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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비 《인연이 학문이 되고, 학문이 삶이 되다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조은비 《인연이 학문이 되고, 학문이 삶이 되다 》 2026.01.27
조은비 《인연이 학문이 되고, 학문이 삶이 되다 》

인연이 학문이 되고, 학문이 삶이 되다

청람 김왕식

조은비 학생은 서울대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이미 ‘공부’라는 이름의 길을 마음속에 먼저 닦아 둔 사람이었다. 성적표의 숫자보다 더 분명했던 것은 태도였다. 무엇을 하든 끝까지 책임지려는 눈빛, 배움 앞에서 쉽게 요령을 부리지 않는 성실함, 그리고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조용히 실력을 쌓아 올리는 묵직한 습관이 늘 인상 깊었다. 그때부터 인연은 자연스레 이어졌고, 사제지정이라는 이름으로 서로의 시간을 지켜보게 되었다.

서울대학교에서의 시간은 은비 학생에게 하나의 통과의례가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의 가능성을 증명해 보이는 자리였고,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준비의 시간이기도 했다. 우등으로 학부 과정을 마친 뒤에도 그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더 깊이 파고들 줄 알았고, 더 정직하게 질문할 줄 알았다. 학문이란 결국 ‘정답’을 얻는 일이 아니라 ‘더 나은 질문’을 갖는 일임을, 그는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석사 과정 또한 단순한 학위 취득이 아니라, 삶의 결을 단단히 만드는 공부의 과정으로 수행해 냈다.

그러나 은비 학생의 성취를 더욱 귀하게 만드는 것은, 그 과정이 철저히 인간적 품격 위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은비 학생은 자신이 받은 도움을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 부모님과 스승, 동료와 주변 사람들에게서 받은 따뜻한 손길을 ‘운’으로 여기지 않고 ‘은혜’로 기억할 줄 알았다.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결국 더 큰 세계로 나아갈 힘을 얻는다. 그리고 그 감사는 말로만 끝나지 않고, 태도와 삶의 방식으로 이어졌다. 스스로를 낮추고, 관계를 소중히 여기며, 먼저 섬길 줄 아는 겸허함은 학자의 품격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깊이를 증명하는 덕목이다.

무엇보다 은비 학생의 삶에는 독실한 신앙의 뿌리가 깊게 내려 있다. 하나님을 믿고 행하는 모습이 억지나 과장이 아니라, 한 가정의 기둥처럼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이 참으로 귀하다. 신앙은 말로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드러난다. 은비 학생의 걸음에는 그 믿음의 결이 조용히 배어 있다. 삶을 스스로의 힘으로만 끌고 가는 듯 보이는 시대에, 그는 결국 자신을 넘어서는 인도하심을 신뢰할 줄 안다. 그 믿음은 불안한 순간마다 그를 흔들어 깨뜨리는 것이 아니라, 더 단단히 세워 주는 버팀목이 되어왔다.

또한 은비 학생은 한 사람의 학자로 성장했을 뿐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을 단단히 세워가고 있다.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고, 사랑스러운 자녀를 품에 안으며, 공부와 삶이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서로를 지탱하는 길을 선택했다. 여기에는 자신만의 성취를 넘어, 가족을 귀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있다. 남편 또한 서울대학교에서 공부하고 박사학위를 취득한 학자로서, 서로가 서로의 길을 이해하고 존중하며 함께 걸어갈 수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개인의 성취가 가정의 평화를 해치지 않고, 가정의 사랑이 꿈의 발목을 잡지 않는 삶. 이것이야말로 흔한 듯 보이지만 가장 어려운 균형이며, 그래서 더욱 아름답다.

그리고 지금 은비 학생은 미국 유학 중이다. 더 넓은 언어로, 더 깊은 연구로, 세계 속에서 자신만의 학문적 자리를 만들어 가는 중이다. 학자는 결국 자기 자리에서 세계를 해석하는 사람이다. 은비 학생은 그 해석을 성급하게 하지 않는다. 충분히 읽고, 충분히 생각하고, 충분히 검토한 뒤에 비로소 자신의 언어로 말한다. 이 절제된 품성과 단단한 윤리가 앞으로의 연구를 더 깊고 견고하게 만들 것이다.

은비 학생의 장래가 촉망된다고 말하는 것은 단지 기대 섞인 축복이 아니다. 지금까지 그가 보여준 걸음이 이미 증명하고 있다. 성실했고, 꾸준했고, 겸손했고, 깊었다. 학문은 결국 사람을 닮는다. 은비 학생이 앞으로 써 내려갈 논문과 강의와 연구는, 그의 인생처럼 정직하고 따뜻한 결을 품게 될 것이다.

이 인연이 참으로 고맙다. 한 사람의 성장은 많은 손길로 이루어지지만, 그 손길을 의미로 바꾸는 것은 결국 그 사람의 마음이다. 은비 학생은 받은 사랑을 자기 안에서 곱게 숙성시키고, 다시 흘려보낼 줄 아는 사람이다. 그러니 앞으로 그는 더 많은 사람에게 배움의 길을 열어줄 학자가 될 것이다. 세계 어디에 있든, 그 자리에서 빛나되 요란하지 않게 빛나기를 바란다. 조용히 깊어지는 학자, 그리고 늘 사람을 잊지 않는 학자. 그 이름이 바로 조은비 학생의 미래다.

조용히 깊어지는 이름, 조은비

ㅡ 조은비 학생에게

한 사람의 길은

처음부터 번쩍이는 빛으로 시작되지 않았다.

새벽의 등잔처럼,

남들이 잠든 자리에서

혼자 켜진 마음 하나가

오래도록 자신을 밝혀 온 것이었다.

그대는

서울대학교의 문 앞에 서기 전부터

이미 ‘배움’이라는 숲을

속으로 먼저 걸어둔 사람이었다.

성적표의 숫자가 아니라

책장을 넘길 때 생기는 작은 바람,

질문이 태어나는 침묵의 온도,

그것을 끝끝내 붙들 줄 알았다.

어떤 사람은

말로 길을 만들고,

어떤 사람은

소문으로 이름을 세운다.

그러나 그대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의 결을 믿었다.

보이지 않는 데서 자라는 뿌리처럼

소리 없이 깊어지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다듬어 왔다.

학문은

단순히 앎의 높은 탑이 아니라

자신을 낮추는 계단임을,

그대는 몸으로 증명했다.

정답을 찾는 손보다

더 나은 질문을 품는 손이

먼저 아름답다는 것을 알았고,

한 문장을 쓰기 위해

한 마음을 먼저 닦아야 한다는 것을

끝내 잊지 않았다.

우등이라는 말은

대개 지나간 성취의 이름이지만

그대에게 그것은

사람을 잃지 않는 품격의 다른 이름이었다.

흔들리지 않는 성실이 있었고,

기울어지지 않는 겸손이 있었다.

받은 도움을

한 번도 가벼이 여기지 않았고,

따뜻한 손길을

운으로 부르지 않고

은혜로 기록할 줄 알았다.

그대의 삶에는

기도의 숨결이 늘 있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이

입술의 선언으로 끝나지 않고

몸의 방향으로 이어지는 것을

그대의 걸음에서 보았다.

세상은 자주

스스로의 힘만을 신앙처럼 말하지만

그대는 알고 있었다.

사람이 마음으로 길을 계획할지라도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이

따로 계심을.

그래서 그대는

무너지지 않았다.

시간이 거칠게 몰려와도

그대는

바람 앞의 촛불이 아니라

비를 맞아도 꺼지지 않는 심지였다.

어둠 속에서 더 단단해지는

작은 불씨의 근성을 지녔다.

학문이 삶을 밀어내지 않게,

삶이 학문을 가두지 않게,

그대는

두 세계의 문을 함께 열었다.

사랑을 품고도 공부를 잃지 않았고,

공부를 안고도 사랑을 놓치지 않았다.

결혼은

그대에게 쉼이었고

또 다른 성실의 시작이었다.

남편 또한

같은 하늘 아래서

배움의 길을 걷는 사람.

서로의 꿈을

서로의 짐으로 만들지 않고

서로의 등불로 만들 줄 아는

귀한 동행이었다.

그리고 그대는

한 아이의 웃음을 품었다.

세상에서 가장 작고 연약한 존재가

사람을 가장 크게 만든다는 것을

그대는 안다.

품은 아이는

그대의 인생에 새긴

가장 따뜻한 논문이며,

가장 눈부신 결론이었다.

이제 그대는

더 넓은 바다로 나아가

미국이라는 먼 물결 위에서

자신의 학문을 띄운다.

그러나 그대의 언어는

어디서든 같은 뿌리로 향한다.

사람을 살리는 문장,

사람을 낮추는 지혜,

사람을 품는 진실.

학자는

세계를 해석하는 자가 아니라

세계를 더 정직하게 바라보는 자라 했다.

그대는

서둘러 말하지 않는다.

충분히 읽고,

충분히 견디고,

충분히 생각한 뒤에야

한 문장을 내놓는다.

그 느림 속에

그대의 품격이 있다.

조은비.

그대의 이름은

겨울 창에 맺힌 이슬처럼

차갑게 빛나지 않는다.

외려

햇볕이 스며들 때

비로소 드러나는

투명한 빛의 결이다.

나는 안다.

그대는 앞으로

큰 이름을 얻기보다

사람을 얻는 학자가 될 것이다.

세상을 흔드는 학문보다

사람을 살리는 학문을 택할 것이다.

그리고 그 길은

더디지만 오래 가는 길이며,

많이 말하지 않아도

누군가의 삶을 바꾸는 길이다.

그대가 서 있는 자리마다

낮은 곳을 밝히는 등불 하나

조용히 켜질 것이다.

요란하지 않게,

그러나 분명하게.

인연이 학문이 되고,

학문이 삶이 되었다.

그대는

그 문장을 살아낸 사람이다.

그리고 이제

그 삶이 다시

누군가의 길이 될 것이다.

ㅡ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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