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의 자리, 품격의 자리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왼손의 자리, 품격의 자리 2025.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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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손의 자리, 품격의 자리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명문가는 결코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는다. 눈에 띄는 건물이나 화려한 재무제표가 역사를 만들지 않는다. 진정한 명문은 태도가 만들고, 태도는 철학에서 비롯된다. 사람을 대하는 눈빛, 세상을 마주하는 높이, 사소한 결 하나까지 허투루 지나치지 않는 정신. 그것이 시대를 넘어 이어질 품격의 골조가 된다.
한 호텔의 커피숍에서 있었던 일화가 긴 여운을 남긴다. 그 당시 한 잔에 18,000원 하는 커피. 일반 커피숍 커피의 서너 배 이상의 값이다. 회장은 직원에게 이유를 물었다. “왜 18,000원을 받습니까?” 직원은 주저 없이 말했다. “고품격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말은 정확했으나, 사실은 말과 멀었다.
그 직원은 회장 앞에 앉아 있는 손님에게 커피잔을 오른손 방향으로 가지런히 내려놓았다. 깔끔했고, 절차는 완벽했다.
그러나 한 가지가 빠져 있었다. 손님은 왼손잡이였다. 물잔을 들 때부터 왼손을 사용했지만 직원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정작 보아야 할 것은 손님이었는데, 직원은 매뉴얼을 보고 있었다. 그 자리에서 회장은 조용히 말했다.
“고품격이란 고객의 움직임을 읽는 것입니다.”
여기엔 단순한 서비스 이상의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18,000원의 가격은 고급 가구를 위한 금액이 아니며, 반듯한 제복을 위한 비용도 아니다. 그것은 손님 한 사람의 개성을 발견하고 존중할 수 있는 능력을 향한 값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 커피는 비싼 음료에 불과하다.
품격은 늘 작은 데서 태어난다.
작은 관찰에서, 작은 배려에서, 한 사람을 향한 조용한 세심함에서. 누군가에게 커피잔을 내려놓는 일조차 깊은 철학을 담을 수 있다. 어느 손을 사용하는지를 살피는 순간, 일은 기능에서 가치로, 서비스는 업무에서 예술로 변한다. 디테일은 기술이 아니라 마음이며, 그 마음은 사랑에서 비롯된다.
오늘의 이야기는 기업만을 위한 이야기가 아니다. 삶 전체를 가리킨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오른손잡이의 기준으로 왼손잡이를 평가했는가. 가정에서, 일터에서, 신앙의 자리에서, 관계의 순간마다 우리는 상대의 손을 보지 않은 채 자신의 손을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았는가. 누군가에게는 왼쪽에 놓아야 할 커피잔을, 무심히 오른쪽에 내려놓았던 적이 얼마나 많았는가.
명문가의 품격은 큰 기념식장에서 드러나지 않는다. 조용한 테이블 위에 컵 하나를 내려놓는 순간에 드러난다. 남의 다름을 보고 기꺼이 받아들이는 태도. 불편을 먼저 발견하고 움직이는 감각. 상대가 어느 손으로 잔을 드는지 살피는 눈. 그것이 기업을 오래 가게 하고, 가정을 지키고, 사회를 건강하게 만든다.
왼손잡이에게는 왼쪽이 편하다. 그 사실 하나를 발견하는 데 특별한 재능이 필요하지 않다. 다만 관심이 필요하다. 마음이 필요하다. 사람을 본다는 태도가 필요하다.
조용히 되묻게 된다.
나는 과연 얼마나 세심하게 사람을 보며 살아가고 있는가.
내 글은, 내 삶은, 내 관계는 오른손잡이 세상에 갇혀 있지는 않은가.
누군가의 왼손을 보고도 알아차리지 못한 날이 얼마나 많았던가.
내가 쓴 문장들이 독자의 영혼을 향하지 않고, 스스로의 관념에 머문 적은 없었던가.
사람을 보기보다 생각을 앞세우고, 마음을 읽기보다 판단을 먼저 얹었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품격을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품격을 살아내야 한다는 사실이 마음을 조용히 울린다. 사랑을 말하기 전에 사랑을 보여야 하고, 섬김을 말하기 전에 섬겨야 하며, 배려를 말하기 전에 배려할 수 있어야 한다.
손님은 왼손으로 물잔을 들었다.
우리는 알아차렸어야 했다.
품격은 그 작은 손짓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이제 묻는다.
나는 오늘 누구의 손을 보고 있는가.
그리고 어떻게 그 손을 향해 잔을 내려놓을 것인가.
ㅡ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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