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제의 밤 ㅡ 청람 김왕식
성탄제의 밤 2025.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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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제의 밤
김왕식
저녁이 낮아진다
해는 논두렁 끝에 걸리고
팽이는 얼음 위에서
숨을 참고 돈다
언 손이 줄을 감고
몸은 이미
해보다 먼저 기운다
집에 돌아와
밥그릇을 밀어놓고
아궁이 옆에 앉는다
불은 낮고
눈은 먼저 잠긴다
놀다 지친 몸이
잠에 눕고
잠은
몸을 버린다
잠결에
오줌을 싼다
꿈속에서도
나는 달리고
팽이는 아직
빙글빙글 돈다
깨어나
몸이 먼저 안다
이불이 차갑다
여섯 살이면
가릴 나이라 한다
그 말이
등에 얹힌다
어머니는
소리를 낮춘다
키만한 키를
조용히 뒤집어씌운다
“옆집 가서
소금 얻어와라”
키 자락이
땅을 끌고
나는
어둠을 끌고 간다
욕쟁이 할매 집
문턱을 넘는다
할매는
소금독을 열며
혀를 찬다
“아따 이놈아,
똥오줌도 못 가릴 놈이
팽이질은 지랄맞게 해쌌네”
욕이 먼저 닿고
부지깽이가
그 뒤를 따른다
등짝이 안다
세상은
이렇게 가르친다는 걸
나는
소금 한 줌을 쥐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키는 더 무겁고
밤은
아이보다 크다
아궁이 불은 약하고
어머니 손은
내 등을 오래 문지른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 침묵이
오늘의 마지막 말이다
밖에서
교회 종이 울린다
성탄제를 알리는
낮고 늦은 소리다
아기 예수가 태어나는 밤
나는
부끄러움을
몸으로 배운다
그래도
불 속에서
고구마 냄새가 나고
어머니 손은 따뜻하다
그 온기 하나로
이 겨울을 건넌다
눈은 오지 않고
소금만 내리는 밤
나는
잠든 아이로
세상을 맞는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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