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꺼내어 빛을 만나야 비로소 사랑이 된다 ㅡ청람 김왕식
사랑은 꺼내어 빛을 만나야 비로소 사랑이 된다 2025.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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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꺼내어 빛을 만나야 비로소 사랑이 된다
청람 김왕식
세상에는 스스로 완성되는 것이 거의 없다.
움직이지 않는 종은 그저 금속의 둔한 형상일 뿐이며, 누구의 손끝도 닿지 않은 노랫말은 공중을 떠다니는 허공의 씨앗과 같다. 사람의 마음속에 오래 머물러 있는 사랑 또한 그렇다. 품고만 있는 정은 시간이 흐를수록 빛을 잃고, 주지 못한 마음은 어느 순간 주고 싶었던 이유마저 흐릿하게 만든다.
새벽녘, 마을 어귀의 오래된 당산나무에 바람이 스치면, 나뭇가지 사이에서 작은 울림이 퍼진다. 새들은 그 떨림을 알아채고 하루를 연다. 울림이 있기 때문에 시작되는 하루가 있고, 건네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태어나는 관계가 있다. 사람의 속마음도 울림이 없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가슴 깊은 곳에서 소리 없이 반짝이는 마음 하나가 제 자리를 찾아 움직일 때, 비로소 무엇인가 시작된다.
사랑도 같은 이치다.
아무리 값지고 깊은 마음이라도 안쪽에 머문 채로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 마치 흙 속에 묻힌 씨앗이 햇볕을 찾지 못하면 영영 싹을 틔우지 못하는 것처럼, 주지 않은 사랑은 자라지 않는다. 사람들 사이의 온기는 ‘나의 마음을 건네는 행위’에서 비롯된다. 나눔이 없으면 사랑은 이름만 남고, 실제의 얼굴을 갖추지 못한다.
이따금 우리는 마음을 꺼내 보이길 주저한다.
거절이 두려워서, 상처가 염려되어서, 혹은 전한 마음이 가벼워 보일까 봐 깊숙이 감추기도 한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 확인하게 되는 것은, 주지 않아서 잃은 것이 더 크다는 사실이다. 주어지는 마음이 누군가를 바꾸기도 하지만, 주는 사람 역시 그 마음을 통해 더 단단해진다. 사랑은 온전히 나에게만 머무는 순간 가장 약해지고, 밖으로 흘러가는 순간 가장 강해진다.
살아오며 문득 깨닫는 날이 있다.
누군가의 말을 듣고, 계절의 빛을 바라보고, 낯선 아이의 웃음을 보며 마음 한편이 저릿하게 흔들리는 순간. 그 순간은 마음이 다시 움직여야 할 때가 왔다는 신호처럼 느껴진다. 꺼내놓지 않은 따뜻함이 더 오래된 그늘을 만들기 전에, 조용히 마음을 건네야 한다는 부름 같은 것이다.
사랑은 ‘마음을 쓰는 방식’에서 생겨난다. 거창한 표현도, 화려한 사건도 필요 없다. 어느 겨울밤, 누군가의 창문에 불빛이 남아 있는 것을 보고 안녕을 묻는 마음, 따뜻한 차 한 잔을 건네며 오래된 침묵을 깨우는 마음, 이름조차 모르는 사람에게 길을 양보하며 하루의 온도를 바꾸는 마음. 이런 작은 마음들이 모여 사람의 일생을 지탱한다.
묵혀둔 사랑은 결국 자신에게도 상처가 된다.
고백하지 않은 진심이 시간이 흐르며 스스로를 후회로 바꾸고, 건네지 못한 친절은 마음속에서 무게가 되어 오래 남는다. 반대로, 작은 사랑 하나라도 건네는 순간 세계는 단 한 번이라도 밝아진다. 누군가의 마음을 흔드는 일이란, 대단한 고백이 아니라 조용한 용기에서 비롯된다.
세상에 아무리 고운 말이 많아도 ‘전하지 않은 마음’은 그저 미완성의 문장처럼 머물 뿐이다. 노래가 부르는 사람을 만나야 제 목소리를 얻듯, 사랑도 건네는 사람을 만나야 비로소 그 형체를 갖는다. 사람 사이를 흐르는 온기는 결국 ‘말해진 진심’, ‘건네진 손길’, ‘표현된 마음’에서 피어난다.
사랑은 숨겨 둘수록 줄어든다.
빛을 만나야만 형태를 드러내고, 손을 통해 나갈 때에야 자기의 의미를 얻는다. 당신의 마음속에 오래 머물러 있던 따뜻함이 있다면, 그것을 조용히 밖으로 꺼내어 누군가에게 건네도 된다. 주어진 사랑은 반드시 어떤 모양으로든 돌아오기 마련이고, 돌아오는 마음은 당신의 내면을 다시 밝히는 등불이 된다.
결국 사랑의 본질은 ‘흘러가는 것’이다.
나에게서 머물 때는 하나의 감정에 불과하지만, 누군가에게 도달하는 순간 그 감정은 관계가 되고, 기억이 되고, 생이 된다. 종은 울려야 종이고, 노래는 불러야 노래가 되고, 사랑은 건네야 사랑이 된다. 세상이 아무리 빠르게 변해도, 이 오래된 진실만은 변하지 않는다.
이 글을 읽는 이의 마음에도 작은 떨림이 일기를 소망한다.
그 떨림이 당신의 하루를 열고, 누군가의 저녁을 따뜻하게 하고, 당신의 인생 일부를 다시 환하게 밝혀주기를 바란다.
사랑은 마음속에 머무는 감정이 아니라, 밖으로 걸어 나올 때 비로소 완성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ㅡ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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