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박수현 시인의 시 <처녑> 을 읽고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박수현 시인의 시 <처녑> 을 읽고 2025.12.29
박수현 시인의 시 <처녑> 을 읽고

□ 박수현 시인의 시집 《처녑》

처녑

시인 박수현

여름나기로 단괄정육점에서 처녑을 샀다

소의 세 번째 위장인 처녑은

천 장의 잎새라는 뜻이랬다

검정 비닐봉지에 싸인 채 서너 근으로

갈무리된 전 생애의 중량

밀가루를 묻혀 아코디언 같은 주름을 치댄다

위장 하나 다스리는 일이

첩첩산중 만경창파를 이고 넘는 것 같다는데

어쩌자고 이 초식성 짐승은

깊고 어둔 위장을 네 개나 붙잡고 있는 걸까

쇠뜨기, 둑새풀의 독하고 푸른 숨결과

매미의 울창한 울음과

마지기 마지기 쏟는 작달비를 오래 되새김질했겠다

질기고 무더웠던 여름날을 견뎌내느라

크고 순한 짐승의 위장 같은

울음의 겹 안에 들어가 본 적이 있다

처녑 한 젓가락을 기름장에 찍는

적막한 허기의 저녁,

씹을수록 싱싱해지는 천 장의 이파리가

가망 없이 몸을 뒤집는다

□ 박수현 시인

경북 대구에서 태어나 경북대학교 사범대 영어교육화과 졸업.

2003년 계간시지 《시안》으로 등단.

시집 《운문호 붕어찜》, 《복사뼈를 만지다》《 샌드 페인팅》과 《티베트의 초승달》 등 3 권의 연합기행시집이 있음.

제4회 [동천 문학상 ] 수상.

2011년 서울문화재단 작가창작 활동지원금 수혜.

2018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 창작기금 수혜.

2025년 서울문화재단 원로예술인창작기금 수혜.

현 시인협회 중앙위원 및 한국디카시 서울양천지회 회장.

박수현 시인의 시 <처녑> 을 읽고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박수현 시인의 시 <처녑>은 사물 하나를 끝까지 붙잡고 사유를 밀고 나가는 그의 시적 태도와 미의식이 단단하게 응결된 작품이다.

이 시는 음식 재료인 ‘처녑’에서 출발하지만, 단순한 식문화의 기록이나 생활 감각에 머물지 않는다. 시인은 소의 위장이라는 구체적 대상 속에 생의 견딤, 기억의 축적, 존재의 질김을 겹겹이 포개어 놓는다. 시인 박수현 시가 오래도록 천착穿鑿해 온 ‘몸으로 견딘 시간’의 미학이 이 시에서 가장 밀도 높게 구현된다.

첫 연에서 “여름나기로 단골정육점에서 처녑을 샀다”는 문장은 일상의 문을 연다. 곧이어 “천 장의 잎새”라는 어원적 설명이 붙으며, 처녑은 단순한 부산물이 아니라 상징의 문턱에 들어선다. “서너 근으로 / 갈무리된 전 생애의 중량”이라는 구절에서, 시인은 생을 무게로 환산한다. 삶은 길이보다 무게로 기억된다는 인식이다.

이는 시인 박수현 시 전반에 흐르는 존재론적 태도, 즉 삶은 서사보다 체감의 문제라는 인식과 맞닿아 있다.

밀가루를 묻혀 주름을 치대는 행위는 단순한 조리 과정이 아니라 통과의 의식처럼 묘사된다. “위장 하나 다스리는 일이 / 첩첩산중 만경창파를 이고 넘는 것 같다”는 비유는, 살아낸 하루하루가 결코 평탄하지 않았음을 암시한다.

여기서 소의 네 개의 위장은 생물학적 정보가 아니라, 초식성 존재가 세계의 거칠고 독한 숨결을 견뎌내기 위해 마련한 생의 구조로 읽힌다. 쇠뜨기, 둑새풀, 매미의 울음, 작달비 같은 이미지들은 자연의 풍요가 아니라 과잉된 생의 압력을 상징한다.

이 시의 중심은 “되새김질”이다.

이는 소의 생리적 행위이자 인간의 기억 방식이다. 박수현 시인은 삶을 한 번에 소화하지 않는다. 그는 오래 씹고, 다시 삼키고, 다시 떠올린다. “질기고 무더웠던 여름날을 견뎌내느라 / 크고 순한 짐승의 위장 같은 / 울음의 겹 안에 들어가 본 적”이 있다는 고백은, 시인이 자신의 삶을 소의 위장과 겹쳐 놓는 지점이다. 여기서 울음은 감정의 분출이 아니라, 안쪽으로 쌓이는 시간의 층위다.

마지막 연에서 “처녑 한 젓가락”은 생의 응축된 결과물이다. 씹을수록 싱싱해지는 “천 장의 이파리”는 아이러니하게도, 소비될수록 살아나는 기억과 닮아 있다.

허나 그 끝은 “가망 없이 몸을 뒤집는다”는 문장으로 마무리된다. 이는 낙관도 절망도 아닌, 박수현 시인의 시 특유의 냉정한 인식이다. 삶은 견뎌냈다고 해서 반드시 구원으로 귀결되지 않으며, 다만 그렇게 견뎌낸 몸이 남을 뿐이라는 태도다.

박수현 시인의 시는 언제나 과잉을 경계한다. 감정도, 의미도 쉽게 넘치게 두지 않는다. <처녑>은 사소한 재료 하나로 생의 구조를 끝까지 밀어붙이는 시다.

이 시에서 미학은 장식이 아니라 노동이며, 철학은 개념이 아니라 씹는 행위다.

박수현 시인은 삶을 설명하지 않고, 삶을 다룬다. 그것이 이 시가 묵직하게 독자의 몸에 남는 이유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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