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김신영 시인의 시 <달그락> ― 골목의 심장, 사람의 온기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하다

김신영 시인의 시 <달그락> ― 골목의 심장, 사람의 온기 2025.12.22
김신영 시인의 시 <달그락>  ― 골목의 심장, 사람의 온기

□ 김신영 시인과 나태주 시인

달그락

시인 김신영

하늘과 이윽한 동네에 들어서면

골목이 더 깊은 골목을 만들어 가는 것이 보인다

어디를 봐도 광장으로 뚫려 있는 사방에서

골목은 없어지고 사람이 환하게 피어난다

황금 재벌도 길목에서 편의점 문을 열고

찻물 우리는 작은 카페도 달그락에 있고

하느님도 좁은 길에서 낯선 사람과 악수를 한다

때로 하느님이 잡수실 음식을 나르기도 하는데

이웃에서 건너온 음식은 하나같이 맛있다

세월이 넘어가는 끝에서 만난 길

세상 끝 어디보다 따뜻한 달그락이 있다

□ 김신영 시인 외국 잡지에 소개

김신영 시인의 시 <달그락>

― 골목의 심장, 사람의 온기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김신영 시인의 시 <달그락>은 도시라는 물리적 공간 속에 가려진 정서적 중심을 되살려 내는 작품이다. 시인은 ‘하늘과 이윽한 동네’라는 은유적 공간을 통해 일상과 신성, 과거와 현재, 개인과 공동체가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장소를 제시한다. 이 공간은 특정한 지역이 아니라 마음이 기억하는 장소이며, 결국 인간 존재가 회복되는 자리다. 골목은 단순한 생활공간이 아니라, 인간 관계의 결이 서린 장소이자, 과거가 현재와 화해하는 흐름이다.

첫 연에서 눈에 띄는 것은 “골목이 더 깊은 골목을 만든다”는 표현이다. 골목은 좁고 제한된 공간이지만, 시인의 시각에서는 외려 확장과 깊이의 공간이다. 이는 도시의 물리적 구조를 넘어, 삶이 더 많은 삶을 불러들이고, 관계가 관계를 이루어내는 생태적 구조를 보여준다. 김신영 시인의 골목은 과거의 흔적을 품은 시간의 포개짐이며, 인간의 내적 공간이 확장되는 자리다.

이어지는 연에서 시인은 “광장으로 뚫려 있는 사방”과 대비되는 골목의 존재를 부각한다. 광장은 드러난 공간이자 익명의 영역이지만, 골목은 숨겨진 자리이자 이름을 건네는 장소다. 골목이 사라진 현대 도시에서 관계의 단절이 심화되는 모습을 은근히 환기하며, 동시에 사람이 피어나는 공간으로서의 골목을 회복한다. 사람이 환하게 피어난다는 관찰은, 장소가 인간을 만든다는 역설을 품는다.

김신영 시인의 탁월함은 생활 공간 속에 신성성을 자연스럽게 심는 데 있다. 재벌이 편의점을 열고, 작은 카페가 차를 우리고, 하느님이 골목에서 낯선 사람과 악수를 한다는 구절은 도시의 세속 공간에 영적 울림을 가져온다.

재벌 · 카페 · 하느님이라는 서열화된 존재들은 골목에서 동등하다. 수직적 위계가 수평적 관계로 전환되는 순간, 골목은 성소가 된다. 이는 시인이 지향하는 인간적 세계관을 명확히 드러낸다. 사람은 어느 위치에서든 하나의 생명이며, 관계 속에서 완성된다.

특히 인상적인 대목은 “하느님이 잡수실 음식을 나르기도 한다”는 부분이다. 신과 인간 사이의 경계를 흐리는 이 표현은, 단순한 신성화가 아니라 공동체적 연대의 확장을 의미한다. 이웃이 건넨 음식은 모두 맛있다는 진술은 공동체적 삶의 본질을 함축한다. 음식은 생존의 도구가 아니라 관계의 징표이며, 배려의 형식이다. 달그락은 그 배려들이 서로를 먹여 살리는 장소다.

마지막 연에서 시인은 삶을 시간의 종착역에서 바라본다. “세월이 넘어가는 끝에서 만난 길”이라는 구절은 삶의 회귀를 암시하며, 그 끝자락에서 발견한 것이 달그락이라는 장소임을 상징한다. 세상 어디보다 따뜻한 곳이 바로 이곳이라는 진술은, 도시의 한복판에서 잃어버린 인간 존재의 온기를 회복하는 순간을 보여준다. 달그락은 골목의 이름이자, 인간 공동체의 대명사다.

김신영 시인의 시적 미의식은 일상과 초월을 분리하지 않는다. 눈앞의 사물과 풍경을 가만히 응시하며 그 속에서 인간의 존엄을 발견한다. 화려함으로 감각을 자극하지 않으며, 지나친 추상으로 감정을 소모하지 않는다. 담백하지만 촘촘하다. 일상적이지만 깊다. 단정함 속에서 울림이 살아나는 문체는 시인의 정신적 품격을 반영한다.

<달그락>은 결국 존재가 관계 속에서 완성된다는 사실을 말한다. 골목은 통로가 아니라 마음의 주소이며, 서로가 서로를 살리는 자리다. 이 시를 통해 우리는 다시 묻는다. 어디에 사람이 피어나는가. 골목이 사라진 자리인가, 아니면 사람이 남아 있는 자리인가. 김신영은 그 답을 알고 있다. 달그락, 바로 그곳이다.

ㅡ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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