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마음의 현(絃)을 고르는 일 ㅡ청람 김왕식
기도, 마음의 현(絃)을 고르는 일 2025.12.05
■
기도, 마음의 현(絃)을 고르는 일
기도는 무엇보다 먼저, 자기 소리를 찾는 일이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속에 자기만의 음(音)을 품고 산다.
그러나 그 음은 언제나 또렷하지 않다. 번잡한 일상과 뒤섞인 감정, 어지러운 욕망이 마음의 줄을 느슨하게 만들거나 지나치게 팽팽하게 만든다. 그래서 제 소리가 나와야 할 순간에도 탁한 잡음만 먼저 튀어나오곤 한다.
이 때문에 기도는 악기를 조율하는 행위와 닮아 있다. 악기가 외부 충격에 따라 늘거나 줄듯, 사람 마음도 일상의 바람을 받으며 흔들린다. 그대로 두면 어느 순간 자신이 어떤 음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게 된다. 기도는 그 혼란을 잠시 멈추게 한다. 모든 소리를 가라앉히고, 마음 깊은 곳에서 울리는 본래의 음을 다시 확인하는 조용한 행위다.
기도는 말을 쏟아내는 것이 아니라, 외려 말을 비워내는 데서 시작된다. 불필요한 소리가 먼저 빠져나가야 마음의 현이 제 자리를 찾는다. 욕심과 불안이 결을 흐리는 동안에는 아무리 간절한 기도도 바른 울림이 나올 수 없다. 현을 먼저 고르고, 그 다음에 비로소 연주가 가능하듯이, 인간의 기도 역시 먼저 마음의 방향을 바로 세우는 과정이 필요하다.
사람이 자기 소리로 산다는 것은, 남의 음정에 휘둘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누군가의 칭찬에 지나치게 들떠서도, 작은 실패 앞에서 음조가 무너져서도 안 된다. 기도는 이 균형을 되찾는 자리다. 다른 사람의 소리에 묻힌 나의 음, 세상의 요구에 가려 잊어버린 본래의 음색을 다시 듣는 일. 그 고요한 순간에 사람은 스스로의 중심을 회복한다.
기도가 깊어질수록 사람의 음색은 한층 맑아진다. 악기 역시 잘 조율되면 다른 악기들과 조화를 이루듯, 사람의 마음도 바르게 정리되면 주변과의 관계 역시 자연스레 부드러워진다. 억지 화해가 아니라, 억지 미소가 아니라, 진심에서 흘러나오는 온화한 음조가 삶 전체를 덮기 때문이다. 결국 기도는 나 하나만 고치는 일이 아니라, 나를 통해 주변의 세계를 조율하는 일로 이어진다.
조율은 한 번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힘들었던 날에는 현이 조금 가라앉고, 분주했던 날에는 지나치게 긴장한다. 그래서 기도는 매일의 음을 확인하는 꾸준한 작업이 된다. 연주자가 공연 전마다 반드시 악기를 조율하듯, 인간도 하루의 삶이 연주되기 전 마음을 먼저 고르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을 갖지 않으면, 삶이라는 무대에서 우리는 종종 자기 소리를 잃고 남이 만든 음표만 따라가게 된다.
기도는 바라는 것을 얻기 위해 드는 문이 아니다. 삶의 음전을 바로 세우기 위해 잠시 멈춰 서는 정지(停止)의 시간이다. 이 멈춤 속에서 사람은 비로소 자신이 어떤 음으로 살아가야 하는지 조용히 자문하게 된다. 그 질문이 깊어질 때, 하나님은 인간에게 가장 정확한 음정을 들려주신다. 사랑하라, 겸손하라, 포용하라. 이 간단한 음정들이 마음 깊은 곳에 맞춰질 때, 사람의 삶은 한 곡의 온유한 노래가 된다.
기도는 기적을 요구하는 주문이 아니라, 내가 먼저 바르게 서기 위한 조율이다. 내가 뒤틀려 있으면 어떤 응답도 곱게 들리지 않는다. 내가 맑아지면, 작은 은혜도 벅찬 감사가 된다. 그래서 기도는 결국 하나님을 움직이는 시간이 아니라, 나를 바로 세우는 시간이다.
오늘 하루도 마음의 현을 가만히 어루만져 본다. 소리가 탁하다면 욕심을 덜어내고, 지나치게 날카롭다면 마음을 가라앉히며 다시 고른다. 그렇게 나의 음이 온전해질 때,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는 청아한 울림이 되어 하늘에 닿는다.
그 울림은 다시 나에게 돌아와, 살아갈 힘이 된다.
기도란, 그렇게 자기 소리를 찾아가는 고요한 조율의 예술이다.
ㅡ청람
댓글
로그인 없이 바로 남길 수 있습니다. 나중에 본인이 수정·삭제하려면 이 댓글의 비밀번호를 정해 주세요. 서로 예의를 지켜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