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

머물 수 없음을 알면서 오르는 이유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머물 수 없음을 알면서 오르는 이유 2026.01.23
머물 수 없음을 알면서 오르는 이유

머물 수 없음을 알면서 오르는 이유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끊임없이 정상에 오르려 한다.

정상은 늘 멀고, 도착하면 생각보다 작다. 바람이 세고, 발 디딜 자리는 좁다. 오래 머물 수 없다는 사실은 그때서야 분명해진다. 잠시 숨을 고를 뿐, 곧 내려와야 한다. 산은 우리를 환대하지만, 체류를 허락하지는 않는다.

사람의 인생도 이와 닮아 있다. 정상이라 부르는 자리는 누구에게나 한때다. 성취의 시간은 짧고, 박수는 금세 다른 방향으로 향한다. 나 또한 오래 머물 수 없는데, 뒤이어 올라온 사람들이 말없이 기다리고 있다.

그들의 눈빛은 재촉이 아니라 순서에 대한 암묵적인 약속이다. 이제 내려올 차례라는 신호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내려올 것을 알면서도 왜 우리는 올라가는가. 끝이 정해진 길이라면 애초에 시작하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닌가. 그러나 인간은 도착을 위해서만 오르지 않는다. 오르는 동안 자신을 확인하기 위해, 발밑의 흔들림 속에서 균형을 배우기 위해 오른다. 정상은 목적이 아니라 과정의 증거에 가깝다.

정상에 머물지 못한다는 사실이 외려 삶을 단단하게 만든다. 머무를 수 있다면 우리는 그 자리에 안주했을 것이다. 내려와야 하기에,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기에, 정상은 지나가는 풍경이 된다. 그 풍경을 보았다는 기억 하나로 이후의 길을 견딘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래 위에 있었느냐가 아니다. 올라가며 무엇을 내려놓았는가, 누구를 밀치지 않았는가, 내려올 때 어떤 얼굴이었는가가 더 중요하다. 자리를 비켜주는 일은 패배가 아니다. 다음 사람의 길을 인정하는 성숙이다.

오늘도 사람들은 오른다.

곧 내려올 것을 알면서도. 정상에 집을 짓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삶을 한 번 더 진지하게 통과하기 위해서. 내려오는 길에서야 비로소 알게 된다. 오르지 않았다면 보지 못했을 풍경이 분명히 있었다는 것을. 그것으로 충분한 인생도 있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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