓고,

길가의 낙엽을 주워 옆으로 옮겨놓는 일.

그 모든 것이 수행의 손길이다.

큰 뜻을 세우지 않아도,

한 걸음 한 걸음 안으로 향하면

그곳이 곧 도의 자리다.

수행은 ‘무엇을 더 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덜 하는 것’이다.

말을 덜 하고, 욕심을 덜 내고,

스스로를 조금 덜 앞세우는 일.

그렇게 덜어내다 보면

삶의 본모습이 보인다.

물결이 잔잔할 때 비로소

하늘이 비치듯이.

세상은 바쁘다.

모두가 서두르고,

하루는 늘 짧다.

마음은 언제나

한가로이 숨 쉬는 법을 알고 있다.

그 한가로움을 잃지 않는 사람이

가장 깊은 수행자다.

그는 한 모금의 물에도 감사하고,

한 줄기 바람에도 고개를 숙인다.

그 단순함이 평화의 시작이다.

수행이란 특별한 자리에 앉아 눈을 감는 일이 아니다.

그건 눈을 뜬 채 세상을 바라보되,

그 안에서 흔들리지 않는 일이다.

마음이 고요하면

시장통의 소음 속에서도 산사의 종소리가 들린다.

마음이 시끄러우면

새벽의 침묵 속에서도 천둥이 친다.

결국 수행의 장소는 마음의 상태에 달려 있다.

일상은 스승이다.

세상의 모든 일은 가르침이 된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나를 흔들 때,

그 흔들림 속에서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나를 본다.

불편함이 찾아올 때,

그건 마음의 거울을 닦으라는 신호다.

그 신호를 피하지 않고 마주하는 것,

그것이 수행이다.

밥을 지을 때도 마음이 드러난다.

불의 세기를 조절하는 손끝,

끓는 소리를 듣는 귀,

그 모든 감각이 깨어 있는 시간.

그 깨어 있음이 바로 명상이다.

그 속에는 결심도, 다짐도 없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삶만이 있다.

그 평범함이 가장 깊은 수행의 형식이다.

사람은 종종 묻는다.

“언제 마음이 편해지나요?”

그때마다 대답은 같다.

“이미 편안하다.”

마음이 어지러운 건 세상이 복잡해서가 아니라,

내가 아직 ‘지금’을 믿지 못해서다.

지금 이 순간이 완전하다는 걸 받아들이면

평화는 저절로 찾아온다.

그 깨달음이 바로 일상의 수행이 준 선물이다.

살다 보면 크고 작은 일들이 생긴다.

기쁨이 오고, 슬픔이 오고,

사람이 떠나고, 다시 누군가가 온다.

그 모든 흐름을 억지로 바꾸지 않고,

그냥 지켜볼 수 있을 때

그대는 이미 수행 중이다.

삶은 늘 흘러가지만,

그 안의 마음만은 언제나 제자리에 있다.

저녁이 내려앉고, 하루가 저문다.

창문을 닫으며

나는 오늘도 마음속으로 중얼거린다.

“이 하루면 충분하다.”

그 한마디가 수행의 완성이다.

내일의 걱정은 오지 않았고,

오늘의 시간은 이미 나를 채웠다.

수행은 앉음이 아니라 걸음이고,

깨달음은 먼 하늘이 아니라 매일의 밥그릇 속에 있다.

일상은, 가장 조용한 절이다.

ㅡ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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