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시 <무서운 시간> ― 나를 부르는 목소리, 하늘이 없는 시대의 공포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윤동주 시 <무서운 시간> ― 나를 부르는 목소리, 하늘이 없는 시대의 공포 2025.12.17
■
무서운 시간
윤동주
거 나를 부르는 것이 누구요,
가랑잎 이파리 푸르려 나오는 그늘인데,
나 아직 여기 호흡이 남아 있소.
한 번도 손 들어 보지 못한 나를
손 들어 표할 하늘도 없는 나를
어디에 내 한몸 둘 하늘이 있어
나를 부르는 것이오.
일을 마치고 내 죽는 날 아침에는
서럽지도 않은 가랑잎이 떨어질텐데⋯⋯
나를 부르지마오.


■ 청람 시평
윤동주 시 <무서운 시간>
― 나를 부르는 목소리, 하늘이 없는 시대의 공포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윤동주의 <무서운 시간>은 ‘죽음의 예감’을 노래한 시가 아니다. 이 시가 무서운 이유는 죽음 때문이 아니라, 살아 있으나 설 곳이 없는 상태를 정면으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시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거 나를 부르는 것이 누구요.” 이 물음에는 상대가 없다. 주체는 호명되었으나, 부른 자는 끝내 나타나지 않는다. 윤동주는 이름이 불리는 순간의 공포—부름은 있으나 책임질 하늘이 없는 시대—를 포착한다.
가랑잎의 이미지는 이 시의 핵심 장치다. “가랑잎 이파리 푸르려 나오는 그늘”은 생의 미세한 기척이지만, 그 기척은 빛이 아니라 그늘에서 온다. 시인은 말한다. “나 아직 여기 호흡이 남아 있소.” 이는 생존의 선언이자, 부름에 대한 유예 요청이다. 그는 아직 살아 있으나, 살아 있음이 곧 보호를 뜻하지 않는 시간에 서 있다.
중심부에서 시는 결정적인 고백을 내놓는다.
“한 번도 손 들어 보지 못한 나를 / 손 들어 표할 하늘도 없는 나를.”
손 들기는 참여의 표식이며, 동의의 몸짓이다. 그러나 이 시대에는 손을 들어도 응답할 하늘이 없다. 참여의 제스처는 공중에 매달린 채 의미를 잃는다. 윤동주는 이 무력감을 개인의 비겁함으로 환원하지 않는다. 외려 제스처를 받아줄 질서의 부재를 문제 삼는다.
“어디에 내 한몸 둘 하늘이 있어.”
이 문장은 공간의 결핍이 아니라, 윤리적 좌표의 상실을 말한다. 하늘은 신이자 법이며, 최종의 심급이다. 그 하늘이 없을 때, 인간은 부름에 응답할 수 없다.
시인은 다시 말한다.
“나를 부르는 것이오.” 반복되는 호명은 강제이며, 응답은 불가능하다.
마지막 연에서 시인은 자신의 죽음을 예견한다. 그러나 그 죽음은 장엄하지 않다. “서럽지도 않은 가랑잎이 떨어질” 뿐이다. 비극의 과잉도, 구원의 약속도 없다.
그는 간청한다.
“나를 부르지마오.” 이 문장은 비겁의 고백이 아니라, 무책임한 호명에 대한 윤리적 거절이다.
<무서운 시간>은 윤동주의 시 가운데 가장 냉정한 작품 중 하나다. 여기에는 위로도, 탈출도 없다. 다만 부름의 공포를 정확히 인식한 한 인간의 정직한 언어가 있다. 하늘 없는 시대에, 부름은 곧 폭력이다. 윤동주는 그 폭력 앞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자유—응답하지 않을 권리—를 선택한다.

■ 오산학교 제자 달삼과 문예교사 청람의 대화
― 달삼과 청람, “왜 그는 부르지 말라고 했을까”
달삼은 시를 읽고 한동안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러다 낮게 말했다.
“선생님… 이 시는 숨이 막혀요.
누가 부르는데, 왜 부르는지 모르겠어요.”
청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바로 이 시의 공포다, 달삼아.
부름은 있는데, 이유와 책임이 없다.”
달삼이 물었다.
“보통 부르면… 응답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렇지.
허나
윤동주는 묻는다.
응답할 하늘이 있는가를.”
달삼은 ‘손 들어 표할 하늘도 없는 나를’이라는 구절을 짚었다.
“이 말이 너무 아파요.
손을 들었는데, 아무도 안 보는 느낌이에요.”
청람은 조용히 말했다.
“손 들기는 용기다.
그 용기를 받아줄 질서가 없으면,
그건 위험이 된다.”
“그래서 윤동주는 한 번도 손을 들지 못했다고 했군요.”
“못 든 게 아니라,
들 수 없었던 것이다.”
달삼은 다시 물었다.
“그럼 ‘나를 부르는 것이 누구요’에서
그 ‘누구’는 누구예요?”
청람은 잠시 침묵하다 답했다.
“시대다.
제도다.
혹은 이름 없는 권력이다.
윤동주는 그 얼굴 없는 목소리를 두려워했다.”
달삼은 마지막 연을 읽었다.
“‘일을 마치고 내 죽는 날 아침에는…’
왜 이렇게 담담해요?”
“그 담담함이 윤동주의 윤리다.
비극을 과장하지 않는 대신,
부름의 폭력을 고발한다.”
달삼은 조용히 물었다.
“선생님,
그럼 윤동주는 도망친 건가요?”
청람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그는 무책임한 부름에 응답하지 않는 용기를 택한 거다.”
“그래서 ‘나를 부르지마오’라고…”
“그래.
그건 마지막 자유의 문장이다.”
달삼은 시집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선생님,
이 시를 읽으니까
아무 부름에나 응답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청람은 미소를 지었다.
“그 생각을 갖는 순간,
너는 이미 하늘을 찾기 시작한 거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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