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리는 파리' — 청강 허태기 시인의 삶의 가치철학과 미의식을 중심으로 ㅡ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하다
'눈 내리는 파리' — 청강 허태기 시인의 삶의 가치철학과 미의식을 중심으로 2025.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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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리는 파리
시인 청강 허태기
파리의 도심위로
흰 눈이 내리네
미술관에도 박물관에도
미라보 다리에도
하얀 눈 내리네
높이 솟은 에펠탑
알라딘의 손잡이 되어
하늘의 눈
파리에 뿌리네
파리지앵의
낭만과 사랑
눈 내리는 세느강 따라
꿈처럼 흘러내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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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리는 파리’
— 청강 허태기 시인의 삶의 가치철학과 미의식을 중심으로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청강 허태기 시인의 ‘눈 내리는 파리’는 낯선 도시의 풍경을 빌려 시인의 내면적 맑음을 투명하게 드러낸 작품이다. 그는 여행자의 감상에 머무르지 않고, 파리라는 공간이 지닌 역사와 문화, 삶의 정서를 하나의 호흡 속에서 길어 올린다. 시 속의 눈은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라, 문명 위에 내려앉아 모든 차이를 잠시 평등하게 만드는 순수의 상징이다. 이 작품에는 허태기 시인이 평생 추구해온 가치—세계의 모든 현상을 고요하고 맑게 바라보려는 마음의 태도—가 선명히 배어 있다.
첫 연에서 “미술관에도 박물관에도 미라보 다리에도 / 하얀 눈 내리네”라는 구절은 단순한 공간 나열이 아니라, 문명의 중심부에 자연의 고요한 숨결이 스며드는 순간을 그린다. 허태기 시인은 언제나 자연과 인간의 문명을 대립이 아닌 조화로 읽는다. 거대한 예술의 집도, 오래된 다리도, 눈 앞에서는 다시 ‘하나의 자리’로 돌아간다. 이는 그의 일관된 미학, 곧 세상 모든 차이는 맑은 눈빛 앞에서 다시 처음의 평등을 배운다는 인식의 발현이다.
두 번째 연의 “에펠탑이 알라딘의 손잡이 되어 / 하늘의 눈 파리에 뿌리네”는 이 시의 정점을 이루는 상상력이다. 높이 솟은 에펠탑이 어느 순간, 마치 알라딘의 마술램프 손잡이처럼 보이는 순간—그것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허태기 시인의 시심(詩心)이 사물의 외형을 넘어 그 내면의 신비를 포착하는 감각의 발현이다. 에펠탑이 마술램프의 손잡이로 겹쳐지는 순간, 파리라는 도시는 일상의 현실에서 꿈의 경지로 전환된다. 사랑과 낭만에 빛을 더하는 ‘마법의 손잡이’가 도시의 심장부에서 열리고, 그 마법을 돌리는 손은 자연이다. 허태기 시인이 평생 지켜온 맑은 낭만—사물을 새로 보게 하는 사랑의 감각—이 여기서 빛난다.
마지막 연에서 “눈 내리는 세느강 따라 / 꿈처럼 흘러내리네”라는 표현은 파리의 정취를 노래함과 동시에, 시인이 견지해온 존재론을 잔잔히 드러낸다. 삶은 고여 있지 않고, 사랑도 예술도 흐름 속에서 비로소 존재의 의미를 얻는다. 세느강의 물길을 따라 눈발이 흘러간다는 표현은 존재는 끊임없이 흐르면서 완성된다는 시인의 오래된 철학을 시적 장면으로 구현한 것이다.
이 작품 전체는 결국 ‘맑음을 발견하려는 시인의 습관’으로 귀결된다. 파리의 풍경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시인의 내면이 투명하기 때문에 이 시가 아름답다. 허태기 시인은 언제나 과장이나 감상 과잉 없이, 사물과 존재의 깊이를 고요하게 드러내는 언어를 선택해 왔다. 그의 낭만은 화려하지 않고, 그의 사유는 동요하지 않으며, 그의 문장은 물결처럼 잔잔해 독자의 마음에 오래 머문다.
‘눈 내리는 파리’는 그 미학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 중 하나다. 눈 내리는 도시에 깃든 정적의 빛, 에펠탑을 마술램프의 손잡이처럼 바꾸어놓는 상상력의 사랑스러움, 세느강의 흐름을 삶의 흐름으로 받아들이는 철학의 깊이—이 모든 것이 허태기 시인의 삶과 정신이 향하는 방향을 조용히 말해준다.
그의 시는 세계의 풍경 속에서 인간의 마음을 다시 바라보게 하고, 한순간의 이미지로 존재의 진실을 건드린다. 이 작품 역시 독자를 낭만의 자리로 초대하는 동시에, ‘맑음의 윤리’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우아한 시적 순간을 선사한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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