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박선주 수필가의 <남겨진 한복 상자> — 삶을 품은 남루함의 아름다움ㅡ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하다

박선주 수필가의 <남겨진 한복 상자> — 삶을 품은 남루함의 아름다움 2025.12.19
박선주 수필가의 <남겨진 한복 상자> — 삶을 품은 남루함의 아름다움

남겨진 한복 상자

수필가 박선주

제주도 여행에서 돌아와 사진을 정리했다. 동백꽃들이 땅에 떨어져 붉은 융단처럼 깔린 언덕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 속, 노란 셔츠를 입은 내 모습은 인생 사진이라 할 만큼 마음에 쏙 들었다. 문득 그 옷의 기억에 뒤따라 오는 한 남자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그는 우리 집에 잠시 머물다 떠난 세입자 L이다.

L이 처음으로 우리 집으로 들어오던 날은 찬바람에 옷깃이 여며지던 늦가을이었다. 이혼 후 급히 집을 나왔다며 손에 든 짐이라곤 단출한 가방 하나뿐이었다. 텅 빈 방엔 기본으로 비치된 가전제품 몇 개만 덩그러니 자리할 뿐 제대로 된 가구 하나 없었다. 허전한 빈방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짠해졌다. 나는 그릇 몇 개와 냄비, 수저를 챙겨 건넸고 김치 몇 쪽도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 그는 고개를 깊이 숙이며 연신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했다. 그 모습이 아직도 선하게 남아있다. 남편은 그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아직 어린 아들이 있잖아요. 뭐가 힘들었는지는 모르지만 경제적으로도 자리 잡고 다시 가족 곁으로 가는 게 좋지 않겠어요.” 그는 우리 딸 아들 또래였다. L은 그 말을 한숨도 변명도 없이 묵묵히 듣기만 했다. 그는 해외배송업체에서 일하며 착실한 생활을 하는 듯 보였다. 어느 날은 젊은 아가씨 방을 며칠째 엿보던 수상한 남자를 발견하고 신고해서 남편의 그에 대한 신뢰는 더 두터워졌다.

하지만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면서부터 그의 삶은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어느 날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L이 보증금을 담보로 돈을 빌려달래. 동업하는 친구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장례비가 필요하대.” 처음 빌려간 돈은 약속대로 갚았다. 하지만  아이가 다쳐 수술비가 필요하다는 등, 비슷한 일이 반복되었다. 매사 냉철한 남편도 이상하게 그에게만 약해졌다.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야. 한 번만 더 믿어보자.” 그러나 그 마지막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추석 연휴에 그가 선물을 보내왔다. 처음엔 예전에 그가 건넨 낚시 물고기나 고향 푸성귀처럼 소소한 것이라 여겼다. 그런데 남편의 팔엔 고급 브랜드 남,녀 점퍼가 들려 있었다. “부모님처럼 걱정해 주시고 잘해 주셔서 감사해서요.”라고 했단다. 너무 과해 부담스러웠다. 명절이라 집에 와 있던 사위는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된다고 조심하라고 했다. 그러나 우리 부부는 사람의 선의를 곡해하면 안 된다며 그의 편을 들었다. 눈대중으로 맞춘 옷은 둘 다 맞지 않았다. 내 노란색 등산 셔츠와 남편 남색 점퍼로 교환하면서도 그의 진심의 무게를 떠올리려 애를 썼다. 하지만 그 뒤로 그는 돈을 갚지 않았고 월세도 차츰 미루기 시작했다. 연락이 점점 뜸해졌고, 어느 날부터 집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연락이 두절된 시간들은 그를 믿어보려했던 남편의 마음에 조금씩 휑한 바람이 스며들게 했다.

남편 은퇴 후 작은 다가구주택을 마련해 세 놓기 시작한 지도 10여 년이 넘었다. 그간 이런저런 사연을 지닌 많은 사람들이 우리 집을 거쳐 갔다. 우리 부부가 가장 바라던 것은 그들이 잠시 우리 집을 둥지 삼아 기반을 닦은 뒤 좀 더 안정된 보금자리로 날아가는 것이었다. 신혼부부가 들어와 아기가 생기고 조금이라도 형편이 나아져 작은 아파트로 이사 갈 때는 우리 일처럼 기쁘고 뿌듯했다. 그러나 그런 경우는 점점 줄어들었다. 구도심의 일자리들이 강남이나 판교 쪽으로 이동하면서 일산 근처엔 그럴듯한 일자리가 많이 줄었고, 코로나 시기를 지나며 사정은 더 열악해졌다.

인간에게 집이란 어떤 의미일까. 단순히 추위와 더위, 비바람을 피하는 공간만은 아닐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음식과 대화를 나누며 추억을 켜켜이 쌓아가는 소중한 삶의 터전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만의 이상적인 스위트 홈을 꿈꿀 것이다. 누구는 penthouses 같은 화려한 집을, 누군가는 들꽃향기 가득한 전원주택을, 누군가는 식구들이 발 뻗고 잘수 있는 서민 아파트라도 간절히 바란다. 나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남편이 처음 얻은 신혼집은 방배동 골목의 반지하 단칸방이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가난을 크게 의식하지는 않았다. 곧 대전으로 이전할 예정이라 잠시 머물 집이라 생각했고, 희망의 미래가 있었기 때문이다. 둘 다 직장이 있었고, 허리띠만 졸라매고 알뜰하게 저축하면 언젠가 작은 집 하나는 갖게 되리라 믿었다.

그러나 막상 집을 세놓기 시작하며 조금씩 저축해 자립하는 것이, 자신만의 작은 보금자리 하나 마련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게 되었다. 집이 부의 축적 수단이 되고 집값이 천정부지로 오르면서 젊은이들의 집에 대한 희망은 자주 빛을 잃어가고 꺼져버리기도 한다. 갑작스런 병, 예상치 못한 실직, 한 번의 사고 비용만으로도 삶이 기울어져 버리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보증금을 담보로 돈을 빌리지만 갚지 못한 채 떠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물론 그중에 무분별한 낭비 등 생활 태도의 문제도 있다. 그러나 대다수는 태생적으로 가난한 환경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현실이 더 큰 원인이었다. 그들에게 ‘내 집 마련’은 꿈이 아니라 한낱 사치였다. 그들의 처지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지만 무한정 그들의 편의를 봐 줄 수도 없어서 그런 일 앞에서는 늘 고민에 빠지게 된다.

몇 달 뒤, 어렵게 L과 연락이 닿았다. 충청도 어느 회사에 다니며 기숙사에 머물고 있다고 했다. ‘방에 남겨진 짐은 모두 버려주세요.“ 보증금은 이미 사라졌고 공과금도 연체되어 있었다. 남편과 함께  문을 열었을 때, 묵은 먼지 냄새와 함께 싸한 정적만이 방을 감싸고 있었다. 그 가운데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상자 하나가 눈에 띄었다. 단정하게 놓여있는 그 상자는 방의 초라한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았다. 두껑을 열자, 남자 한복 한 벌이 곱게 접혀있었다. 혼례 때나 입을 법한 화려한 배색의 신랑 한복이었다. 그 순간 나는 그 한복이 말하는 많은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한 때는 행복한 신혼 생활이 있었고 좋은 남편과 아빠가 되고 싶었던 한 남자의 꿈과 미래에 대한 희망이 그 한복 안에 고스란히 스며 있는 듯했다. 나는 L에게 전화를 걸어 “한복이 있던데 부쳐줄까요?” 물었다. 잠시의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담담한 목소리로 “그냥… 버려주세요.” 그 짧은 말안에는 모든 것을 포기한 듯한 체념이 섞여있었다. 수화기 너머의 그 건조한 음성이 오래도록 귀에 남았다.

나는 그의 한복을 버릴 수 없었다. 한때는 가정을 지키고자 했던 한 남자의 꿈이었고 가족과 함께 할 미래가 담겨 있는 옷이라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가 언젠가 가족과 함께 이 한복을 꺼내 입고 따뜻한 명절을 보낼 수 있기를 바라며, 나는 조심스럽게 벽장 한쪽에 그 상자를 올려놓았다. 그가 끝까지 희망의 불씨를 잡고 다시 지펴 낼수 있기를 빌어본다.

□ 수필가 박선주

대구출생, 경북사대부고, 경북대사범대 졸업, 중고교 교사역임,

2023, 『한국수필』 등단,

수상

한국수필 독서문학상 수상(2024),

저서

공저 『하얀 그림자』등 외 다수

솔샘문학회,

영미 소설읽기클럽 Giant peach회원

박선주 수필가의 <남겨진 한복 상자>

— 삶을 품은 남루함의 아름다움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수필가 박선주의 작품은 낯설지 않다. 남의 사연을 바라보는 글이지만, 결국 우리 자신의 내면을 비춰내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한 남자의 방에 남겨진 신랑 한복이라는 사물 하나를 중심축으로 삼아, 시대의 슬픔과 개인의 꿈, 그리고 인간이 지니는 존엄의 결을 차분히 펼쳐낸다. 군더더기 없이 담백하게 적힌 문장 속에는, 깊고 오래된 배려의 온기가 배어 있다. 대상을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 속에 깃든 삶의 온도를 꺼내어 보여주는 글이다.

작품의 미의식은 단순한 사실의 기록을 넘어선다. 눈앞의 현실은 비극을 말하지만, 글의 시선은 비극 너머에 남은 가능성을 응시한다. 버려진 한복 한 벌은 실패의 증거도, 책임의 회피도 아니다. 그것은 한 사람의 꿈이 깃든 상징이다. 한복은 과거의 잘못보다 더 앞서, 존재의 본래 의지를 증언한다. 가장 빛나고 싶었던 순간, 가장 따뜻한 가정을 만들고 싶었던 마음, 살아가고자 했던 의지가 겹겹이 접혀 옷감 속에 남아 있다. 글은 그 흔적을 증거로 삼아, 인간의 삶이 결코 단일한 서사로 규정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박선주의 시선이 특별한 이유는, 누군가의 실패를 판단하지 않고 그 실패를 가능하게 한 시대의 구조를 함께 응시하기 때문이다. 주택 임대인으로서의 경험을 통해 작가는 ‘집’이라는 존재가 단순히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인간의 미래를 지탱하는 심리적 토대임을 다시 확인한다. 동시에 경제적 불안정, 일자리의 소멸, 계층 이동의 막힘 등 현실의 굴곡 속에서 사랑과 희망이 얼마나 쉽게 닳아버리는지를 보여준다. 그럼에도 글은 냉소로 떨어지지 않는다. 작가가 벽장 한쪽에 상자를 올려두는 장면에서, 독자는 비로소 이 글이 비판이 아니라 연대의 기록임을 깨닫는다.

여기서 빛나는 것은 작가 자신의 가치철학이다.

사람은 한 번의 실패로 규정되거나 폐기되는 존재가 아니라는 믿음.

상처를 감추지 않고 삶의 부끄러움을 함께 감당해주는 태도.

누군가가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자리를 끝까지 남겨두는 따뜻한 마음.

작가는 화려한 문장을 덧칠하지 않고, 사건을 검열하거나 미화하지 않는다.

담백한 진술이 외려 더 큰 울림을 만들어낸다.

비극을 바라보는 눈길이 결코 차갑지 않다.

남겨진 한복 상자는 쓰러진 인간의 증거가 아니라, 아직 꺼지지 않은 가능성의 증거다.

누군가는 그것을 버릴 것이다.

누군가는 그것을 잊어버릴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그것을 간직한다.

바로 이 태도가 문학이라는 길 위에서 지켜야 할 미의식이며, 삶을 대하는 존엄한 방식이다.

이 글은 하나의 수필이 아니라,

포기된 삶을 향한 조용한 기도다.

사람은 누구나 넘어지지만,

누구나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믿음.

그 믿음을 담아두기 위해

작가는 낡은 한복 상자를

버리지 않고 남겨둔다.

독자는 마지막 문장을 넘어서도

그 상자를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자신에게 묻게 된다.

“나는 오늘, 누구의 희망을 버리지 않고 남겨두었는가.”

ㅡ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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