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

밤새 켜져 있는 아파트 불빛을 바라보며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밤새 켜져 있는 아파트 불빛을 바라보며 2025.11.26
밤새 켜져 있는 아파트 불빛을 바라보며

밤새 켜져 있는 아파트 불빛을 바라보며

밤이 깊어지면

도시는 낮과 전혀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사람들이 내일을 준비하듯 서둘러 잠에 들고,

도로의 소음도 천천히 가라앉는다.

그런 시간에

멀리서 바라보는 아파트 단지는

커다란 직사각형 속에

작은 불빛들이 하나둘 박혀 있는

거대한 빛의 모자이크 같다.

그리고 그 불빛마다

누군가의 마음과 하루가 조용히 켜져 있다.

한밤중에도 환히 켜져 있는 불빛들은

그냥 ‘밝다’는 의미를 넘어서

어떤 사연을 속삭인다.

아기에게 젖을 먹이느라

밤잠을 설치고 있는 부모가 있을지 모르고,

늦은 과제를 붙들고 있는 학생의 조용한 한숨이

불빛 아래 머물러 있을 수도 있다.

어딘가에는

아파서 뒤척이는 이를 지켜보는 가족이 있고,

어딘가에는

내일이 걱정되어 잠이 오지 않는 누군가가

책상에 고개를 떨군 채

멍하니 빛을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밤새 켜진 불빛들은

각자의 이유로 잠들지 못한 사람들의 마음을

조용히 비추고 있다.

그 빛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아주 작게, 그러나 선명하게 전해지는 듯하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그 불빛이 만들어내는 연결 덕분에

도시는 어느 순간

조금 더 따뜻하게 느껴진다.

어느 날이었다.

늦은 밤 산책 중에

아파트 단지를 멀찍이 바라보았던 적이 있다.

빛이 점점 줄어들던 시간인데도

유독 꺼지지 않는 창문들이 눈에 들어왔다.

무슨 일이 있을까,

얼마나 피곤했을까,

그 방 안의 누군가가

지금 어떤 마음으로 그 불빛을 켜두었을까.

그 생각만으로도

이름 모를 그들이

분명히 ‘살아 있는 누군가’라고

가만히 느껴졌다.

밖에서 보면

아파트는 뛰어난 단열재와

튼튼한 기둥으로 지어진

철근 구조물에 불과하다.

저 낱낱의 불빛은

그 속이 단단한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 사는 집’임을 알려준다.

사람의 체온,

사람의 숨결,

사람의 피곤함과 작은 희망들.

그것들이 빛으로 가만히 드러난다.

어떤 방에서는

가족이 모여 영화를 보고 있을지 모른다.

다른 방에서는

누군가 혼자 라면을 끓이며

삶을 잠시 달래고 있을 수도 있다.

또 다른 방에서는

조용히 음악을 틀어놓고

가만히 눈을 감은 채

오늘의 감정을 정리하고 있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 모든 순간이

밤하늘 아래 반듯한 상자 속에서

작은 등불로 피어난다.

서로의 얼굴을 보지 못해도

그 불빛들은

‘누군가가 지금 이 순간에도 살아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알려준다.

그 사실은 생각보다 큰 위로가 된다.

도시가 아무리 커도

밤은 아무리 깊어도

완전히 혼자가 아니라는

아주 작은 확신 같은 것.

때때로,

아파트 단지 전체가

기억의 지도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각 층의 창문마다

누군가의 하루가 켜졌다 꺼지고,

그 리듬이 곧

사람이 사람으로 살아가는 속도처럼 여겨진다.

누군가는 잠든 시간에

누군가는 깨어 있고,

누군가의 꿈이 깊어질 때

누군가는 불빛 아래에서

조용히 눈가를 훔친다.

불빛이 꺼지면

그 방의 삶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저 하루의 끝이 도착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다시 아침이 되면

어떤 불빛은 먼저 켜지고

어떤 불빛은 조금 늦게 깨어난다.

그 흐름 속에서

도시는 사람의 리듬으로 살아 움직인다.

가끔은

아무도 돌보지 않는 밤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창문 밖을 바라보면

거리는 텅 비어 있고,

바람에 나무만 흔들린다.

그럴 때

멀리서 켜진 아파트 불빛들이

작은 등불처럼 다가온다.

거창한 위로나 말 대신

그 존재만으로

밤의 고요를 조금 따뜻하게 만든다.

밤새 켜져 있는 아파트 불빛은

세상의 모든 고독을 없애 주지는 않는다.

그 불빛 덕분에

각자의 고독은 너무 차갑지 않게 견뎌진다.

사람들은 서로를 모른다.

서로의 불빛을 바라보며

조금 더 살아낼 힘을 얻는다.

도시의 밤이 너무 길게 느껴지는 날이면

그 불빛들이 말없이 알려준다.

“우리는 모두 어디선가

조용히 살아가고 있다.”

그 사실만으로도

사람의 마음은

아주 조금 더 따뜻해진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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