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암 스님의 '마음과 동거하는 수행의 미학'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설암 스님의 '마음과 동거하는 수행의 미학' 2026.01.09
□ 만월산(滿月山) 용연사(龍淵寺) 주지 설암(雪庵)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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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설암雪庵 스님
마음이란 놈은 제 멋대로다
엄마 뱃속 이전에도 그랬고 나와서도
그랬다
기쁘면 깔깔대고 화나면 시무룩하고
욕구에는 체면도 잊게 하는 그런놈을
우리는 부양하고 산다
인과도 모르고 불평하고
업보에는 인색한
마음이란 놈은 제멋대로다
지금 나는 도무지 알 수 없는
마음과 동거중이며
오늘도 우리는 마음이란 놈을 방목하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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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암 스님의 ‘마음과 동거하는 수행의 미학’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설암雪庵 스님의 시 <마음>은 가르침을 앞세우지 않는다. 대신 삶을 먼저 내놓는다. 이 작품에서 마음은 수양의 대상이 아니라, 이미 함께 살아가고 있는 존재다.
시인은 마음을 통제하거나 교정하려 들지 않는다. “마음이란 놈은 제 멋대로다”라는 첫 문장은 단정이 아니라 인정이며, 체념이 아니라 통찰이다.
이 시는 마음을 이겨야 할 적으로 설정하지 않는 데서 출발한다.
시 속의 마음은 유치하고 이기적이다. 기쁘면 깔깔대고, 화나면 시무룩하다. 욕구 앞에서는 체면을 잊고, 인과를 모르며, 업보에는 吝嗇하다.
이는 불교적 이상화 이전의 인간 마음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 묘사다. 설암 스님은 마음을 미화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는 그 놈을 부양하고 산다”고 말한다. 이 한 구절에서 시인의 삶의 태도가 또렷해진다. 마음은 제거의 대상이 아니라 책임의 대상이라는 인식이다.
특히 “방목하며 살아간다”는 마지막 진술은 설암 스님 미의식의 핵심이다. 방목은 방치가 아니다. 억압도 아니다. 통제하지 않되 외면하지 않는 상태, 붙잡지 않되 함께 걷는 태도다. 이는 수행 이전의 삶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삶 자체를 수행의 자리로 끌어오는 관점이다. 설암 스님의 시는 이 지점에서 윤리보다 앞서 존재론에 닿는다.
이러한 시적 태도는 설암 스님의 삶의 궤적과 깊이 맞닿아 있다. 밀양에서 2남 3녀의 막내로 태어나 신뢰와 의리로 살아온 열혈 청년의 삶은, 감정을 숨기기보다 정면으로 살아낸 시간이었다. 그러한 삶의 결이 1993년 늦여름, 삼척 신흥사에서 하나의 전환점을 맞는다. 화광 스님과의 인연, 그리고 별이 가득한 밤에 홀로 펼친 육조단경은 설암 스님에게 사상 이전의 체험으로 다가온다.
《*육조단경六祖壇經》을 관통하는 ‘자성(自性)’은 교리라기보다 방향이었다. 밖에서 찾던 답이 안으로 향하는 순간, 설암 스님은 ‘내 안의 부처’를 직감한다. 이 환희심은 완결된 깨달음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의 전환이다. 마음을 고치려는 삶에서, 마음과 함께 살아내는 삶으로의 이동이다.
하여,
설암 스님의 시에는 단정한 교훈이 없다. 대신 동거의 윤리가 있다. “도무지 알 수 없는 마음과 동거중”이라는 고백은 미완의 상태를 숨기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이 솔직함이야말로 설암 스님의 시가 지닌 가장 큰 미덕이다. 깨달음의 언어보다, 깨달음 이전의 삶을 정직하게 붙잡는 태도이다.
설암 스님의 <마음>은 수행의 결과를 말하지 않는다. 수행의 출발점을 보여준다. 마음을 억누르지 않고, 미워하지 않으며, 끝까지 함께 살아가겠다는 태도이다.
이 시는 말한다.
마음은 길들여야 할 대상이 아니라, 끝내 책임져야 할 존재라고. 그 책임의 자리에 설 때, ‘자성自性’은 교리가 아니라 삶의 언어가 된다고.
이러한 시적 인식은 설암 스님의 삶의 가치철학과 정확히 겹친다. 삶을 버리고 수행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삶을 통과해 수행에 이르는 길.
스님의 시 <마음>은 그 길 위에서 나온 낮고 단단한 시다.
*육조단경六祖壇經
선종(禪宗)의 제6대조 혜능의 일대기. 남종선(南宗禪)의 근본이 되는 선서(禪書)이다. 엄밀히 말하면 경(經)이 아니라 조사어록(祖師語錄)으로 분류되어야 하지만, 해박한 사상성과 간결한 문체로 우리나라ㆍ중국ㆍ일본 등의 여러 나라에서 경과 같은 존숭을 받고 있다. ≪육조법보단경(六祖法寶壇經)≫ㆍ≪법보단경(法寶壇經)≫이라고도 한다. 이본으로 종보본(宗寶本)ㆍ흥성사본(興聖寺本)ㆍ돈황본(敦煌本) 등 5종이 있다.
ㅡ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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