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의 시 '사랑스런 추억'을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하다
윤동주의 시 '사랑스런 추억'을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하다 2025.12.14
■
사랑스런 추억
윤동주
봄이 오던 아침, 서울 어느 쪼그만 정차장에서
희망과 사랑처럼 기차를 기다려
나는 플랫폼에 간신한 그림자를 떨어뜨리고
담배를 피웠다
내 그림자는 담배연기 그림자를 날리고
비둘기 한떼가 부끄러울 것도 없이
나래 속을 속,속, 햇빛에 비춰 날았다
기차는 아무 새로운 소식도 없이
나를 멀리 실어다 주어
봄은 다 가고 동경(東京) 교외 어느 조용한
하숙방에서, 옛 거리에 남은 나를 희망과
사랑처럼 그리워한다
오늘도 기차는 몇번이나 무의미하게 지나가고
오늘도 나는 누구를 기다려 정차장 가차운 언덕에서
서성거릴게다
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

■ 청람 시평
― 정차장에 남겨진 젊음, 떠나지 못한 존재의 초상
윤동주의 〈사랑스런 추억〉은 ‘추억’이라는 제목과 달리 회상이 아니라 지속되는 현재형의 기다림을 노래한 시다. 이 작품에서 핵심 공간은 정차장이다. 정차장은 출발지이면서 도착지가 아니고, 머무름과 이동이 잠시 교차하는 중간 지대다. 윤동주는 자신의 청춘을 바로 이 애매한 장소에 세워 둔다.
시의 첫 장면에서 화자는 봄이 오던 아침, 서울의 작은 정차장에서 기차를 기다린다. 그는 “희망과 사랑처럼” 기차를 기다린다. 여기서 기차는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니라 삶을 다른 국면으로 데려다줄 어떤 가능성이다. 그러나 화자는 기차에 오르기보다 플랫폼에 그림자를 떨어뜨린 채 담배를 피운다. 몸은 정차장에 있고, 마음은 이미 떠나 있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
그림자와 담배 연기, 비둘기의 비행은 모두 실체 없는 것들이다. 윤동주는 이 장치를 통해 청춘의 실존을 표현한다. 청춘은 손에 잡히지 않고, 머물지 않으며, 햇빛에 비춰질 때만 잠시 형체를 드러낸다. 기차는 결국 “아무 새로운 소식도 없이” 화자를 멀리 데려간다. 이동은 있었으나, 변화는 없었다. 이 지점에서 윤동주의 절망은 조용히 시작된다.
도쿄 교외 하숙방에서 화자는 과거의 자신을 “희망과 사랑처럼” 그리워한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그리워하는 대상이 특정 인물이 아니라 ‘옛 거리에 남아 있던 나 자신’이라는 점이다. 이는 윤동주 시 전반에 흐르는 자기 분열의 정서를 드러낸다. 떠나온 자신과 남겨진 자신 사이의 간극, 그것이 바로 이 시의 핵심 정조다.
마지막 연에서 기차는 “무의미하게” 지나가고, 화자는 여전히 정차장 근처 언덕에서 서성거린다. 기다림은 습관이 되었고, 희망은 목적 없는 반복이 된다. 그래서 시는 마지막에 이렇게 말한다.
“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
이 문장은 붙잡을 수 없음을 알면서도 붙잡고 싶은 마음,
떠나야 했기에 더욱 남겨두고 싶은 청춘에 대한 마지막 윤리적 인사다.
윤동주에게 사랑스러운 추억이란,
결국 떠나지 못한 젊음이 정차장에 남겨진 상태였다.

■ 달삼과 청람의 대화
― 달삼과 청람, ‘왜 그는 늘 기다렸을까요’
달삼은 시를 다 읽고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 조심스럽게 물었다.
“선생님, 윤동주는 왜 늘 기다리는 사람으로 나올까요?
기차를 기다리고, 사람을 기다리고,
결국은 아무것도 오지 않는데요.”
청람은 잠시 고개를 숙였다가 천천히 대답했다.
“달삼아, 기다림은 윤동주에게 선택이 아니라 상태였다.
그는 늘 떠나야 했고, 늘 떠나지 못했지.”
“그럼 이 시에서 기차는 뭔가요?
도쿄로 가는 실제 기차요?”
“실제이면서 동시에 상징이지.
기차는 ‘다른 삶으로 가는 가능성’이었지만,
그 가능성은 늘 ‘아무 새로운 소식도 없이’ 지나가 버렸어.”
달삼은 플랫폼 장면을 다시 읽었다.
“플랫폼에 그림자를 떨어뜨리고 담배를 피우는 장면이
이상하게 쓸쓸해요.
왜 하필 그림자일까요?”
청람은 낮게 웃었다.
“그림자는 존재의 흔적이지만, 실체는 아니지.
윤동주는 그때 이미
자기 삶의 중심이 아니라 가장자리에 서 있었던 거다.”
“비둘기는요?
왜 하필 비둘기 한 떼가 날아요?”
“비둘기는 자유의 상징이지만,
이 시에서는 부끄러울 것도 없이 날아간다.
자유는 아무렇지도 않게 날아가는데,
인간만 그 자리에 멈춰 서 있는 거지.”
달삼은 마지막 구절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
이건… 기도 같아요.”
청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그건 붙잡는 말이 아니라,
이미 떠나버린 것에게 건네는 인사다.”
“선생님,
그럼 윤동주는 왜 젊음을 데리고 가지 못했을까요?”
청람은 한참 침묵하다 말했다.
“시대가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식민지의 청춘은
어디를 가도 정차장일 수밖에 없었다.”
달삼은 조용히 말했다.
“그래서 그는 늘 서성거렸군요.”
“그래.
그러나 기억해라, 달삼아.
서성거림 속에서도 그는 시를 남겼다.
떠나지 못한 자의 기록이
결국 가장 오래 남는다.”
달삼은 시집을 덮으며 말했다.
“선생님,
이 시를 읽으니…
저도 제 정차장이 어디인지
생각하게 돼요.”
청람은 미소 지었다.
“그 질문을 품는 순간,
너는 이미 기차에 오른 셈이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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