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하 시인의 쉼터 '청리움의 봄기운' ㅡ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오하 시인의 쉼터 '청리움의 봄기운' 2026.01.17
□ 오하 시집과 칭리움에서 캔 산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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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리움의 봄기운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잔설 덮인 청리움의 산책로를 조심스레 걷는다. 발밑의 눈은 아직 겨울의 체온을 간직하고 있으나, 흙은 이미 다음 계절의 말을 준비하고 있다.
대한이 지났다는 사실은 달력보다 먼저 땅이 알려준다. 얼음의 가장자리가 풀리는 속도, 바람의 결이 낮아지는 순간들 속에서 계절은 미리 이동한다.
오하 시인은 눈 덮인 포도덩굴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그는 오래 바라보고, 오래 침묵한다. 그리고 혼잣말처럼 읊조린다. “올해는 포도 풍년이 오겠지.” 그 말은 예언이 아니라 관찰이다. 겨울을 잘 견딘 가지의 탄력, 눈 아래서 숨을 고른 줄기의 밀도. 풍년은 희망으로 오지 않고, 인내의 결과로 도착한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다.
길섶의 진달래 몽우리를 손끝으로 살핀다. 아직 피지 않은 꽃의 언어는 향보다 먼저 촉감으로 전해진다. 봄내음은 코로 맡기보다 손으로 느끼는 법이다. 그 손길은 서두르지 않는다. 섬세함은 빠름이 아니라 정확함에 가깝다는 듯이.
오늘은 그동안 닫아 두었던 청림산방을 연 날이다. 문을 여는 일은 공간을 공개하는 일이 아니라, 시간을 다시 흐르게 하는 일이다.
1층 로비를 지나 2층 산방에 오르자, 개인 소장품으로 채워진 오디오 시스템이 고요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음악은 소리를 내기 전에 이미 공기를 정돈한다. 귀를 열기보다 마음의 속도를 낮추게 한다.
그는 넉넉한 자산을 가졌으나 생활은 검소하다. 난방은 21도. 지나치게 높다며 고개를 젓는다. 사람이 없을 때에는 끈다. 따뜻함은 필요할 때만 쓰는 것이라는 말처럼. 이 작은 절제가 일상의 윤리가 되고, 윤리가 축적되어 하나의 신뢰가 된다. 검소함은 결핍의 다른 이름이 아니다. 필요와 욕망을 정확히 구분하는 능력이다.
청리움의 봄기운은 꽃보다 먼저 온다. 눈 아래에서 준비되는 가지의 힘, 몽우리에 담긴 시간의 무게, 온도를 아끼는 태도에서 배어나는 삶의 방향. 큰 성취는 늘 작은 절제에서 시작된다. 오늘 청리움에서 느낀 봄은 피어나는 계절이 아니라, 스스로를 낮추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이곳의 봄은 요란하지 않고, 오래 간다.
ㅡ청람

□ 청리움의 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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