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최대승 시인의 시 '청춘', 가을 강가에서 다시 피어나는 이름 ㅡ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하다

최대승 시인의 시 '청춘', 가을 강가에서 다시 피어나는 이름 2025.11.28
최대승 시인의  시 '청춘', 가을 강가에서 다시 피어나는 이름

□ 최대승 시인

청춘

시인 최대승

거칠 것 없던 내가 나는 좋았지

청춘이 영원히 내 것이라 믿었던 때가 있었어

내 한 몸 지키는 것은 어려운 게 아니라 여겼지

머리가 커가며 알게 되었어

발목을 잡은 것은 나이던 것을

아무도 대신하지 못하는 길이 내 것이던 것을

분노와 좌절

투쟁과 몸부림

불같은 자유 행진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장막, 어둠

어쩌면

나는 방관자였는지도 몰라

투사 같은 처절함이 없는 무신경

나약한 돈키호테,

자유는 나만의 외침이던 것을

아무도 나무라지 않는 토설은 자위이던 것을

또 다른 청춘이

내게 왔을 때

저만치 오는 나를 만났지

애증

사랑

희망

배운 것은 생활의 근원이 되고

선을 긋는 일은 천직이 되고

새로운 창조는 진취가 되고

역동하는 기계와 기계의 리듬은 자긍심이 되었지

살아가는 것은 하나임을 알게 되었지

한낱

사위어진 꿈이어도 괜찮아

버려진 종잇조각처럼 무의미해도 괜찮아

흔적이 바람처럼 지워진다 해도 괜찮아

바람이 바람을 몰고 오는 강가에서 나는

비로소 나를 만나지

풋풋한 청춘 같은 나를 만나지

변함없이 웃고 있는 청춘은 내 것인 거지

푸르른 강이

변함없이 흐르는 것처럼

유유히 흘러가는 나는 나인 거지

가을아,

만산홍엽 찬란한 가을아

높은 산 푸른 하늘이 청춘이다

청춘, 가을 강가에서 다시 피어나는 이름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청춘은 한 번 지나가 버린 푸른 계절이 아니라, 강가의 물빛처럼 모양을 바꾸어 다시 떠오르는 시간이다. 최대승 시인의 ‘청춘’은 이미 끝난 줄 알았던 젊음이 어느 날 저만치서 걸어오는 ‘또 하나의 자기 자신’으로 다시 나타나는 순간을 그린다. 시 속 청춘은 기세와 허세, 방황과 자위까지 모두 끌어안은 뒤에 비로소 자기 얼굴을 찾는, 늦가을 햇빛 같은 내면의 계절이다.

초반부에서 화자는 “거칠 것 없던” 시절을 회상하며, 청춘을 “영원히 내 것”이라 믿던 오만과 미숙을 숨기지 않는다. 곧 “발목을 잡은 것은 나이던 것을 / 아무도 대신하지 못하는 길이 내 것이던 것을”이라 고백하며, 탓할 대상을 바깥이 아니라 자기 안에서 찾는다. 청춘을 타인의 평가가 아닌, 자기 책임과 선택의 시간으로 돌려세우는 장면에서 최대승 시인의 삶의 가치철학이 드러난다.

중앙부의 “분노와 좌절 / 투쟁과 몸부림 / 불같은 자유 행진”은 청춘의 투사 이미지를 소환하는 듯하지만, 이내 “어쩌면 / 나는 방관자였는지도 몰라”라는 고백으로 전복된다. “나약한 돈키호테”, “자유는 나만의 외침”, “토설은 자위”라는 표현은 청춘의 허위와 무력함을 정직하게 응시하는 대목이다. 최대승 시인의 미의식은 영웅담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향한 비판적 성찰에 중심을 둔다.

“또 다른 청춘이 / 내게 왔을 때 / 저만치 오는 나를 만났지”라는 전환은 이 시의 핵심이다. 청춘을 나이와 동일시하지 않고, 인생 어느 지점에서든 새로 도착하는 내면의 계절로 본다. “애증 / 사랑 / 희망”이라는 단어들은 중첩된 감정의 결을 압축하며, 상처를 포함한 전 생애가 곧 청춘의 또 다른 얼굴임을 암시한다.

이후 청춘은 감정의 불꽃이 아니라, 노동과 일상의 리듬 속에서 다시 정의된다. “배운 것은 생활의 근원이 되고 / 선을 긋는 일은 천직이 되고 / 새로운 창조는 진취가 되고 / 역동하는 기계와 기계의 리듬은 자긍심이 되었지”라는 구절은 생업을 단순한 생계 수단이 아닌 자긍심의 근거로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을 보여준다. “살아가는 것은 하나임을 알게 되었지”라는 문장은 삶과 일, 사유와 노동을 나누지 않으려는 통합적 태도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후반부의 “괜찮아” 삼연은 체념이 아니라 성숙한 수용이다. “사위어진 꿈”, “버려진 종잇조각”, “흔적이 바람처럼 지워진다”는 이미지는 실패와 소멸을 그대로 인정하면서도, 그 위에 “괜찮아”를 포개어 놓는다. 최대승 시인은 상실을 지우지 않고, 상실을 껴안는 긍정을 통해 자기 존재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단단한 마음을 보여준다.

“바람이 바람을 몰고 오는 강가”와 “푸르른 강”의 이미지는 시간과 자아를 겹쳐 놓는다. 끊임없이 흘러도 본질을 잃지 않는 강물처럼, 나이를 거듭해도 자기 자신으로 흐르고자 하는 인간의 의지를 상징한다. 마지막에 “만산홍엽 찬란한 가을”과 “높은 산 푸른 하늘”을 청춘이라 부르는 결말은 계절의 역전을 통해 최대승 시인의 미의식을 또렷이 보여준다. 청춘은 더 이상 육체의 푸르름이 아니라, 익은 빛과 깊은 하늘을 품은 마음의 상태다.

요컨대, ‘청춘’에서 최대승 시인이 보여주는 삶의 가치철학은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자각, 노동과 일상에 대한 존중, 상실까지 껴안는 긍정, 그리고 나이와 무관하게 스스로를 다시 만나려는 의지로 요약된다. 그의 시적 미의식은 과장된 수사를 경계하고, 계절과 자연의 이미지를 빌려 자기 성찰을 담아내는 담백한 서정에 있다. 이 작품에서 청춘은 지나간 시간이 아니라, 지금도 조용히 자신을 향해 걸어 들어오는 하나의 시간대이며, 그 조용한 깨달음이 이 시가 남기는 가장 깊은 여운이다.

ㅡ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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