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라는 한 장의 표 ㅡ청람 김왕식
인생이라는 한 장의 표 2025.11.19
■
인생이라는 한 장의 표
사람은 태어날 때 누구도 왕복표를 쥐고 오지 않는다. 송대관이 손에 쥔 “차표 한 장”은 바로 그 불가역의 숙명을 노래한 것이었다. 우리는 모두 편도(片道)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늘 돌아올 수 있을 거라 착각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인생은 돌아오는 길이 없다. 한 번 지나간 장면은 다시 상영되지 않고, 지나친 시간은 다시 책장을 펼쳐 주지 않는다.
현철은 청춘을 돌려달라고 절규했다. 그러나 청춘은 되돌아오는 방문객이 아니다. 잃어버린 강물은 다시 손에 담길 수 없고, 떠나간 계절은 다시 발소리를 남기지 않는다. 그가 평생 토해낸 노래들은 결국 “돌아갈 수 없음”이라는 인간의 슬픔을 대신 울부짖어 준 것이었다. 현미는 떠날 때 말없이 가겠다고 노래했다. 삶은 떠나는 방식조차 예고하지 않는다. 누가 청을 넣은 것도 아닌데, 그는 정말 말없이 떠났다. 최희준은 인생을 나그네길이라 했다. 그 말대로 그는 잔바람 같은 미소를 남기고 훌쩍 사라졌다. 사람의 삶은 결국 머무름보다 떠남으로 완성되는지도 모른다.
배호는 푸르던 잎새 하나를 그리워하다 마지막 잎새만 남겨 놓고 갔다. 차중락은 찬바람에 낙엽 날리듯 흔적을 떨어뜨리고 떠났다. 누군가는 노래라고 말하지만, 사실 그것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진 근원적 허무와 그 너머의 희망을 노래한 대서사시다. 노랫말 속엔 인생의 슬픔이 숨어 있고, 인생의 이치는 이미 오래전부터 그 속에서 귀띔되어 왔다.
운동을 한다고 오래 사는 것도 아니고, 병을 고치는 의사라고 더 오래 사는 것도 아니다. 약초를 파는 이들이 장수했다는 소식도 듣기 어렵다. 점을 보는 이들 중 형통한 삶을 산 사람도 드물다. 인간의 수명은 노력보다 더 큰 힘에 실려 있다. 생명의 길이는 뭔가 다른 손이 결정하는 듯하며, 우리는 단지 그 길 위를 성실하게 걸어갈 뿐이다. 늦게 가고 일찍 가는 것은 순서가 없고, 오래 머무는 것과 짧게 머무는 것 사이에도 의미의 경중은 없다. “때가 되면 간다”는 말은 잔인하지만 진실이다. 삶은 스스로를 완성하기 위해, 반드시 끝을 향해 가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렇기에 더욱 중요한 일은 ‘어떻게 떠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가’이다. 오승근이 노래했던 “있을 때 잘해”는 단순한 유행가의 가사가 아니라, 인간이 남기고 갈 수 있는 가장 지혜로운 말이다. 결국 삶은 후회와 미련, 미완의 바람투성이지만, 그 속에서도 서로를 아끼고, 사랑을 주고받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떠나는 순간에도 환하게 웃을 수 있다.
산이 부르면 산으로 가고, 바다가 손짓하면 바다를 향해 걸어가면 된다. 하고 싶었던 취미는 미루지 말고 즐기면 된다. 누군가의 눈치를 보며 살기엔 남은 날이 그리 넉넉지 않다. 마음이 이끄는 곳에 서고, 몸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며, 삶의 고요와 기쁨을 온전히 맛보아야 한다. 인생은 거대한 목표보다 작은 순간들의 반짝임으로 완성된다. 잘 살았던 하루가 모여 한 생이 되고, 잘 웃었던 순간들이 모여 한 영혼의 결을 만든다.
끝이라는 단어가 삶을 위협하는 순간에도, 인간은 여전히 다음 계절을 기다린다. 어둠 아래서도 새벽을 믿고, 마지막 날까지 작은 기쁨을 움켜쥔다. 그것이 인간이라는 종이 가진 위대한 힘이다. 그러니 두려워 말고, 억지로 붙잡지 말고, 언젠가 다 내려놓아야 할 그 순간이 오기 전까지 뜨겁게, 기쁘게, 깊게 살아가면 된다. 인생은 오래 사는 데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살았는가에 있다.
남은 길, 오롯이 우리 마음의 결로 채워가자. 가볍게 웃고, 담백하게 사랑하고, 후회 없이 떠날 수 있도록. 결국 인생은 한 장의 표에 적힌 단 한 번의 여행이다. 그러니, 있을 때 잘하고, 사랑할 때 더 많이 사랑하며, 우리에게 남은 빛을 아름답게 쓰고 가면 된다.
□
마지막 표를 건네는 순간
저무는 빛살 끝에서
한 생의 숨결이 조용히 반짝인다.
가진 것보다 남긴 것이
더 깊은 무늬로 남고,
손에 쥔 시간은
언제나 살던 만큼만 허락된다.
떠남은 사라짐이 아니라
다시 빛으로 돌아가는 길,
가벼운 미소 한 줌 남기고
흔들림 없이 문 하나를 열 때
삶은 비로소 완성된 별이 된다.
ㅡ청람 김왕식
댓글
로그인 없이 바로 남길 수 있습니다. 나중에 본인이 수정·삭제하려면 이 댓글의 비밀번호를 정해 주세요. 서로 예의를 지켜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