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

인간다움이라는 질문 앞에서 ㅡ청람 김왕식

인간다움이라는 질문 앞에서 2025.12.24
인간다움이라는 질문 앞에서

인간다움이라는 질문 앞에서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문학은 인간다움을 찾고자 애쓰는 일이다. 그 일은 장식된 얼굴을 벗기는 데서 시작한다. 밝고 예쁜 표정만을 고르는 태도는 문학의 본령이 아니다. 문학은 외려 균열과 상처, 망설임과 비겁함, 욕망과 후회의 층위를 정면으로 마주한다. 인간이 인간답게 서기 위해 감내해야 하는 어두운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 태도, 그 성실함이 문학을 지탱한다.

인간은 단일한 존재가 아니다. 사회가 요구하는 얼굴과 사적인 내면, 말해진 자아와 말해지지 않은 자아가 겹겹이 포개져 있다. 문학은 이 겹을 하나씩 벗겨 ‘내 안에 있는 나’가 어떤 존재인지 묻는다. 그 질문은 도덕적 결론을 재촉하지 않는다. 대신 삶의 실제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어, 인간이 스스로를 오해하지 않도록 돕는다. 여기서 진실은 미화가 아니라 정확성에 가깝다.

문학의 언어는 표면을 넘어 무의식의 지층으로 내려간다. 무의식은 억압된 기억과 말해지지 않은 욕망, 설명되지 않은 공포와 기쁨이 뒤섞인 장소다. 문학은 이 불투명한 영역을 서사의 빛으로 비춘다.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기보다, 흔들리는 정서와 모순된 선택을 견디게 한다. 그 견딤의 과정에서 인간은 자신이 얼마나 취약한지, 동시에 얼마나 강인한지 알게 된다.

인간적인 삶의 진솔함은 완결된 도덕에서 나오지 않는다. 실패와 좌절, 사소한 비루함을 통과한 뒤에야 비로소 드러난다. 문학은 이 통과의 시간을 기록한다. 그래서 문학의 인물들은 모범이 아니라 증언이 된다. 그 증언은 독자를 재판석이 아닌 동행의 자리로 부른다. 판단보다 공감이 먼저 작동할 때, 인간다움은 윤리의 문장으로 환원되지 않고 삶의 결로 살아난다.

문학은 또한 침묵을 언어로 바꾸는 기술이다. 말할 수 없었던 것, 말하면 부서질 것 같아 숨겨두었던 감정들을 문장으로 옮긴다. 그 과정에서 언어는 도구가 아니라 책임이 된다. 정확한 말은 인간을 보호하고, 허위의 말은 인간을 소모한다. 문학이 언어의 윤리를 엄격히 요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학은 인간을 구원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을 정직하게 만든다. 스스로를 과대평가하지 않게 하고, 타인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게 한다. 내면의 어둠을 인정할 때 빛은 과장되지 않는다. 문학이 지속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인간다움을 찾는 이 오래된 노동이 멈추지 않는 한, 문학은 언제나 현재형으로 살아 있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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