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어깨 ㅡ 청람 김왕식
아버지의 어깨 2025.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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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어깨
김왕식
해 질 무렵 마당
외투 하나 걸친 아버지의 어깨는
언제나 넓고 조용하다
말수 적어
기쁨도 근심도 드러내지 않지만
굽히지 않은 두 어깨의 선에는
말 없는 약속이
꽉 들어차 있다
우리가 철모르고 뛰어다니던 시절
아버지의 어깨는
삶의 무게를 짊어진 채
흔들림 없이 걸어가고
가장 바쁜 날에도
우리가 따라붙을 작은 빈자리 하나씩
어깨 위에 남겨둔다
어려웠던 그해 겨울
장터에서 돌아오던 아버지의 어깨에는
찬바람보다 깊은 피로가 내려앉아 있지만
집 앞에 다다르자
잠시 숨을 고르고
문을 열기 전
어깨를 한 번 펴고 들어오신다
고단함을 들키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라
기댈 사람이 필요하지 않게 하려는 마음이다
우리가 자라는 동안
아버지의 어깨는
점점 굽어가지만
가난이 굽힌 것이 아니라
책임이 굽힌 것이고
남에게 기대지 않은 탓에
홀로 굽어버린 자리다
아버지가 아팠던 해
계단을 오르내리며
숨을 몰아쉬던 순간에도
어깨만은 끝내 펴려 애쓰고
넘어지면서조차
끝내 누구 위로도 쓰러지지 않으려 한다
장례식장 복도 끝에서
아버지를 떠나보낸 뒤
빈 의자에 걸린 외투를 볼 때
그제야 안다
그토록 단단한 줄 알던 어깨가
기댈 곳 한 번 못 만나
평생 버텨온 어깨임을
가끔 거울에 비친 내 어깨가
조금 굽어 있는 날
나는 문득 두렵다
힘들어서가 아니라
나도 누군가에게
기댈 곳이 되기 위해
어깨를 펴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된다
그 순간
아버지의 어깨가
조용히 마음속에 돌아온다
사랑을 말로 하지 못한 사람이
몸으로 남긴 마지막 문장처럼
희미한 체온으로
오래
우리 곁을 지켜준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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