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시평 《강물 위에 놓인 거울》 ㅡ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시와 시평 《강물 위에 놓인 거울》 2026.01.21
시와 시평
《강물 위에 놓이 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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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시평
《강물 위에 놓인 거울》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허태기 시인은 시인이면서 수필가이자 칼럼니스트다. 문학을 하나의 장르 안에 가두지 않고, 삶이 닿는 모든 자리에서 언어를 다듬어 온 사람이다. 그의 글은 일상의 사소한 순간에서 비롯되지만, 언제나 그 너머를 향해 열려 있다. 설명보다 여백을 남기고, 감정을 앞세우기보다 사물의 결을 먼저 바라본다. 그래서 그의 시와 산문은 읽는 이를 설득하지 않으면서도 마음에 오래 머물며 조용한 질문을 남긴다.
이 책 《강물 위에 놓인 거울》은 허태기 시인이 지은 시 58편과, 그 전편을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이 평한 공동 저서다. 시와 시평이 나란히 놓인 구성은 작품을 해설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하나의 대화 구조다. 시가 먼저 말을 건네고, 시평은 그 말에 응답한다. 평은 설명으로 앞서지 않고, 시가 열어 둔 여백을 존중하며 함께 걸어간다. 독자는 이 두 겹의 언어를 통과하며 시의 표면과 심층을 동시에 경험하게 된다.
허태기 시의 세계는 과장되지 않은 낭만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는 풍경을 장식하지 않고, 감정을 부풀리지 않는다. 대신 사물의 움직임과 시간의 흐름, 관계의 온도를 정직하게 기록한다. 그의 시에서 자연은 배경이 아니라 동행자이며, 도시는 소음이 아니라 기억의 저장고다. 이러한 태도는 문학을 삶과 분리하지 않으려는 그의 일관된 가치관에서 비롯된다. 한국문인협회 인성교육개발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며 문학과 인간성의 관계를 성찰해 온 이력, 한국문예 편집국장과 등단 작가 심사위원으로서 다음 세대의 목소리를 가려내고 길러온 경험은 그의 시적 윤리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평론가로서 나는 이 시집을 읽으며 결론을 앞세우지 않았다. 시를 재단하거나 의미를 고정하려 하지 않았다. 허태기 시의 미덕은 닫힘이 아니라 열림에 있기 때문이다. 시평은 판단의 언어가 아니라 경청의 언어여야 한다는 신념 아래, 나는 각 작품이 품고 있는 맑음과 고요를 가능한 한 온전히 비추고자 했다. 그래서 이 책의 평은 해석이 아니라 반사다. 강물 위에 놓인 거울처럼, 시가 흘려보낸 빛을 다시 독자에게 돌려주는 일이다.
이 책의 제목이 암시하듯, 강물은 흐르고 거울은 흔들린다. 그러나 흔들림 속에서도 얼굴은 사라지지 않는다. 허태기 시의 힘은 바로 여기에 있다. 변화와 상실, 만남과 이별이 지나간 자리에서도 지워지지 않는 마음의 중심을 끝내 놓치지 않는다. 시는 세계를 바꾸지 않지만, 세계를 바라보는 눈의 방향을 바꾼다. 이 시집은 그 방향을 조용히 가리킨다.
《강물 위에 놓인 거울》은 시를 사랑하는 독자에게는 한 편 한 편을 깊이 들여다보는 길이 되고, 문학을 처음 만나는 독자에게는 시가 어떻게 삶과 연결되는지를 보여주는 안내서가 될 것이다. 시와 시평이 서로를 밝히는 이 책에서, 독자는 자신의 강물 위에 놓인 또 하나의 거울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 거울에 비친 얼굴이 낯설지 않다면, 이미 시는 제 몫을 다한 셈이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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