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송향 임솔내 시인의 <목어> ㅡ닳아 맑아지는 울림, 목어의 반야용선般若龍船 ㅡ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하다

송향 임솔내 시인의 <목어> ㅡ닳아 맑아지는 울림, 목어의 반야용선般若龍船 2026.01.28
송향 임솔내 시인의 <목어> ㅡ닳아 맑아지는 울림, 목어의 반야용선般若龍船

□ 송향 임솔내 시인

목어

시인 송향 임솔내

파도가 한 번씩 들고날 때마다

삼색 등비늘 엷어갑니다

추억은 퇴색할수록 곱다고

단풍 든 오방색이 바다 따라 갑니다

물길 오르내리며 내었을 길을

가을도 따라갑니다

지금은 눈뜨고 매달려 바다를 듣지만

다 옅어지고 나면

그 몸 뒤집어 *반야용선般若龍船 같으시다

*반야용선 般若龍船ㅡ 불교에서는 사바세계에서 피안(彼岸)의 극락정토로 건너갈때 타고 간다는 상상의 배.

송향 임솔내 시인의 <목어>

ㅡ닳아 맑아지는 울림, 목어의 반야용선般若龍船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송향 임솔내 시인의 〈목어〉는 깊은 산사 한 켠 정경에서 먼저 떠오른다. 송풍이 지나갈 때마다 솔잎은 제 향을 감추지 못하고, 그 향은 사람의 마음을 씻는 맑은 숨이 된다.

고즈넉한 산사에 걸린 목어 하나, 그 앞에 오래 서 있는 시인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송향이라는 이름은 단지 호가 아니라 시의 체질이다. 그의 시는 번쩍이는 새로움이 아니라, 오래된 마음을 새로 씻게 하는 신선함으로 다가온다. 〈목어〉는 그 신선함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를 가장 정갈한 언어로 보여 준다.

이 시는 “닳아감”을 통해 더 맑아지는 존재의 윤리를 말한다. 파도가 한 번씩 들고날 때마다 “삼색 등비늘”이 엷어진다는 첫 문장은 삶의 시간이 어떤 방식으로 인간을 깎아내는지 단숨에 포착한다.

여기서 삼색 비늘은 바다의 생물학적 표면을 넘어, 산사에 걸린 목어의 몸을 디테일하게 그려내는 색채이기도 하다. 햇빛과 그늘 사이를 오가며 비늘처럼 겹친 색이 엷어지는 모습은 마치 한 폭의 수채화처럼 번진다. 선명함이 사라지는 자리에서 외려 더 깊은 풍경이 드러난다.

이 “엷어짐”은 상실이 아니라 정화다. 살면서 붙여 온 장식과 허영과 과잉의 감정이 파도의 손길에 의해 한 겹씩 벗겨지고, 그 끝에서 본래의 결이 드러난다.

시인은 바로 그 지점에서 말한다. “추억은 퇴색할수록 곱다.” 퇴색은 대개 허무로 읽히기 쉽지만, 임솔내 시인은 퇴색을 숙성으로 바꾸어 놓는다. 선명한 기억에는 욕망이 섞이고, 상처에는 날이 서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바래면 모서리가 닳고, 격해진 감정은 가라앉으며, 남겨야 할 것만 남는다. 그때 추억은 비로소 곱다.

인간이 자기 삶을 조금 더 부드럽게 품을 수 있게 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이 시의 윤리는 날카로운 깨달음이 아니라, 둥글게 닳아가는 마음의 변화로 제시된다.

“단풍 든 오방색이 바다 따라 갑니다”에서 색은 단지 아름다움이 아니라 질서가 된다. 오방색은 전통의 색채이면서 동시에 세계를 정돈하는 방식이다. 바다를 따라 흐르는 단풍빛은 삶의 흔적들이 흩어지며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제 자리를 찾아 정리되는 과정처럼 보인다. 가을이란 결국 마음이 스스로를 추슬러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려는 계절이다.

이 시에서 바다는 기억을 삼키는 무덤이 아니라, 기억을 길 위로 떠나보내는 큰 길이다. 떠남은 허무가 아니라 건너감이며, 건너감은 수행이 된다.

“물길 오르내리며 내었을 길을 / 가을도 따라갑니다”는 길의 탄생을 의지의 독점에서 풀어 놓는다. 인간은 자기 힘으로만 길을 내지 않는다. 물길이 오르내리며 길을 내듯, 삶의 오르막과 내리막이 길을 만든다. 그 길 위로 가을이 따라온다는 말은, 시간이 깊어질수록 성찰이 뒤따라온다는 뜻이다. 젊은 날에는 앞만 보고 달리지만, 어느 순간 계절이 뒤에서 걸어와 말없이 등을 만진다. “이 길이 어떤 마음의 방향이었는가.” 이 물음이 삶을 늦게나마 정직하게 만든다.

특히 “지금은 눈뜨고 매달려 바다를 듣지만”이라는 구절은 〈목어〉를 바다의 풍경에서 수행의 자리로 옮겨 세운다. 시인은 바다를 본다고 하지 않고 듣는다고 한다. 보는 일은 판단으로 기울기 쉽고, 듣는 일은 받아들임으로 깊어진다. 목어는 본래 잠들지 말라는 경계의 상징이다.

허나, 이 시에서 그 경계는 폭력적이지 않다. 그저 오래 듣게 한다. 파도의 숨, 시간의 마모, 말보다 깊은 침묵의 울림. 목어는 타인을 흔들어 깨우는 도구가 아니라, 먼저 자기 자신을 깨우는 울림이 된다.

마지막 “다 옅어지고 나면 / 그 몸 뒤집어 반야용선 같으시다”에서 시는 완성의 높이에 도달한다. 옅어짐의 끝은 소멸이 아니다. 뒤집힌 몸은 배가 된다. 반야용선般若龍船은 사바에서 피안으로 건너갈 때 타는 상상의 배다. 이때 반야는 지식의 과시가 아니라, 건너가게 하는 지혜의 형상이다.

삶이 닳아 얇아진다는 것은 결국 허무해지는 일이 아니라, 무거운 것을 내려놓고 건너갈 준비를 갖추는 일이다. 한 생이 닳고 닳아 마침내 누군가의 건너감을 돕는 배가 된다면, 그 삶은 실패가 아니라 완성이다. 자기 존재가 타인의 피안에 닿도록 쓰이는 순간, 삶은 가장 숭고한 자리로 변한다.

송향 임솔내 시인의 시 〈목어〉는 바다를 노래하지만, 실은 산사의 목어를 바라보는 마음의 자리에서 시작한다. 송풍 속 송향처럼 그의 시는 맑다. 꾸미지 않아 깊고, 서두르지 않아 오래 남는다. 파도가 들고나는 만큼 인간도 흔들리고, 흔들리는 만큼 비늘은 엷어진다. 그러나 그 엷어짐 끝에서 비로소 한 생은 반야용선이 된다.

이 시는 그 단순하고도 숭고한 진실을 군더더기 없는 언어로 오래 울리게 한다. 읽고 나면 말이 남지 않는다.

향이 남는다. 그 향은, 조용히 사람을 깨어 있게 만든다.

ㅡ청람

댓글

로그인 없이 바로 남길 수 있습니다. 나중에 본인이 수정·삭제하려면 이 댓글의 비밀번호를 정해 주세요. 서로 예의를 지켜 주세요.

  1. 불러오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