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

침묵으로 건너온 마음의 자리 ㅡ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침묵으로 건너온 마음의 자리 2026.01.21
침묵으로 건너온 마음의 자리

침묵으로 건너온 마음의 자리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나는 나를 오래 바라보는 일을 피하며 살아왔다.

타인을 이해하는 일에는 비교적 능숙했으나, 나 자신을 설명하는 일에는 늘 주저가 따랐다. 나를 들여다본다는 것은, 내가 나에게 해온 수많은 침묵과 합리화를 함께 마주해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남을 살피고 배려하려 애써왔다. 말보다 먼저 표정을 읽으려 했고, 상처가 되지 않도록 문장을 고르는 데 시간을 썼다. 누군가의 불편함이 내 책임이 되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동시에 그 불편함을 외면하지 않으려 애썼다. 그러나 그것도 쉽지 않았다. 배려는 늘 선의로만 작동하지 않았고, 때로는 나 자신을 소모시키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나는 종종 남을 이해하려는 마음과 나를 지키려는 마음 사이에서 흔들렸다. 상대를 먼저 생각하다 보면 내 감정은 뒤로 밀렸고, 나를 앞세우려 하면 스스로가 이기적인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 갈림길에서 나는 자주 침묵을 선택했다. 말하지 않으면 갈등은 생기지 않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침묵은 문제를 없애지 않았다. 다만 문제를 내 안으로 들여보낼 뿐이었다.

성실하다는 평가는 나를 지탱해 주는 이름이었지만, 동시에 나를 묶는 틀이기도 했다. 나는 책임을 다하려 애썼고, 약속을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나에게 허락된 쉼은 늘 가장 마지막 순서였다. 피로를 인정하기보다 견뎠고, 외로움을 표현하기보다 정리했다. 감정을 느끼기 전에 해석하려는 태도는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지만, 조금씩 무뎌지게도 만들었다.

自問한다.

나는 정말로 선택하며 살아왔는가, 아니면 익숙한 역할에 머물러 있었는가.

배려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말들을 삼켜왔는가.

좋은 사람이 되려는 마음 뒤에 숨은 두려움은 없었는가.

이 질문들은 나를 편안하게 하지 않는다. 그러나 더 이상 외면하지 않으려 한다. 삶의 어느 지점에 이르러서는, 잘 버텨왔다는 평가보다 스스로에게 정직한 시간이 더 필요해지기 때문이다. 나를 이해하지 못한 채 타인을 이해하려는 태도는 결국 공허해진다는 사실도 이제는 분명히 안다.

이제 나는 완성된 사람으로 보이기를 내려놓는다. 대신 흔들리는 자신을 인정하려 한다. 늘 옳은 사람보다는, 끝까지 질문을 멈추지 않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남을 살피는 마음과 나를 돌보는 마음이 더 이상 서로를 소진시키지 않기를 바란다.

자기 성찰은 결론이 아니다.

그것은 잠시 멈추어 서서, 방향을 다시 가늠하는 정직한 순간이다.

나는 지금,

그 자리 위에 서 있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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