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어무이의 시간, 단풍의 시간 — 정순영 시인의 시 「어무이 단풍 들었심더」 ㅡ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하다

어무이의 시간, 단풍의 시간 — 정순영 시인의 시 「어무이 단풍 들었심더」 2025.12.11
어무이의 시간, 단풍의 시간 — 정순영 시인의 시 「어무이 단풍 들었심더」

*어무이 단풍 들었심더

시인 정 순 영

어무이 시간 안으로 낳아서 애지중지 키운 나무가

세파에 흔들리며 가지가 부러지기도 하고 울음 참기로 눈물 펑펑 쏟기도 하다가

연두어린 잎사귀가 짙푸르더니

어느새 붉거나 노랗게 단풍 들었심더

앞산 자드락길 텃밭 *모랭이를 돌아오는 소나무에 흰 서리가 내려

어스름에는 두툼하고 따스한 어무이 손이 그립심더

*짐이 솔솔 나는 솥뚜껑 *찌짐도 묵고 싶슴니더

붉은 노을이 산자락에 걸쳐지면 시냇물도 단풍 들어

어무이 어무이 부르며 흐릅니더

어무이가 애지중지하던 장독대도 추억 한잎 두잎 단풍 들었심더

세상이 하도 을씨년스러우니 오늘 밤 꿈에는 어무이 품에 안겨 *따시게 자고 싶슴니더

*어무이-어머니,

모랭이-모퉁이,

짐- 김,

찌짐- 전,

묵고- 먹고,

따시게- 따뜻하게,

경상도 사투리.

정순영시인

하동출생. 1974년 <풀과 별> 추천완료. 시집; “시는 꽃인가” “침묵보다 더 낮은 목소리” “조선 징소리” “사랑” 외 12권. 부산시인협회 회장, 한국자유문인협회 회장, 국제pen한국본부 부이사장, 동명대학교 총장, 세종대학교 석좌교수 등 역임. 한국통일문인협회 자문위원. 부산문학상, 한국시학상, 세종문화예술대상, 한국문예대상, 외 다수 수상. <4인시> <셋>동인.

어무이의 시간, 단풍의 시간

— 정순영 시인의 시 「어무이 단풍 들었심더」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정순영 시인은 투박한, 그러나 따스한 목소리를 내는 원로시인이다.

그의 시 ‘어무이 단풍 들었심더’는 모성의 기억을 단풍의 빛깔로 환원시키며, 사투리의 온기로 삶의 가장 낮고 깊은 결을 어루만지는 작품이다. 시인은 어머니를 ‘시간 안으로 낳아 키운 나무’로 비유한다. 이는 생의 고단한 세월을 통과해 단풍 드는 나무의 운명과 맞닿는다. 흔들리고 부러지고 울음을 견뎌낸 가지는 결국 붉게 물든다. 수난을 통과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황혼의 품격이 바로 그 단풍이다.

이 작품에서 사투리는 단순한 언어적 장식이 아니라 정서적 호흡이다. “그립심더”, “먹고 싶슴니더”, “따시게 자고 싶슴니더”와 같은 표현들은 문자의 경계를 넘어, 어머니의 품처럼 둥글고 따뜻한 정조를 완성한다. 그 사투리 한 마디마다 오래 묵힌 된장의 냄새, 장독대의 온기, 텃밭 모퉁이를 지키던 소나무의 서늘한 숨결이 배어 있다. 언어는 이렇게 삶의 냄새를 품고, 삶은 다시 언어로 되돌아온다.

시의 중심 정서는 ‘부재의 온기’이다. 어머니는 더 이상 시인의 곁에 없지만, 부재는 결핍이 아니라 더 깊어진 존재로 돌아온다. 산자락에 걸친 붉은 노을이 ‘어무이’의 이름을 부르고, 물길조차 그 이름을 흘려보내는 장면은 상실을 울음으로 묘사하지 않고, 자연의 순환 속에 자리 잡은 영혼의 지속으로 제시한다. 어머니는 떠난 사람이 아니라 자연의 결로 변환된 존재다. 단풍이 곧 ‘어무이의 시간’이 되는 이유다.

또한 이 시의 미덕은 일상의 사소한 풍경에서 모성의 영원을 건져 올리는 데 있다. 서리 내린 소나무, 모퉁이 텃밭, 김이 솔솔 나는 찌짐 냄새, 장독대의 그림자. 이 모든 것은 어머니가 남긴 마음의 생활사다. 거창한 상징 없이, 일상과 자연이 곧 어머니의 초상화가 된다. 단풍은 물드는 것이 아니라 ‘기억되는 것’이다.

시의 마지막 구절, “오늘 밤 꿈에는 어무이 품에 안겨 따시게 자고 싶슴니더”는 절망을 토로하는 말이 아니라, 인간이 궁극적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원초적 쉼의 자리, 존재의 고향을 말한다. 삶이 을씨년스러울수록 어머니의 품은 더욱 또렷한 희망의 자리로 떠오른다. 이 작품은 그래서 모성의 회상시이면서도, 궁극적으로는 인간 존재를 지탱하는 정서의 원류를 다시 확인하게 하는 ‘영혼의 귀가’에 가깝다.

정순영 시인은 이 작품을 통해 한 인간이 걸어온 시간의 무늬를 단풍이라는 자연의 언어로 번역해냈다. 애틋함에 머물지 않고, 상실의 깊이를 서정의 빛으로 상승시키는 이 시의 힘은, 그의 오랜 작가적 연륜과 언어의 겸허함이 빚어낸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여

이 작품은 단순한 회상시가 아니라, 모성이라는 근원적 가치가 어떻게 인간 존재의 마지막 온기를 이루는가를 보여주는 고요한 증언이다.

ㅡ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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