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테이프로 이어 붙인 빛 ㅡ청람 김왕식
청테이프로 이어 붙인 빛 2026.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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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테이프로 이어 붙인 빛
청람 김왕식
지하철 안은 이상하리만큼 조용했다.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마치 예배당의 긴 의자에 앉아 묵묵히 기도하는 신도들처럼.
그러나 손끝이 붙잡고 있는 것은 성경이 아니라 휴대폰이었다.
스크린에서 쏟아지는 빛이 얼굴을 희게 만들고, 그 빛은 각자의 눈동자에 작은 파도처럼 흔들렸다.
오늘도 도시의 아침은 전파로 움직이고, 침묵은 데이터로 채워졌다.
열차가 흔들릴 때마다 사람들의 몸이 한 번씩 기울었다.
누군가는 하품을 삼켰고, 누군가는 이어폰 속으로 더 깊이 숨어들었다.
이 풍경을 멀리서 보면, 한 칸의 객실이 아니라 하나의 바다처럼 보일 것이다.
각자 자기 섬에 갇혀, 서로의 존재를 모른 채 떠 있는 바다.
눈은 뜨고 있는데, 마음은 닫혀 있었다.
그때 노인석 한쪽에 앉은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대략 여든쯤 되어 보이는 노인이었다.
등은 조금 굽었으나, 그 굽음은 패배의 모양이 아니라 세월을 오래 견뎌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겸손처럼 보였다.
검은 테 안경을 쓰고 있었다.
그런데 그 안경 다리 한쪽이 부러져 있었다.
청테이프로 여러 겹 감아 놓은 흔적이 보였다.
누군가 새것을 권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버리지 않았다.
부러진 것을 버리는 대신, 붙잡아 살려 두었다.
그 모습이 오래된 삶의 방식처럼 느껴졌다.
깨진 것을 곧장 폐기하는 시대에, 그는 “고쳐 쓰는 사람”이었다.
세상은 늘 새로움을 숭배하지만, 그에게 새로움은 삶의 목표가 아니라 선택지 중 하나였을 뿐이다.
그의 청테이프는 가난의 표시가 아니라, 생의 태도였다.
인생은 부러진 자리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부러진 자리를 감싸며 이어지는 것이라는.
노인은 두꺼운 렌즈 너머로 책을 보고 있었다.
영문 서적이었다.
글자들은 작고 빽빽했고, 젊은이들조차 읽다 포기할 법한 밀도를 품고 있었다.
그 책도 안경만큼 낡아 있었다.
모서리는 닳아 있었고, 표지는 여러 번의 손길을 견딘 빛을 띠고 있었다.
책장이 넘어갈 때마다 종이에서 오래된 시간의 냄새가 날 것 같았다.
그는 화면을 넘기지 않았다.
그는 페이지를 넘겼다.
세상은 손가락 하나로 모든 것을 바꾸려 하지만, 그는 한 줄 한 줄을 품고 가는 사람처럼 보였다.
열차는 역을 지나며 광고판의 불빛을 잠깐씩 얼굴에 던지고 사라졌다.
누군가는 주식 그래프를 보았고, 누군가는 게임 화면에 몰두했고, 누군가는 짧은 영상 속 웃음에 잠시 숨을 빌렸다.
모두가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 노인만은 “바라보는 법”이 달랐다.
그의 눈빛은 밝았다.
늙어서 밝은 눈이 아니라, 오래 읽어서 밝아진 눈이었다.
세상을 많이 살아서 흐려진 것이 아니라, 세월을 통과하며 더 맑아진 빛이었다.
나는 순간, 지하철이 하나의 도서관처럼 느껴졌다.
단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책 대신 화면을 펼쳐 들고 있었고, 그 노인만이 종이를 펼쳐 들고 있었을 뿐이다.
기도하는 듯 고개 숙인 사람들 사이에서, 그는 조용히 한 문장을 붙잡고 있었다.
마치 흔들리는 열차의 진동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촛불처럼.
바람이 불어도 꺼지지 않는 작은 불빛처럼.
그가 읽고 있는 내용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철학일 수도, 역사일 수도, 소설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그가 아직도 “배우는 사람”이라는 사실이었다.
나이는 종종 사람에게 면허를 준다.
이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면허.
이제는 세상을 탓해도 된다는 면허.
그러나 그는 그 면허를 쓰지 않았다.
그는 늙음으로 쉬지 않았고, 늙음으로 포기하지 않았다.
그때 알았다.
인생에서 진짜 늙음은 주름이 아니라 호기심이 사라지는 순간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그리고 진짜 젊음은 피부가 아니라 마음의 페이지가 계속 넘어가는 데 있다는 것을.
열차가 다음 역에 멈추었다.
문이 열리고 찬 공기가 한 번 들어왔다가, 다시 문이 닫히며 객실의 온도가 돌아왔다.
그 노인은 변함없이 책을 읽었다.
누군가는 내리고, 누군가는 타고, 도시의 하루는 그렇게 교체되었지만
그의 집중은 흔들리지 않았다.
부러진 안경다리의 청테이프가, 오히려 그의 삶을 더 단단하게 붙여 주는 매듭처럼 보였다.
그 순간 지하철은 더 이상 삭막한 통로가 아니었다.
아무도 서로를 알지 못하는 군중 속에서, 한 사람의 묵묵한 독서가 작은 따뜻함이 되어 객실을 덮었다.
어쩌면 삶이란, 저마다의 흔들리는 칸에서
자기만의 빛을 꺼뜨리지 않으려는 노력일지 모른다.
고개 숙인 사람들 사이에서,
그 노인은 가장 고요하게 서 있는 등대였다.
낡았지만 무너지지 않고,
부러졌지만 포기하지 않으며,
어둡지만 끝내 읽어 나가는 한 줄의 빛이었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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