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시 <쉽게 씌어진 시> ― “부끄러움을 미학으로 만든 시인의 자기고백” ㅡ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윤동주 시 <쉽게 씌어진 시> ― “부끄러움을 미학으로 만든 시인의 자기고백” 2025.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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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씌어진 시
윤동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시인(詩人)이란 슬픈 천명(天命)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詩)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풍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어
대학(大學)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敎授)의 강의(講義)를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릴 때 동무들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沈澱)하는 것일까?
인생(人生)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詩)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곰 내 몰고,
시대(時代)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最後)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慰安)으로 잡는 최초(最初)의 악수(握手).

■ 청람 시평
윤동주 시 쉽게 <씌어진 시>
― “부끄러움을 미학으로 만든 시인의 자기고백”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윤동주의 <쉽게 씌어진 시>는 식민지 시대 청년의 내면 기록이자, 문학적 결의이며, 동시에 존재 선언이다. 이 시가 지닌 핵심적 울림은 시가 ‘쉽게 쓰였다는 사실’에 대한 부끄러움이다. 그러나 이 부끄러움은 단순한 감정이나 자기비하가 아니라, 조국을 잃은 시대에 언어를 다루는 자가 반드시 느껴야 할 정직한 자기성찰이다. 윤동주는 일본 유학 중 일본의 대학에서 일본인 교수의 강의를 들으며 시를 썼다. 이 작품은 바로 그 현실 속에서 태어났다. 언어를 쓰는 손끝이 민족의 상처를 통과하고 있다는 사실, 그러면서도 시가 술술 써진다는 현실은 시인에게 칼날 같은 죄의식이었다.
윤동주의 삶의 철학은 단단한 윤리적 태도를 바탕으로 한다. 그는 문학을 생계의 도구나 사상의 장식으로 여기지 않았다. 시란 시대적 질문을 드러내는 진실의 형식이었고, 시인이란 그 질문을 감당하는 사람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그래서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라는 문장은, 재능에 대한 겸손이 아니라, 역사를 견디는 자로서의 윤리 고백이다. 남의 나라 땅에서 남의 언어를 듣고 배우며 쓰게 되는 시가 너무도 자연스럽고 능숙하게 흘러나오는 순간, 그는 자신 내부의 균열을 본 것이다.
윤동주의 미의식 역시 선명하다. 그는 현실을 미화하거나 감정을 장식하는 시인이 아니다. 언어를 결단의 장소로 삼았고, 시를 고백의 도구로 선택했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라는 선언은 공간 묘사가 아니라 존재적 진술이다. 방을 남의 나라라고 부르는 순간, 시인은 현실이 얼마나 뒤집혀 있는지를 드러낸다. 조국을 잃은 민족의 언어로 시를 쓰면서, 조국의 땅이 아닌 일본에서 글을 남기는 모순. 이 모순 속에서 언어는 더없이 선명해지고 문장은 절제된 칼날처럼 다듬어진다.
윤동주의 시는 함부로 과장하지 않는다. 불필요한 말은 없고, 감정은 절제되어 있다. 대신 숨결처럼 남아 있는 것은 양심의 떨림이다. 마지막 부분에서 시인은 외부 현실에서 답을 찾지 않는다. 시대도, 타인도, 조국도, 미래도 붙잡을 수 없기에 그는 자기 자신에게 손을 내민다.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이 문장은 자기구원의 순간이자 절망의 한가운데 피어오른 희망의 결정체다. 그것은 곧 윤동주 문학의 중심 가치이기도 하다. 역사의 어둠 속에서도 자기 양심을 저버리지 않는 자세, 절망을 미화하지 않되 포기하지 않는 태도, 고통을 감상으로 소비하지 않고 완숙한 언어로 승화하는 힘.
윤동주의 시가 세월을 건너 현재까지 살아 있는 이유는, 그의 시가 시대적 아픔을 단순히 재현하는 것을 넘어서, 아픔을 견디는 사람의 정신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시적 재능이 아니었다. 문학적 기교가 아니었다. 윤동주의 시는 양심이었다. 그 양심은 자신과 시대를 동시에 마주할 수 있는 투명한 거울이었다.
<쉽게 씌어진 시>는 아름다운 문학 작품이기 전에 한 인간의 실존적 고백이다. 그리고 그 고백은 우리에게 말한다.
언어가 쉬워질수록 영혼은 더 아파지고,
시가 쉽게 쓰일수록 삶은 더욱 진실해진다.
그래서 윤동주는 끝내 부끄러움을 택했다.
그 부끄러움이 곧 그의 품격이었기 때문이다.

■ 오산학교 제자 달삼과 문예교사 청람의 대화
― “왜 그는 일본에서 시를 썼을까, 왜 부끄러웠을까”
다섯메 교정 나무 벤치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초가을 저녁, 풀잎 사이로 서늘한 바람이 스쳤다.
달삼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선생님…
솔직히 말해도 돼요?”
청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달삼아,
윤동주를 읽는 데 솔직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지.”
달삼은 숨을 고르고 말했다.
“저는요,
윤동주가 일본으로 유학을 갔다는 사실이
아직도 잘 이해가 안 됩니다.”
청람은 말없이 달삼을 바라보았다.
“그 시대 조선 사람들은
일본을 적국으로 여겼잖아요.
상하이로, 만주로 가서
총을 들고 독립운동을 하던 사람들도 있었고요.”
달삼의 말이 점점 또렷해졌다.
“그런데 윤동주는
그 적국으로 가서 공부를 했어요.
이건…
적극적으로 싸우던 항일운동가들 입장에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을 것 같아요.”
청람은 그 말 위에 곧바로 답을 얹지 않았다.
일부러 침묵을 길게 두었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달삼아,
지금 네가 던진 질문은
윤동주를 읽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품고,
가장 쉽게 피하려 하는 질문이다.”
“저만 그런 생각이 드는 건 아니군요?”
“아니다.
다만 많은 사람들은
그 질문을 끝까지 밀어붙이지 않을 뿐이지.”
청람은 잠시 숨을 고르고 말을 이었다.
“먼저 이것부터 분명히 하자.
윤동주는
독립운동가가 되지 못한 자신을
누구보다 또렷하게 알고 있던 시인이었다.”
달삼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걸…
그도 알고 있었군요.”
“그래.
그래서 그는 시에서
한 번도 자기를 영웅으로 만들지 않았다.
항상 가장 먼저 의심한 대상이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달삼이 다시 물었다.
“그런데도 일본으로 간 선택은…
너무 위험한 선택 아니었을까요?”
청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그래서 윤동주는
그 선택을 끝까지 정당화하지 않았다.”
“정당화하지 않았다고요?”
“그래.
그는 일본에 간 것을
‘불가피한 선택’이라고는 말했지만,
‘옳은 선택’이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달삼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계속 부끄러워했던 거군요.”
“바로 그거다.”
청람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윤동주는
‘왜 나는 상하이가 아니라 일본이었는가’,
‘왜 나는 총이 아니라 펜이었는가’
이 질문을
평생 자기 자신에게 했다.”
달삼은 잠시 생각하다가
더 날카로운 질문을 했다.
“그럼 이렇게 물어볼게요, 선생님.
총칼로 싸운 사람들에 비하면
윤동주의 선택은
덜 치열한 저항이었을까요?”
청람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저항에는 여러 얼굴이 있다.”
달삼이 귀를 기울였다.
“독일에는 괴테가 있었고,
영국에는 셰익스피어가 있었지.
그들은 총을 들지 않았지만
글로 인간을 바꾸고
나라의 정신을 세웠다.”
“그래서
‘펜은 검보다 강하다’는 말이 생겼군요.”
“그렇다.”
청람은 말을 이었다.
“윤동주가 일본으로 간 것을
도피로만 보는 시선도 있다.
그러나 다른 각도에서 보면,
그것은 일본을 정확히 알기 위한 선택이기도 했다.”
달삼의 눈이 번뜩였다.
“일본을 증오하기보다
적을 이해하려 한 거군요.”
“그래.
일본의 언어와 사유를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보고,
그 체계의 허위와 폭력을
내부에서 체험하는 것.”
“그것도…
저항일 수 있겠네요.”
“바로 그거다.”
청람은 단호하게 말했다.
“윤동주는 일본을 동경해서 간 것이 아니다.
일본을 극복하기 위해
일본을 통과하려 한 시인이었다.”
달삼은 한참을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렇다면 참회는…
자기 선택을 부정해서가 아니라,
그 선택조차
완전한 답이 될 수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겠네요.”
청람의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번졌다.
“그래, 달삼아.
윤동주의 참회는
비겁함의 고백이 아니다.
사유의 끝에서 나온 정직함이다.”
“총을 들지 않은 것도,
일본에 간 것도
그는 한 번도
자기 합리화로 포장하지 않았군요.”
“그래서 그의 시가
지금까지 살아남은 거다.”
달삼이 조용히 말했다.
“만약 윤동주가
자기 선택을 영웅적으로 꾸몄다면,
우리는 지금
그를 이렇게 깊이 읽지 못했을 것 같아요.”
청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윤동주는
자신을 변호하지 않았기 때문에
후대의 독자들이
그를 변호하게 된 시인이다.”
두 사람은 벤치에서 일어나
천천히 언덕을 내려왔다.
가로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달삼이 마지막으로 말했다.
“선생님,
이제 윤동주가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약한 시인이 아니라,
끝까지 흔들린 강한 인간으로요.”
청람이 조용히 답했다.
“그래.
윤동주는
답을 준 시인이 아니라
질문을 남긴 시인이다.”
잠시 후 청람이 덧붙였다.
“다음 차시에는
그 질문이 가장 깊은 바닥까지 내려간 시,
<참회록>을 읽는다.”
달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는
총과 펜,
저항과 양심 사이에서
그가 얼마나 고독했는지
생각해 보고 오겠습니다.”
청람은 천천히 말했다.
“그 고독을 이해하는 순간,
윤동주는
역사가 아니라
우리의 동시대가 된다.”
저녁 바람이 불었다.
검보다 강한 것은 펜이 아니었다.
펜을 들고도 끝내 부끄러움을 버리지 않은
한 인간의 양심,
그것이 윤동주였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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