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김미형 시인의 시 '차를 마시다'를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하다

김미형 시인의 시 '차를 마시다'를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하다 2025.11.24
김미형 시인의 시  '차를 마시다'를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하다

□ 김미형 시인

□ 지하철에 게재된 김미형 시인의 시 ‘낮달’

차를 마시다

시인 김미형

햇볕과 바람

비와 달빛

별빛을 머금고 마주 앉아 사람,

그 마음을 마신다

차를 마시는 행위가 마음을 이해하는 방식이 될 때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김 미형 시인은 깊고 그윽하다.

그의 시를 마주하는 순간, 고즈넉한 둔덕 위 산사로 이어지는 오솔길에 들어선 듯 마음의 발걸음이 저절로 낮아진다.

그의 시는 소멸이나 상실, 격정의 파문이 아니라, 일상 속 가장 고요한 순간에 귀 기울이는 데서 출발한다. 고요함이 단조로움으로 흐르지 않는 이유는, 그가 삶을 ‘관찰’하는 시인이 아니라 ‘들어’ 보는 시인이기 때문이다. 세상을 설명하는 대신, 존재의 침묵을 비워 받아들이는 태도 — 이것이 김 미형 시학의 첫 원리다.

‘차를 마시다’는 그 원리가 가장 순도 높게 구현된 작품이다. 차를 마시는 단순한 장면 속에서 시간의 흐름, 자연의 감각, 타자의 체온, 존재의 결이 한 자리에 앉는다. “햇볕과 바람 / 비와 달빛 / 별빛을 머금고”라는 첫 구절은 자연의 나열이 아니라 감정의 스펙트럼을 드리운다. 계절과 시간, 빛과 그늘, 온도와 바람결이 마음의 움직임으로 전환된다. 자연을 통해 마음을 비유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자연을 대신하는 시학이다.

여기서 “머금고”라는 동사는 결정적인 미학적 윤곽을 만든다. 자연은 들이치지 않고, 파고들지 않는다. 차 안에, 혹은 사람 안에 조용히 머문다. 감정을 밀어붙이지 않고 가라앉히며, 언어의 절제가 곧 밀도의 근원이 된다. 하여, 김 미형의 시는 짧으나 얕지 않고, 간결하지만 허전하지 않다. 말을 줄였으나 마음의 떨림은 오히려 증폭된다.

이어지는 “마주 앉아 사람, / 그 마음을 마신다.”라는 구절에서 시인은 관계의 본질을 낯설도록 깊은 차원으로 끌어올린다. 보통 이해는 말로, 사랑은 행동으로, 가까움은 감정의 표현으로 증명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이 시에서 관계는 머무름·경청·수용으로 완성된다. “마신다”라는 동사는 압권이다. 이해를 분석이 아니라 흡수로, 소유가 아니라 비움으로, 정복이 아니라 온전한 수용으로 재해석한다. 타인을 받아들인다는 것이 곧 자신을 내놓는 일임을 시는 고요하게 말한다. 이것이 이 작품이 지닌 윤리적 온기다.

더 뛰어난 점은 사랑 · 치유 · 관계 · 포용 같은 거대한 단어를 단 한 번도 쓰지 않고서도 그 모든 것을 담아낸다는 데 있다. 감정의 장식을 지우고 나면 감정의 핵심이 더 선명해진다.

이것이 김 미형의 언어관이다. 언어가 감정을 선도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이 언어 내부에서 가라앉아 투명해지는 방식. 그래서 그의 시에는 울림이 오래 남는다.

‘차를 마시다’의 ‘마주 앉은 사람’은 특정 인물이 아니다. 가족일 수도, 친구일 수도, 연인일 수도, 과거의 나 혹은 기다리고 있는 나일 수도 있다. 대상을 비워둔 것은 이 장면이 하나의 관계가 아니라 모든 관계를 끌어안는 은유임을 암시한다.

결국 이 시는 차를 마시는 장면을 노래한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서로에게 도달하는 가장 조용한 방식을 노래한 것이다.

그렇다면 김 미형 시인의 삶의 철학은 분명해진다. 거창한 꿈보다 오늘의 온기, 장엄한 서사보다 소박한 정서, 소란한 언어보다 선한 침묵. 존재는 극적 장면이 아니라 시간이 오래 스쳐간 자리에 남아 있는 미세한 온기로 빛난다. 그의 시는 우리가 잃어버린 감정의 떨림을 다시 끌어 올린다.

따라서 ‘차를 마시다’는 곧 마음을 마시는 행위에 대한 은유적 선언이다.

차가 식어가는 동안 관계는 익어가고, 향이 퍼지듯 마음이 건너가며, 존재가 존재에게 스며든다. 시를 다 읽고 나면 조용히 깨닫게 된다.

세상은 거대한 배려로 바뀌는 것이 아니라

단 한 번, 누군가의 마음을 진심으로 마셔주는 순간으로 바뀐다는 것을.

—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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