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이 충만을 낳고, 고독이 자유를 낳는다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비움이 충만을 낳고, 고독이 자유를 낳는다 2025.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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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움이 충만을 낳고, 고독이 자유를 낳는다
청람 김왕식
비워낸다는 일은 언제나 두렵다.
손에 쥐고 있던 것들을 내려놓는 순간, 세상은 잠시 흔들리고 마음은 길을 잃는다. 그러나 세월이 일깨우는 진실은 언제나 단순하다. 텅 빈 그릇만이 새 물을 받을 수 있고, 여백을 품은 종이만이 새로운 문장을 기다릴 수 있다. 비움은 결핍이 아니라 준비의 다른 이름이다. 남김없이 내려놓은 자리에, 말없이 스며드는 충만의 빛이 있다.
삶의 무게는 대개 지나치게 많은 것들에서 비롯된다. 해답을 쥐려는 조급함, 잃을까 두려워 움켜쥔 집착들, 떠나간 흔적까지도 붙잡으려는 욕망. 그러나 비움은 우리를 가볍게 한다. 한 겹 한 겹 벗겨낼수록 존재는 본래의 윤곽을 되찾고, 마음은 허공처럼 환해진다. 그 환함 속에서 비로소 자신을 알아보게 된다. 스스로도 몰랐던 깊이,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았던 본래의 중심. 충만은 채우려 할 때 오지 않고, 비워준 만큼 스며든다.
고독 역시 삶이 건네는 또 하나의 선물이다. 많은 이들은 고독을 상처처럼 여기지만, 실상 그것은 자유의 출입문에 가깝다. 고독은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시간이며, 삶의 소음을 잠시 거두어들이는 침묵의 공간이다. 사람들 사이에 뒤섞여 있을 때는 결코 들리지 않던 내면의 목소리가, 고독의 가장 깊은 자리에서 조용히 깨어난다. 그때 우리는 비로소 묻는다. 나는 어디로 가는가, 무엇을 원하는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를 바깥으로 밀어낸다.
더 많이 소유하라,
더 크게 말하라,
더 높이 서라.
그러나 고독은 거꾸로 속삭인다. 조용한 자리로 돌아오라,
본래의 너를 잊지 말라,
자유는 혼자가 될 줄 아는 자에게 깃든다.
고독이 깊어질수록, 자유는 더욱 투명해진다. 누구에게도 흔들리지 않는 중심, 어떤 상황에도 무너지지 않는 내면의 뼈대가 고독의 단단함 속에서 자라난다.
삶의 가장 귀한 것들은 언제나 조용히 온다. 소란을 좋아하지 않고, 욕망의 틈새에 머물지 않는다. 고요한 마음, 텅 빈 자리, 홀로 서는 용기 속에만 머문다. 그래서 우리는 비워야 하고, 때로는 홀로 있어야 한다. 그것은 도피가 아니라 귀환이다. 삶의 중심으로, 존재의 깊은 근원으로 되돌아가는 길이다.
마침내 깨닫는다.
충만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축복이 아니라, 비움 속에서 스스로 피어오르는 은혜임을. 자유 또한 누군가가 허락해주는 상태가 아니라, 고독 속에서 자신에게서 비롯되는 힘임을. 이 진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삶은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다.
마음은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밝아진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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