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 남겨 둔 겨울 ㅡ청람 김왕식
여름에 남겨 둔 겨울 2026.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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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남겨 둔 겨울
김왕식
여름에도
엄마는 털모자를 쓴다
햇살이 머리 위에서
가장 잔인해질 때
엄마의 머리에는
겨울이 남아 있다
여섯 살 달수는
이유를 모른다
모자를 쓰다듬는다
까슬한 털 사이로
엄마의 숨이 살아 있다
엄마는
말 대신 하늘을 본다
눈물은 떨어지지 않고
목 안쪽으로 접힌다
아빠는
공사장 난간에서
한 번의 미끄러짐으로
하늘이 되었다
그날 이후
엄마의 하루는
숨으로 세어진다
달수를 품에 안고
엄마는
유방암 4기 말기라는
긴 문장을 들었다
항암치료는
머리카락을 먼저 데려갔고
엄마는
머리 대신
아이의 손을 더 꼭 잡았다
유치원 소풍 가는 날
엄마는
긴 가발을 쓰고
입술에 빨간색을 올린다
아이는
마냥 좋다
엄마가 웃고
엄마가 걷고
엄마가
자기 손을 놓지 않으니까
통증이
파도처럼 밀려와
이를 악물게 해도
엄마는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하늘을 향해
입술 없이 기도한다
오래 살고 싶어요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달수를 혼자
세상에 두지 않기 위해
달수가
혼자 살아갈 수 있을 때까지만
그때까지만
살게 해주세요
엄마는
자신의 생을 세지 않는다
아이의 내일을 센다
하루를 더 살면
달수의 하루가
한 겹 두꺼워진다고 믿는다
달수는
모자를 쓰다듬는다
질문 없는 손길
여름 햇빛 아래
털모자는
가장 따뜻한 진실이 된다
사랑은
머리카락보다 먼저
빠져야 할 것을 대신 덮고
그 덮임 속에서
아이는 배운다
손을 놓지 않는 법
오늘을 포기하지 않는 법
사람은
사랑으로
하루를 건너간다는 것을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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