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애 시인의 ‘복사꽃 길’ — 담백하게 조절된 ‘교육자의 숨결’ ㅡ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하다
유동애 시인의 ‘복사꽃 길’ — 담백하게 조절된 ‘교육자의 숨결’ 2025.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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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사꽃 길
시인 유동애
창밖에 보이는
자전거길에
복숭아꽃이 피었다.
햇살이 물결치던 어느 날,
그 길을 걸어보리라
내 안의 봄이 아직 젖어 있을 때.
비 갠 오후,
잎들만 바람에 흔들렸다.
꽃이 머물던 자리마다
잠시의 빛이 스러진다.
아, 피어 있는 날들은
저토록 한순간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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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애 시인의 ‘복사꽃 길’
— 담백하게 조절된 ‘교육자의 숨결’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유동애 시인의 작품을 읽으면, 그의 삶에서 자연스레 배어 나온 ‘사람을 향한 마음결’이 가장 먼저 다가온다. 오랜 세월 학생들과 부대끼며 살아온 그의 경험은 시 속에서 과장되지 않고 잔잔한 온기로 스며든다.
교육자로서의 삶을 드러내려 하지 않으면서도, 그가 사람을 바라보던 따뜻한 시선, 마음의 작은 움직임을 놓치지 않던 섬세한 감각은 시어 곳곳에 은은하게 배어 있다.
바로 이 담백한 따뜻함이 시인 유동애 시의 진면목이며, 그의 미학이 지향하는 바이다.
‘복사꽃 길’은 이러한 그의 심성이 가장 자연스럽게 드러난 작품이다. 창밖 자전거길에 피어난 복숭아꽃을 바라보는 순간, 시인은 일상의 잔잔한 아름다움을 가장 순정한 언어로 받아 적는다. 봄이라는 계절을 표현하면서도 결코 화려하게 꾸미지 않는다.
그는 ‘본 것만 쓰고, 느낀 만큼만 남기는’ 시적 태도를 지니고 있다. 삶을 가르치는 사람으로 살아왔기에 마음의 소란을 줄이고 본질 가까이 다가가는 법을 몸에 익힌 것이다. 그의 절제된 언어는 바로 그 경험에서 비롯된 고요한 통찰의 산물이다.
“그 길을 걸어보리라 / 내 안의 봄이 아직 젖어 있을 때.”
여기서 시인은 계절의 변화를 마음의 움직임으로 투영한다. ‘내 안의 봄’이라는 표현은 누군가와 마주하며 얻은 작은 감동, 관계 속에서 다시 살아나는 순한 감정들을 은유한다. 그는 일상의 순간을 통해 마음의 계절을 읽어내는 시인이다. 삶과 사람을 오래 지켜본 이에게서만 나올 수 있는 부드러운 울림이 이 구절에 깃들어 있다.
비가 갠 오후,
바람에 겨우 흔들리는 잎만 남은 장면은 미학적으로도 깊다. 시인은 꽃이 진 자리를 슬픔으로만 보지 않는다. “꽃이 머물던 자리마다 / 잠시의 빛이 스러진다”는 표현에는 사라짐을 조용히 받아들이는 마음의 자세가 담겨 있다. 아이들이 성장해 스쳐 지나가듯, 인생의 많은 순간도 잠시 머물다 흩어지지만, 그 스러짐 또한 한때 빛이었음을 아는 마음. 유동애 시인은 이 섬세한 이치를 감정에 기대지 않고 담담하게 건네며,그리고 독자로 스스로 여운을 느끼게 한다.
마지막 구절 “아, 피어 있는 날들은 / 저토록 한순간이었구나”에는 시인의 삶 전체와 맞닿은 깊은 성찰이 녹아 있다. 이 문장은 지나치게 감정을 밀어붙이지 않고, 단 한 번의 깨달음처럼 조용히 떨린다. 꽃이 피어 있는 시간도 짧고, 사람이 살아가는 순간들도 결국은 덧없지만, 시인은 그 짧음을 아름다움으로 전환한다. 머무름보다 스러짐을 더 넓은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성숙한 온기다.
유동애 시인은 ‘가르치는 사람’이기 이전에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그의 시가 따뜻한 이유는 교육자의 명칭 때문이 아니라, 사람에게 깊이 기대어 살아온 그의 마음이 시 속에서 자연스럽게 숨을 쉬기 때문이다. 화려함도, 과장된 감흥도 없이, 그는 존재의 가장 순한 부분을 꺼내어 보여준다.
‘복사꽃 길’은 봄의 흔들림을 빌려 삶의 진실을 말하는 시이다.
덧없음 속에서도 빛을 보고, 스러짐 속에서도 품을 남기는 그의 시적 태도는,
조용하지만 오래 남는 울림으로 독자의 마음을 적신다.
ㅡ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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