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호권 회장의 《파악입선 破惡入善》 ㅡ청람 김왕식
장호권 회장의 《파악입선 破惡入善》 2026.01.02
□ 장호권 회장

□ 복간된 《사상계》


■
파악입선 破惡入善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사상의 문을 다시 열며
새해 벽두,
장호권 회장과의 통화는 짧았으나 그 여운은 깊었다.
그는 상원사 적멸보궁寂滅寶宮에서 새해를 맞이하며 세상을 바라보았다고 했다.
’ 파악입선 破惡入善ㅡ악을 무너뜨리고 선을 받아들인다’는 이 네 글자가 장 회장 귓전을 울렸다.
이 말은 투쟁의 구호가 아니라 기준의 선언이다. 무엇을 부술 것인가보다 무엇을 받아들일 것인가를 먼저 묻는다. 악을 겨냥한 분노보다 선을 향한 결단을 앞세운다.
적멸보궁寂滅寶宮의 고요는 그 차이를 분명히 한다. 소란 속에서 외치는 정의는 쉽게 피로해지지만, 침묵 속에서 세운 기준은 오래 간다. 파악입선破惡入善은 그런 침묵의 언어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자연스레 한 이름이 겹쳐 떠올랐다.
장준하 선생이다.
그는 생애로 ‘파악입선破惡入善’을 살았다. 악을 고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선을 세우는 일에 평생을 바쳤다. 그 선의 형식이 바로 사유였고, 사유의 집이 ‘사상계’였다. 《사상계》는 한 권의 잡지가 아니라, 시대가 스스로를 비추는 거울이었다.
장준하 선생의 《사상계》는 악을 향해 고함치지 않았다. 대신 질문을 던졌다. 권력에 맞서며 증오를 키우기보다, 사유의 밀도를 높였다. 선은 늘 그렇게 온다. 소리 없이, 그러나 단단하게.
사상계는 파악입선破惡入善의 실천이었다. 거짓을 해체하되 진실을 세우는 방식, 편 가르기를 넘어 공공의 기준을 제시하는 태도. 그 태도는 한 세대를 길렀고, 나라의 등뼈를 곧게 했다.
오늘 우리가 《사상계》의 복간을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복간은 과거의 복원이 아니라 현재의 요청이다. 악이 세련되어지고, 선이 피로해진 시대일수록 기준은 더 또렷해야 한다. 분노는 넘치되 사유는 빈곤한 시절, 파악입선破惡入善은 다시 한 번 사상의 문을 열어야 한다고 말한다. 악을 비난하는 말보다, 선을 설계하는 문장이 필요하다.
장호권 회장이 적멸보궁寂滅寶宮에서 떠올린 네 글자는, 혈연의 계승이 아니라 사상의 계승을 가리킨다. 아버지의 이름을 기리는 방식은 동상이 아니라 문장이다.
《사상계》의 복간은 장준하의 정신을 박제剝製하는 일이 아니라, 오늘의 질문을 다시 시작하는 일이다. 선을 받아들이기 위해 악을 무너뜨리는 일, 그 순서를 잊지 않는 일이다.
새해는 늘 묻는다.
무엇을 더할 것인가보다, 무엇을 바로 세울 것인가를. 파악입선破惡入善은 덧붙임이 아니라 정렬이다. 기준을 세우고, 방향을 밝히는 일. 사상계의 복간은 그 정렬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침묵의 산에서 건너온 네 글자가, 다시 지면 위에서 숨 쉬기를 바란다.
소란을 줄이고 사유를 늘리는 문장으로,
나라의 내일을 밝히는 기준으로.
ㅡ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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