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

문학을 삶의 등불로 삼은 사람들 — 세월을 품은 어른이 남기는 향기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문학을 삶의 등불로 삼은 사람들 — 세월을 품은 어른이 남기는 향기 2025.12.02
문학을 삶의 등불로 삼은 사람들 — 세월을 품은 어른이 남기는 향기

문학을 삶의 등불로 삼은 사람들

— 세월을 품은 어른이 남기는 향기

문학을 붙든다는 것은, 서랍 속에 오래 간직한 은수저를 닦듯

자기 삶의 얼룩을 하나씩 문질러 지워가는 일이다.

문장 하나가 반짝이려면 마음속 어둠을 먼저 털어내야 하고,

말 한 줄이 고요하게 내려앉으려면

가슴속 바람을 잦아들게 해야 한다.

하여,

문학을 오래 마주한 사람에게는

악의의 그림자가 오래 머물지 못한다.

문장이 먼저 사람을 꾸짖고,

언어가 먼저 마음의 결을 바로 세우기 때문이다.

문학을 하는 세월을 품은 어른의 삶을 보면,

마치 서리 내린 새벽 들판을 걷는 것과 같다.

흙은 차갑지만 밟을수록 깊은 온기를 품고,

풀잎 끝에 맺힌 이슬은 작지만 세상을 비춘다.

수많은 계절을 견딘 그 어른의 발걸음에는 욕망의 소음은 사라지고

남루한 기억조차 향기가 된다.

문학은 그들의 주름을 더 깊게 하지 않고, 외려 주름 사이에 은빛을 더해준다.

늦은 계절에 문학을 붙든다는 것은

해 질 무렵 등잔불을 켜고

제 생의 낱말들을 다시 불러내는 일이다.

삶이 다 감당되지 않을 때 문학이 그것을 대신 짊어지고,

마음이 쉽게 흔들릴 때

문장은 가장 믿음직한 지주가 된다.

그들은 스스로를 ‘작가’라고 부르기 전에

먼저 ‘사람’을 바로 세운다.

사람이 곧 문학의 첫 문장이기 때문이다.

삶을 오래 걸어온 분이

종이 위에서 단정한 숨을 고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 줄의 글이

한 평생의 어둠을 지우는 지우개가 되기도 하고,

한 편의 문장이

끝내 털어내지 못한 슬픔을

향기로 씻어내기도 하기 때문이다.

문학은 그들에게 화해의 기술이 되었고,

세월은 그 기술을 더 깊게 다지는 시간이었다.

이러한 늦은 계절의 사람을 보면

매화꽃이 떠오른다.

눈발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작은 향기,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존재를 잃지 않기 위해 피어나는 꽃.

문학을 하는 어른 또한 그렇다.

세상의 박수나 명예에 흔들리지 않고,

누구보다 느리게, 그러나 누구보다 은밀하게

자기 마음을 닦아낸다.

향기가 자신에게서 먼저 나야

세상에 닿는다는 진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늦은 시간에 쓰는 글은

그 자체가 한 사람의 생애를 비추는 등불이 된다.

그 글을 읽는 이들은

타인의 마음에서 켜진 등불이

어떤 어둠을 밀어냈는지

은은하게 느낀다.

문학은 그처럼

한 사람의 삶을 넘어

수많은 사람의 마음을 비추는 힘을 지닌다.

나는 믿는다.

문학을 하는 이들,

특히 향기를 오래 지켜온 사람들은

악해질 수 없다고.

그들은 삶을 윤기 나는 그릇처럼 정갈히 다듬고,

작은 듯 보이지만 가장 긴 시간을 견디며, 문장이라는 등잔불로

스스로의 마음을 다시 빛으로 데려온다.

그 향기는

오래 피고,

오래 남고,

오래 사람을 살린다.

문학을 사랑하는 세월의 어른이 있는 한, 이 시대의 품격은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

ㅡ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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