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태기 시인의 시 '마음'을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하다
허태기 시인의 시 '마음'을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하다 2025.11.28
□ 허태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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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시인 허태기
마음 마음
마음 이여!
네 모양이 어떠하며
있는 곳은 어디더냐
모나더냐
둥글더냐
길더냐
짧더냐
심장이더냐
뇌 속이더냐
하늘 가운데더냐
땅 속이더냐
네 모습 볼 수 없고
있는 곳 알 수없으나
경계 따라 일어나고
바뀌고 사라지니
신통하고 묘하도다
언젠가 이 몸이
그대 고삐 채우는 날
산 위에 물고기 노닐고
바다 속에서
새들이 노래하리
■
보이지 않는 마음의 실존을 향한 노래
— 허태기 시인의 시 ‘마음’에 부쳐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허태기 시인의 시 ‘마음’은 형이상학적 물음으로 시작해 궁극의 존재론으로 흐르는 한 편의 간결한 철학시다.
이 시는 마음의 실체를 묻는다. 그것은 단지 내면의 감정을 탐색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보이지 않되 움직이고, 없으나 작용하는 것’에 대한 본질적 사유이다. 그는 마음을 의심하지 않고도, 마음의 정체를 의심하며 묻는다.
‘마음, 네 모양이 어떠하며 있는 곳은 어디더냐’는 물음은 곧 인간 자신에 대한 근본적 탐구이며, 보이는 세계 너머를 응시하려는 정신의 성찰이다.
허 시인의 작품 세계는 언제나 그러했다. 단순히 언어를 수사적으로 다루기보다는, 삶의 본질과 세계의 본래성을 꿰뚫어보려는 성찰이 자리한다. 감각보다 개념이 앞서고, 정념보다 통찰이 빛난다.
시인은 마음의 모양과 위치를 물으면서도, 결코 단정 짓지 않는다. 모난가, 둥근가, 긴가, 짧은가. 심장인가, 뇌인가, 하늘인가, 땅인가. 그는 끝내 어떠한 규정도 내리지 않고, ‘경계 따라 일어나고 바뀌고 사라지는’ 그 마음의 속성을 묘사함으로써, 마음이야말로 변화무쌍한 존재의 흐름이라는 진리를 드러낸다.
허태기 시인의 문학은 ‘있는 것을 있는 대로 보되, 그 이면을 질문하는 태도’에서 출발한다. 그가 바라보는 세계는 결코 고정된 사물의 조합이 아니다. 모든 것은 잠정적이며, 생은 늘 흐름 안에서 새롭게 규정된다. 그러므로 그의 시는 단단한 규명보다는 열린 질문에 가깝다.
시 속의 ‘마음’처럼, 그의 언어는 실체를 붙잡으려 하기보다는 그 주위를 맴돌며 형체 없는 진실을 붙든다.
후반부의 상상은 시인의 존재관을 환하게 비춘다. “언젠가 이 몸이 그대 고삐 채우는 날”이라는 구절에서 시인은 육체적 생을 넘어선 정신적 해방의 순간을 암시한다. 고삐를 채운다는 말은 방황하던 마음이 제 자리를 찾는 때, 즉 자기 극복의 계기다. 그리고 이어지는 구절, “산 위에 물고기 노닐고 / 바다 속에서 새들이 노래하리”는 현실 논리를 뒤엎는 시적 반전이자 해방의 상징이다.
그것은 분열된 질서가 회복되고, 억눌린 가능성이 현실로 전환되는 ‘존재의 변형’이자 ‘시적 구원’의 순간이다.
허 시인은 본질적으로 정신의 시인이다. 그의 삶은 곧 묵언의 사유였고, 시는 그 사유의 잔향이었다. 그는 소리 내어 드러내는 시인이라기보다, 언어 너머의 여백을 건네는 시인이었다. 그에게 시는 감정의 토로가 아니라 내면의 고요이며, 존재의 흔들림이 잠잠해지는 언덕 같은 것이었다.
하여, 그의 시는 결코 소란스럽지 않다. 대신 끝까지 읽고 난 후에도 묵직하게 남는 사유의 침전물이 있다.
허태기 시인의 시는 독자에게 말을 건네지 않는다. 외려 조용히 묻는다.
그 물음은 시인이 아닌 우리 각자의 삶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당신의 마음은 지금 어디 있는가”라는 질문이 그의 시 끝에서 조용히 일어난다. 그것이 바로 허태기 시인의 미의식이며, 그가 우리 시대에 던지는 고요한 외침이다.
ㅡ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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