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돌아온 봄》 ㅡ 청람 김왕식
《되돌아온 봄》 2025.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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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돌아온 봄》
김왕식
여고 친구 영숙의 전화는 문득, 겨울밤의 유리창처럼 어둡고 차가웠다.
졸업 후 스무 해, 그녀는 늘 선망의 대상이었다. 명문대, 대기업, 든든한 남편, 세 아이가 있는 풍족한 삶. 명예와 안정이란 울타리 안에서 흔들림 없이 살아온 사람이라 여겼다. 그런데 그날의 목소리는 낯선 금이 가 있었다.
“남편이… 아이를 데려왔어. 버려진 아이래. 키우자고 해.”
영숙은 떨렸다. 말투는 숨을 헐떡였고, 문장 사이마다 숨겨진 울음이 삐져나왔다.
어떤 말이 위로일까. 불교를 믿는 나는 조심스레 말했다.
“인연 아닌가. 받아들여. 키워.”
그 말이 가볍지 않음을 알았다. 그러나 이상하리만큼 그녀의 숨소리는 그 말을 붙잡았다.
아이의 이름은 ‘해온’이었다.
하지만 해온은 말을 하지 않았다. 다섯 살이 되도록, 단 하나의 단어도 입 밖으로 내지 못했다. 영숙은 며칠에 한 번씩 전화를 걸어왔다.
“눈빛은 밝아. 그런데 입을 열지 않아.”
“밥은 잘 먹어. 근데 잘 웃지 않아.”
“낯설진 않은데… 뭐랄까, 우리와 조금 다른 세상에 있는 것 같아.”
그 아이가 처음 집에 올 때, 겨울이었다.
그리고 다섯 번째 생일날, 아이는 드디어 말을 토해 냈다.
“엄마.”
영숙은 울었다. 아이가 품에 안기자, 남편은 숨을 길게 토해냈다. 환희라기보다 놓임에 가까웠다. 이상했다. 뭔가 감춰진 무게가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진실이 드러났다.
해온은 남편의 아이였다.
한때, 업무 스트레스에 무너지던 남편이 어느 산사로 도망치듯 들어갔고, 그곳에서 비구니와 인연 아닌 인연을 맺어 생긴 아이였다. 임신을 숨기고 낳은 뒤 버려질 수밖에 없던 삶. 그리고 그 아이를 되찾아온 죄책감. 그 사실이 영숙의 귓가에 떨어졌다.
영숙은 며칠 동안 연락을 끊었다.
집 안에서는 문이 닫히는 소리가 잦아지고, 아이는 조용히 거실에 앉아 작은 나무인형을 만지작거렸다. 남편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자책은 시간이 흐를수록 진흙처럼 몸을 잡아끌었다.
그러다 어느 밤, 영숙은 다시 전화를 걸었다. 목소리가 이상하게 평온했다.
“그 여자… 비구니 말이야. 산사에 가봤어.”
“그래?”
“죽었대. 해온 두 살 때.”
짧은 침묵이 이어졌다.
“그 여자 이름이 혜심이었대. 스물일곱.”
영숙은 오래 울었다. 그 울음 속에는 원망과 연민과 체념과 사랑이 동시에 있었다.
그해 봄, 영숙은 해온의 손을 잡고 다시 산사를 찾았다. 아이는 말없이 나무바닥을 쓰다듬었다. 바람이 절집의 지붕 위를 가볍게 넘어갔다. 스님의 말이 귓가를 스쳤다.
“혜심 스님은 늘 그러셨습니다. ‘업은 꽃처럼 피고 지는 것일 뿐.’ 아이를 사랑하셨습니다. 끝내 사랑하셨습니다.”
그날 이후 해온은 달라졌다. 말을 배우기 시작했고, 밤마다 짧은 기도를 올렸다. 해온의 눈동자는 유난히 깊었다. 미움도 두려움도 아닌, 어른들의 마음을 오래 어루만지는 평온한 빛이 있었다.
그리고 몇 달 후, 영숙은 남편과 아이들을 데리고 다시 길을 나섰다.
그 산사의 뒤편, 깊은 숲길.
바람에는 봄 냄새가 묻어 있었다.
해온이 갑자기 멈춰 섰다.
작은 손을 들어 보였다.
“엄마…”
영숙은 걸음을 멈췄다.
“…엄마 여기 있어.”
해온이 가리킨 곳은 낡은 비석 하나가 선 자리였다.
비석에는 이름도, 생몰년월도 새겨져 있지 않았다.
다만 아주 작은 글자 하나.
“혜(慧)”
영숙은 무릎을 꿇었다.
바람이 불었다.
그리고 해온이 귓가에 속삭였다.
“엄마, 이제 됐어.”
영숙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그러나 그 눈물은 슬픔보다 안도의 온기가 더 많았다.
그 아이는 버려진 씨앗이 아니었다.
숨겨진 인연이었으며, 결국 돌아온 봄이었다.
그날 이후 영숙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남편도 더 이상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해온은 천천히 말을 배웠고, 그 말의 첫 장은 사랑이었다.
며칠 후, 영숙은 손때 묻은 유아용 불경책을 하나 발견했다. 해온의 방 서랍 깊숙한 곳에서.
첫 장에는 낯선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해온아, 엄마는 늘 여기 있다.
눈으로 보이지 않는 곳일 뿐이야.”
필체는 여성의 것이었다.
날짜는 해온이 태어나기 전날.
그 옆에는 작은 글씨가 하나 더 있었다.
“네 이름은 ‘다시 오는 해’라는 뜻이란다.”
영숙은 오래 책을 들여다보았다.
천천히 미소 지었다.
봄은 그렇게 돌아왔다.
눈을 뜨는 자에게만 보이는 방식으로.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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