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인문학, 왜 지금인가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인문학, 왜 지금인가 2026.01.20
인문학, 왜 지금인가

인문학, 왜 지금인가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지금은 지식이 부족한 시대가 아니다. 정보는 넘치고 해석은 즉각 제공된다. 문제는 판단의 기준이다. 무엇이 옳은지보다, 무엇이 유리한지가 먼저 계산된다. 속도는 가속되었으나 방향은 흔들린다. 이때 인문학은 유행의 학문이 아니라 기준을 세우는 기술로 다시 요청된다.

인문학은 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질문의 질을 높인다. 오늘의 사회는 빠른 해답을 선호한다. 그러나 빠른 해답은 종종 얕은 확신으로 변질된다. 인문학은 이 확신을 멈춰 세운다. 인간이 무엇을 위해 사는지, 어떤 선택이 사람을 살리는지, 성공과 존엄 사이에서 무엇을 버릴 수 없는지를 묻는다. 이 질문들은 효율을 늦추지만, 삶을 바로 세운다.

기술은 세계를 확장했으나 인간을 단순화했다. 알고리즘은 취향을 예측하고, 지표는 성과를 환원한다. 그 과정에서 인간은 수치로 요약된다. 인문학은 이 요약을 거부한다. 인간은 계산의 대상이 아니라 의미의 존재임을 상기시킨다. 숫자로 설명되지 않는 고통과, 성과로 증명되지 않는 선의 가치를 복원한다.

또한 인문학은 갈라진 사회에서 공존의 문법을 회복한다. 진영의 언어는 선명하지만 대화는 사라졌다. 인문학은 상대를 설득하기보다 이해하려 한다. 이해는 동의가 아니다. 그러나 이해 없는 동의는 폭력이다. 인문학은 이 폭력을 낮추는 언어를 제공한다. 다른 삶을 적이 아니라 타자로 읽게 한다.

인문학은 위기 때마다 호출되어 왔다. 전쟁과 분단, 독재와 산업화의 굴곡 속에서 인간의 존엄을 붙들어 왔다. 지금의 위기는 덜 요란하지만 더 깊다. 방향 상실의 위기다. 무엇을 더 가져야 하는지보다,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가 흐려졌다. 인문학은 이 질문을 다시 중심에 놓는다.

결국 인문학이 필요한 이유는 간단하다. 인간이 인간으로 남기 위해서다. 빠르게 판단하는 능력보다, 느리게 책임지는 태도가 필요한 시대다. 인문학은 이 태도를 훈련한다. 그래서 지금이다. 지금, 인문학은 선택이 아니라 요청이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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