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

머무는 법을 배우는 자리, 청리움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머무는 법을 배우는 자리, 청리움 2026.01.14
머무는 법을 배우는 자리, 청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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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무는 법을 배우는 자리, 청리움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겨울의 숨결이 가장 매서운 때였다. 공기는 날을 세우고 있었고, 계절은 사람의 어깨 위에 조용히 무게를 얹고 있었다. 그러나 청리움에 들어서는 순간, 겨울은 스스로의 얼굴을 낮추었다. 찬 기운은 문턱에서 멈추었고, 그 안에는 오래도록 덥혀진 마음의 온기가 고요히 흐르고 있었다. 바람조차 서두르지 않는 곳, 청리움은 좌표로 표시되는 공간이기보다 삶을 대하는 태도의 이름에 가까웠다.

청리움은 소리를 앞세우지 않는다.

이곳에서는 말보다 시간이 먼저 다가온다. 나무의 결처럼 켜켜이 쌓인 시간들이 아무 설명 없이도 사람을 안쪽으로 이끈다. 떠가는 뭉게구름을 올려다보며 웃을 수 있는 곳이라는 시인의 말은 풍경에 대한 묘사가 아니다. 그것은 사람을 대하는 방식에 대한 정의이며, 삶을 만지는 손길의 결에 대한 고백이다. 존중과 배려는 규범이 아니라 공기처럼 순환하고, 아끼는 마음은 의지가 아니라 습관처럼 머문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말보다 침묵이 먼저 따뜻해진다.

오하 시인은 이 공간의 주인이라기보다, 오래된 숲을 묵묵히 돌보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의 인격은 앞에 나서지 않는다. 화려함 대신 단정함이 있고, 과시 대신 깊이가 있다. 말의 끝마다 여백이 남아 있고, 그 여백에는 언제나 타인을 위한 자리가 비워져 있다. 시가 삶을 압도하지 않고, 삶이 시를 밀어 올리는 방식—그 조용한 균형이 곧 오하의 품격이다. 청리움이 맑은 이유는, 그 맑음을 굳이 증명하려 들지 않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공통의 언어를 쓰고 있었다. 숫자보다 얼굴을 먼저 떠올리는 언어, 성과보다 관계를 오래 바라보는 시선이다.

성보경 청사모 회장의 태도에서 지성과 사랑은 분리되지 않았다. 생각은 따뜻했고, 그 따뜻함은 감상에 머물지 않고 사려 깊음으로 이어졌다. 사람을 말할 때 성과의 크기를 들지 않고, 성과를 말할 때 사람의 얼굴을 먼저 떠올리는 태도 속에서, 공동체가 무엇으로 유지되는지를 다시 배우게 된다.

이우창 교수의 배려는 더욱 조용했다. 말보다 먼저 움직이는 손길, 상대의 호흡과 리듬을 앞서 읽는 시선. 그 배려는 의도적으로 연습된 기술이 아니라, 몸에 밴 인격의 반사작용처럼 자연스러웠다. 배려가 설명되기 시작할 때 이미 늦는 것임을, 그의 태도는 아무 말 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윤미숙 선생의 식사와 찻자리는 하나의 문장이었다.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단아함. 그릇의 위치, 온도의 배치, 차향이 번지는 속도까지 모든 것이 한 편의 산문처럼 매끄럽게 이어졌다. 환대는 넘치는 것이 아니라 정확한 것임을, 이 자리는 조용히 증명한다. 필요한 만큼의 정성과 시간을 건네는 일—그 절제 속에서 비로소 진짜 다정함이 완성된다.

청리움에서의 시간은 유유자적이라는 말로는 다 담기지 않는다. 그 시간은 흘러가며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스스로를 접어 사람의 마음 안으로 들어온다. 숲이 건네는 메시지는 크지 않다. 다만 단순하다.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 “함께 있음은 이미 충분하다.” 그 문장을 오래 들여다보는 동안, 사람은 저도 모르게 작아진다. 아니, 가벼워진다. 삶의 무게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힘이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하여,

청리움에 머문 이는 잠시 작은 신선이 된다. 높은 곳에 올라 세상을 내려다보아서가 아니라, 낮아진 자리에서 세상을 다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삶을 이기려 하지 않고, 삶과 나란히 걷는 법을 배운다. 그 배움은 교훈이 아니라 체온으로 남는다.

오하 시인의 시 <청리움>은 한 장소를 노래하는 작품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서로를 대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며, 어떤 속도로 삶을 통과할 것인가에 대한 응답이다. 아름다운 마음, 존중과 배려, 아끼는 마음이 충만한 곳. 자연과 겸손히 공유하며, 좋은 사람과 인생을 음미하고, 술을 나누고 노래하는 곳. 그 모든 문장은 결국 하나의 뜻으로 수렴된다.

청리움은 머무는 곳이 아니라, 사람이 되어가는 방식이다. 겨울의 한복판에서 만난 이 온기는 계절을 건너 오래 남아, 다시 삶의 방향을 조용히 바로잡아 줄 것이다.

청리움(淸rium)

시인 梧河 김상철

청리움

아름다운 마음

존중과 배려

아끼는 마음이 충만한 곳

겸손한 마음으로

자연과 공유하고

떠가는 뭉게구름을 바라보며

웃을 수 있는 곳

청리움

누구나 깊고 넓은

포용력을 갖게 되는 곳

좋은 사람과 인생을 토론하고 음미하며

술 마시고 노래하는 곳

유유자적하게 흐르는

청리움에서의 시간

숲이 주는 묘한 메시지를 들여다 본다면

이 또한 작은 신선이 아닐까요? “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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