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연명지 시인의 시 '해바라기 고아원' ― 연명지 시인의 삶의 가치철학과 미의식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하다

연명지 시인의 시 '해바라기 고아원' ― 연명지 시인의 삶의 가치철학과 미의식 2025.11.29
연명지 시인의 시 '해바라기 고아원' ― 연명지 시인의 삶의 가치철학과 미의식

□ 연명지 시인

해바라기 고아원

시인 연명지

살피꽃밭으로 해바라기 꽃들이 날아드는 계절

그리움을 쥐고 자라던 살피꽃밭 키 큰 해바라기는 서쪽으로 가고,

밀어 두었던 골목의 꽃밭은 스스로 잘 크고 있어요

그리움이 묻히던 골목도 서쪽으로 기울었어요

서로를 들여다보는 여름이면 유독 기대고픈 어깨가 간절하게 생각나요

우리는 원주 허름한 중국집에서 소주를 마시며 가까워졌어요

키가 크다고 기댈 만 하지는 않아요

어떤 꽃들은 제 무게에 넘어지곤 해요

산에서 옮겨온 더덕향과 친밀했던 살피꽃밭 주인은

빗물이 스며들지 않는 골목을 염려하곤 했어요

해바라기꽃과 나는 한 편이 되어 향기 진한 꽃들의 소란을 무시했어요

오랜 기침을 다스리지 못하고 살피꽃밭과 이별한 새벽에는 첫눈이 살짝 미끄러웠지요 살얼음이 위험하니 천천히 오라던 가족의 말은 섬이 되었고

내 속을 뒤집던 혈육을 야단치던 유일한 사람,

내 안의 어른을 보내던 날은

바람이 많아 바람 속에서 어른을 보냈어요

나는 나를 잘 기르고 있는 걸까요

보고 싶다는 말을 팽팽하게 견디며 한 사람이 키우던 꽃밭에 쪼그려 앉아있어요

시인 연명지는 2013년 미네르바 시선 『가시비』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사과처럼 앉아 있어』, 전자시집 『열일곱 마르코 폴로 양』, 여행 산문 『차곡차곡 걸어 산티아고』가 있다.

호미문학상, 청송객주문학상, 항공문학상을 수상했고, 시 작품이 인도, 파키스탄, 코소보, 이탈리아, 이집트, 미국, 벨기에 등에서 현지어로 번역 발표되었다.

‘해바라기 고아원’

― 연명지 시인의 삶의 가치철학과 미의식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연명지 시인의 ‘해바라기 고아원’은 한 편의 서정시이면서 동시에 ‘돌봄’과 ‘상실’의 윤리를 묻는 내밀한 자기 고백이다.

제목에 붙은 ‘고아원’이라는 단어는 보호받지 못하는 존재들, 의지할 어른을 잃은 마음의 상태를 가리킨다. 시 속의 해바라기는 단순한 식물이 아니라, 그리움을 쥐고 자라온 화자 자신이자, 제자리를 잃고 서쪽으로 기울어가는 관계들의 은유다.

시의 초반부에서 ‘살피꽃밭’과 ‘골목의 꽃밭’은 이미 하나의 인물처럼 제시된다. “그리움을 쥐고 자라던 살피꽃밭 키 큰 해바라기”와 “그리움이 묻히던 골목”이 모두 “서쪽으로 기울”어 간다는 표현은, 노을과 저물어감의 방향으로 인생과 관계가 기울어가는 시간을 드러낸다.

시인 연명지 시에게서 공간은 단순 배경이 아니라, 그리움과 상실이 퇴적된 기억의 창고다. 삶을 설명할 때 개념보다 장소와 냄새, 계절을 먼저 부르는 시인의 감각이 잘 드러난 대목이다.

“서로를 들여다보는 여름이면 유독 기대고픈 어깨가 간절하게 생각”난다는 구절에서, 시인은 관계를 향한 근원적인 갈망을 숨기지 않는다. 그러나 곧바로 “키가 크다고 기댈 만 하지는 않아요 / 어떤 꽃들은 제 무게에 넘어지곤 해요”라고 말하며, 어느 누구도 완전한 지지대가 될 수 없음을 인정한다.

이때 연명지 시인의 삶의 철학이 선명해진다. 의지하고 싶어도, 사람은 각자의 무게로 흔들리는 존재이며, 그러하기에 더 섬세한 배려와 거리 감각이 필요하다는 인식이다. 관계를 절대화하지 않으면서도, 여전히 그 관계를 포기하지 않는 태도가 이 시의 정서를 지탱한다.

살피꽃밭 주인의 모습 또한 주목할 만하다. “산에서 옮겨온 더덕향과 친밀했던 살피꽃밭 주인”은 “빗물이 스며들지 않는 골목을 염려”하는 사람이다. 물이 스며들지 않는 골목은 곧 위로와 온기가 스며들지 않는 삶의 조건을 닮았다. 연명지 시인은 이 염려의 시선을 통해, 세상의 건조한 틈을 지나치지 않고 끝까지 마음을 기울이는 존재를 그려낸다. 그것은 결국 시인이 지향하는 인간상, 곧 ‘스스로보다 남의 마른 자리를 먼저 걱정하는 사람’이다.

중반부 이후 시는 상실의 시간으로 깊숙이 들어간다. “오랜 기침을 다스리지 못하고 살피꽃밭과 이별한 새벽”, “살얼음이 위험하니 천천히 오라던 가족의 말은 섬이 되었”다는 구절에서, 병과 이별, 그리고 남겨진 자의 고립이 동시에 드러난다. 가족의 말이 ‘섬’이 되었다는 표현은, 화자가 그 말에 닿지 못한 채 홀로 떨어져 있음을 보여준다.

이어지는 “내 속을 뒤집던 혈육을 야단치던 유일한 사람, 내 안의 어른을 보내던 날은 / 바람이 많아 바람 속에서 어른을 보냈어요”라는 대목은, 자신을 꾸짖어 주던 마지막 어른의 부재를 통해 내면의 기준점이 사라지는 감각을 절제된 언어로 포착한다. 이때의 바람은 단순한 기상 현상이 아니라, 어른의 존재를 날려 보내는 허무의 기류이자, 이제 스스로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무언의 요구로 읽힌다.

결말부의 “나는 나를 잘 기르고 있는 걸까요”라는 자문은, 시인 연명지 시의 핵심 질문을 집약한다. 타인의 꽃밭에서 자라던 아이가, 이제는 ‘나를 기르는 일’을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시간 앞에 서 있다는 고백이다. “보고 싶다는 말을 팽팽하게 견디며 한 사람이 키우던 꽃밭에 쪼그려 앉아있”는 마지막 이미지는, 그리움을 쏟아내는 대신 끝까지 견디며, 사라진 이를 향한 예의를 지키려는 태도로 읽힌다.

여기서 연명지 시인의 가치철학이 드러난다. 슬픔을 과장하지 않되 축소하지도 않고, 그저 견디며 돌보는 윤리, 떠난 이의 자리를 함부로 소비하지 않는 품격이다.

시인의 이력에서 확인되듯, 시인 연명지는 시와 산문, 여행기를 가로지르며 세계 여러 나라의 독자들과 만나왔다. 그러나 시 세계의 중심에는 화려한 세계주의가 아니라, “원주 허름한 중국집”, “골목의 꽃밭”, “더덕향”, “살얼음” 같은 구체적이고 작은 장면들이 놓여 있다. 연명지 시인의 미의식은 세계와 연결되면서도, 늘 발목을 붙잡고 있는 삶의 구체성, 냄새와 촉감이 지워지지 않도록 하는 데 있다.

이 시에서처럼, 그는 거창한 선언 대신 사소한 장면을 오래 응시함으로써, 상실과 그리움, 돌봄과 성장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새롭게 환기한다.

‘해바라기 고아원’은 결국 ‘어른을 잃은 해바라기’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이제 스스로를 길러야 하는 한 사람’의 이야기다. 연명지 시인의 삶의 가치철학은 여기서 분명해진다. 사람은 상실을 통해 비로소 자기 자신을 책임지는 존재가 되며, 그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눈물의 양이 아니라 끝까지 꽃밭을 지키며 쪼그려 앉아 있는 태도라는 점이다.

이 조용한 결심과 절제된 슬픔이야말로, 시인 연명지 시 세계를 관통하는 미의식이며, 세계 곳곳의 독자에게 번역되어도 여전히 또렷이 전해지는 그의 시적 힘이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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