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광일 시인의 <겨울엽서 42 >ㅡ벗음으로 완성되는 경건 ㅡ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주광일 시인의 <겨울엽서 42 >ㅡ벗음으로 완성되는 경건 2026.01.15
□ 주광일 시인 ㅡ 오른쪽 붉은 상의 착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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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엽서 42
시인 주광일
차디찬 겨울하늘 아래
부끄러울 것 하나 없다며
여름옷 홀딱 벗고
혼자 서 있는 겨울나무,
가지 사이를 지나가는
바람의 리듬에 맞추어
앙상한 몸을 흔드네.
누가 봐도
언뜻 봐도
경건한 몸짓으로
하늘을 찬양하네.
□
주광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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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광일 시인의 겨울엽서 42
ㅡ벗음으로 완성되는 경건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주광일 시인의 <겨울엽서 42>는 계절의 풍경을 빌려 삶의 태도를 증언하는 시다.
이 시에서 겨울나무는 자연의 대상이 아니라 윤리적 형상이다. 잎을 모두 내려놓은 채 “부끄러울 것 하나 없다”며 서 있는 나무의 모습은 상실이 아니라 완성에 가깝다. 벗었다는 사실보다 숨기지 않는다는 태도가 먼저 읽히기 때문이다.
시는 결핍을 비애로 소비하지 않고, 비워짐을 당당한 존재 방식으로 제시한다.
“여름옷 홀딱 벗고 / 혼자 서 있는 겨울나무”라는 구절은 고독을 과장하지 않는다. 여기서 혼자는 외로움이 아니라 책임에 가깝다. 나무는 보호받지 않는 자리에 서 있으나, 그 자세는 흔들림보다 절제를 닮았다. 이어지는 “바람의 리듬”에 몸을 맡기는 장면은 저항과 순응의 이분법을 넘어선다. 외부 조건에 맞서거나 굴복하는 대신, 자연의 질서 속에서 자신의 중심을 유지하는 태도다.
이 시의 미덕은 과시하지 않는 경건함에 있다.
“누가 봐도 / 언뜻 봐도 / 경건한 몸짓”이라는 반복은 선언이 아니라 확인이다. 독자에게 경건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이미 그렇게 서 있는 존재를 보여줄 뿐이다. 하늘을 찬양하는 장면 역시 종교적 수사로 치닫지 않는다. 찬양은 말이 아니라 자세로 이루어진다. 이것이 이 시가 감정의 고조 대신 신뢰를 획득하는 방식이다.
이 시를 쓴 주광일의 삶을 함께 떠올릴 때, 이 겨울나무는 더욱 선명해진다. 한평생 법조인으로서 破邪顯正의 길을 걸어온 그는, 80 노구의 몸으로도 태극기를 가슴에 품고 광화문을 지킨다. 혹한 속에서 방한복 한 벌에 몸을 의지한 채 서 있는 그의 모습은 시 속 겨울나무와 겹쳐진다.
이때 시는 관념이 아니라 자기 증언이 된다. 자연을 노래한 것이 아니라, 자연을 통해 자신을 드러낸 것이다.
주광일 시인의 시는 애국을 구호로 소비하지 않는다. 그는 애국을 태도의 문제로 환원한다. 드러내기보다 버티는 일, 주장하기보다 서 있는 일, 말하기보다 지키는 일.
<겨울엽서 42>의 나무는 바로 그 윤리의 형상이다. 잎이 없기에 더 분명하고, 흔들리기에 더욱 중심이 또렷하다.
이 시는 묻지 않는다.
다만 보여준다. 지금 이 계절에, 무엇을 벗고 무엇을 끝내 지킬 것인지를. 그 질문 없는 제시가 이 시를 조용히, 그러나 오래 남게 만든다.
ㅡ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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