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민정 ― 붉음의 철학, 익어가는 존재의 미학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하다
시인 김민정 ― 붉음의 철학, 익어가는 존재의 미학 2025.11.11
□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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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단풍
시인 김민정
풀벌레 울음소리 산기슭 풀어낸다
제 갈 길 가다 말고 주춤대던 갈바람이
사는 건 혼돈이라고 어둠을 부추긴다
골짜기 흘러가는 계곡물 지즐대고
온 산에 달빛 들어 색이 색을 덧입힌다
할 말을 삼켜가면서 나도 한창 익어갔다
더 이상 참지 못해 온몸으로 토해내는
내 안의 속울음이 어찌 이리 붉었으랴,
이제는 눈을 감아도 환하게 탈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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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김민정
― 붉음의 철학, 익어가는 존재의 미학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시인 김민정 시세계는 계절의 표정을 빌려 인간의 내면을 말하는 시학이다. ‘단풍단풍’은 단순한 자연 묘사가 아니라, 삶의 심층을 불태우는 존재의 변주곡이다. 가을의 붉음은 단지 풍경의 색이 아니라, 한 생이 자신을 태워 완성으로 가는 영혼의 불빛으로 읽힌다.
첫 행 ‘풀벌레 울음소리 산기슭 풀어낸다’는 삶의 미세한 진동을 감각으로 끌어내는 섬세한 시작이다. 풀벌레의 울음이 밤을 열 듯, 시인은 내면의 문을 열어젖힌다.
‘제 갈 길 가다말고 / 주춤대던 갈바람’은 흔들림의 은유다. 인생의 길에서 멈칫하는 순간, 그 갈팡질팡한 불안조차 시인은 삶의 진실로 수용한다. 그때 ‘사는 건 혼돈이라고 어둠을 부추긴다’는 구절이 삶의 철학을 드러낸다. 시인 김민정의 시는 언제나 혼돈 속에서 빛을 찾는다. 그는 질서의 언어가 아니라, 혼돈 속의 리듬으로 존재를 말한다.
‘골짜기 흘러가는 계곡물 지즐대고’는 자연의 역동성이자 내면의 불안이 흐르는 장면이다. ‘온산에 달빛 들어 색이 색을 덧입힌다’는 구절에서는 변화의 아름다움이 완성된다.
이 구절은 단풍의 시각적 장관을 넘어, 인생이 서로의 색을 덧입으며 성숙해가는 관계의 미학을 함축한다. 시인 김민정의 시는 언제나 혼자 존재하지 않는다. 자연, 빛, 바람, 달, 그리고 사람 ― 모든 것이 서로 스며들어 하나의 ‘익음’을 이룬다.
‘할 말을 삼켜가면서 나도 한창 익어갔다’는 시인의 고백은 존재의 자기 연소를 담고 있다. 단풍이 자신을 태워 빛을 남기듯, 시인은 침묵 속에서 익어간다.
이는 단순한 인내가 아니라 삶의 내적 발효다. 언어를 삼키는 행위는 곧 더 깊은 언어의 생성이다. 그는 ‘말하지 않음’으로써 더 큰 시를 말한다.
마지막 연에서 시는 절정에 이른다. ‘더 이상 참지 못해 온몸으로 토해내는 내 안의 속울음’ ― 여기서 붉음은 단풍의 색이 아니라 영혼의 울음이다. 그것은 인생이 익을 만큼 익었을 때 터져 나오는 본질의 진실, 생의 고백이다. ‘어찌 이리 붉었으랴, 이제는 눈을 감아도 환하게 탈 수밖에’ ― 죽음조차 빛으로 승화되는 초월의 순간이다. 이때 단풍은 생의 종말이 아니라 완성의 상징이 된다.
김민정 시인의 시 세계는 소멸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외려 타오름을 통해 사라짐을 긍정한다. 그에게 단풍은 죽음이 아니라 생의 환희이며, 낙엽은 끝이 아니라 귀향이다. “불타야만 남는 것이 있다.” 이 한 문장이 그의 시학을 요약한다.
김민정 시인의 작품미의식은 ‘자연 속의 인간, 인간 속의 자연’을 향한 동체적 사유에 있다. 그는 자연을 바라보는 시인이 아니라, 자연과 함께 익어가는 시인이다. 붉음은 그에게 사랑이자 회한이며, 신앙이자 구원이다. 삶을 찢는 고통조차 그는 색으로 빚는다.
하여, 그의 시는 늘 ‘단풍단풍’ 피어난다 ― 불타오르는 듯 고요하고, 사라지는 듯 환한, 인간 존재의 찬란한 빛으로.
ㅡ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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