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밀러 가는 사람의 존엄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다시 밀러 가는 사람의 존엄 2026.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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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밀러 가는 사람의 존엄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아침마다 같은 길을 걷는다.
어제와 다르지 않은 풍경, 비슷한 표정들, 익숙한 피로가 몸에 먼저 와 닿는다. 하루를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한 번은 넘어져 본 기분이다. 우리는 늘 새로움을 기대하지만, 인생은 좀처럼 새 얼굴을 내주지 않는다. 반복은 삶의 기본값처럼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시지프스가 밀어 올리던 바위는 신화 속 물건이 아니다. 그것은 오늘의 일정표이고, 책임의 무게이며, 끝나지 않는 관계와 감정의 숙제다. 어렵게 올려놓은 일은 늘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다. 성취는 오래 머물지 않고, 안도는 잠깐 스쳐 지나간다. 그래서 사람들은 묻는다. 이렇게 살아서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그러나 바위가 굴러떨어지는 순간에 삶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외려 그때부터 삶은 다시 시작된다. 시지프스는 바위가 떨어진 자리를 외면하지 않는다. 등을 돌리지도 않는다. 그는 내려가서 다시 밀 준비를 한다. 그 태도가 형벌을 견디게 하는 힘이며,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자존이다.
삶이 우리에게 주는 질문은 늘 같다. “다시 하겠는가.” 이 질문 앞에서 대부분의 사람은 망설인다. 피로를 떠올리고, 상처를 기억하고, 손해 본 시간을 계산한다. 그럼에도 다시 일어서는 사람이 있다. 이유는 거창하지 않다. 포기하는 순간, 자신을 잃게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시지프스의 바위는 성공을 약속하지 않는다.
다만 선택을 요구한다. 오늘도 밀 것인가, 아니면 돌아설 것인가. 이 선택이 쌓여 한 사람의 삶이 된다. 결과가 아니라 태도가 인생을 결정한다는 말은 이 지점에서 비로소 실감이 난다.
행복은 바위 정상에 있지 않다.
그것은 내려가는 길에서 자신을 속이지 않는 마음에 있다. 힘들다고 말하면서도, 그래도 간다고 결정하는 순간에 있다. 남 탓하지 않고, 운명을 저주하지 않고, 자기 몫의 하루를 받아들이는 태도 속에 있다.
하여, 시지프스는 불행한 존재가 아니다. 그는 실패를 반복하는 사람이 아니라, 매번 선택하는 사람이다. 오늘도 다시 바위를 밀러 가는 그 뒷모습에서 우리는 자기 삶을 포기하지 않는 인간의 가장 단단한 존엄을 본다. 인생이 무겁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끝까지 걷는다.
그리고 그 걷는 자세 자체가 이미 충분히 의미 있는 삶이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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