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

고맙고도 고마운 그 여직원 ― 신안군청 앞에서 다시 배운 ‘공직’의 온기 ㅡ 김관숙 교장선생님

고맙고도 고마운 그 여직원 ― 신안군청 앞에서 다시 배운 ‘공직’의 온기 ㅡ 김관숙 교장선생님 2026.01.28
고맙고도 고마운 그 여직원 ― 신안군청 앞에서 다시 배운 ‘공직’의 온기  ㅡ 김관숙 교장선생님

고맙고도 고마운 그 여직원

― 신안군청 앞에서 다시 배운 ‘공직’의 온기

살아가는 동안 가장 큰 자산은 결국 좋은 사람을 만나는 일이라고들 한다. 그 말이 진부하게 들릴 때도 있었으나, 어느 날은 그 말이 인생의 진짜 문장처럼 가슴에 박힌다. 나에게는 2025년 1월 28일, 설을 하루 앞둔 그날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그날의 기억은 아직도 손끝에 남아 있다.

바람이 매서웠고, 몸이 떨릴 만큼 추웠다. 오히려 오늘 파주의 혹한이 떠오를 만큼, 그날 신안의 추위는 뼛속을 파고들었다. 자은도가 고향인 나는 지인과 함께 자은도 두모리에 사는 셋째 여동생을 다녀온 뒤, 파주로 돌아가기 위해 길을 나섰다. 면소재지 구영리에서 버스를 탔지만, 뜻밖의 상황이 벌어졌다. 목포로 향하는 줄 알고 올랐던 버스가 무안 쪽으로 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기사님의 안내로 신안군청 앞에서 내려 목포행 버스를 기다리게 되었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추위가 단지 ‘춥다’로 끝나는 수준이 아니었다. 바닷가 쪽에서 불어오는 해풍은 칼날 같았고, 손발이 얼어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였다. 설 연휴를 앞둔 탓인지 버스도 결항이었다. 그 순간 느꼈다. 여행이나 이동 중 가장 무서운 것은 길을 잃는 일이 아니라, 몸이 무너지는 일이라는 것을. 사람은 길이 막히면 마음도 함께 막힌다.

살 길을 찾으려 군청에 들어가 정보를 얻고 싶었다. 그러나 공휴일 근무와 출입 문제로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바람은 더 매서워지고, 기다림은 길어지고, 몸은 점점 떨렸다. 결국 택시콜을 했다. 그런데 그 사이, 함께 간 지인이 군청에 사정을 전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곧, 믿기 어려운 일이 일어났다.

공휴일 근무 중이던 젊은 여직원 한 분이 우리 사정을 듣고는, 직접 운전해 목포역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얼어붙은 길 한복판에서 따뜻한 손길이 내려온 순간이었다. 우리는 택시를 취소했고, 그 여직원의 차를 타고 늦지 않게 목포역에 도착해 무사히 귀가할 수 있었다.

그 길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단순히 ‘차를 태워 준 친절’이 아니었다. 그날 그 순간, 우리에게는 그 무엇보다 살아갈 힘을 붙드는 도움이었다. 우리는 차 한 잔이라도 대접하고 싶었다. 최소한 고마움을 제대로 전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 여직원은 “빨리 들어가 봐야 한다”며 우리를 내려주고는 곧장 떠나버렸다. 남겨진 것은 미안함과 죄송함, 그리고 가슴 깊은 감사였다.

요즘은 공직자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마음이 예전 같지 않다.

뉴스는 불신을 키우고, 몇몇 사례는 사람들에게 “공직은 멀고 차갑다”는 인상을 남긴다. 그래서 많은 시민들은 공직자에게서 친절보다 절차를 먼저 떠올리고, 배려보다 규정을 먼저 기대한다. 그러나 나는 말하고 싶다. 공직은 원래 그런 것이 아니다. 공직은 시민을 향해 존재하고, 시민의 불편을 덜어주기 위해 세워진 이름이다.

그 여직원은 그 사실을 말로 증명하지 않았다.

그는 ‘정책’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서류가 아니라, 운전대를 잡았다.

설명이 아니라, 이동을 도왔다.

바로 이것이 시민들이 잊고 있던 공직의 본모습이다. 공직은 차가운 권한이 아니라, 뜨거운 책임이다. 공무원은 ‘자리’가 아니라 ‘사람’으로 시민 앞에 설 때, 비로소 신뢰를 회복한다.

나는 나이가 일흔을 넘었다.

어디에 어떻게 감사의 마음을 전해야 할지 몰라 1년이 훌쩍 지나버렸다. 하지만 늦었어도 오늘은 말하고 싶다. 그날 우리가 받은 도움은, 단지 한 번의 친절이 아니라 평생 잊지 못할 은혜였다. 그 여직원은 내게 은인 같은 사람이었다. 지금도 그곳에서 근무하고 계신지 몹시 궁금하다.

그리고 신안군청에 말하고 싶다.

신안군청에는 시민이 위기에 놓였을 때, 망설이지 않고 손을 내미는 공직자가 있다. 시민들은 그런 공직자를 통해 다시 신뢰를 배운다. 공직이 아직 따뜻하다는 사실을, 공무원이 아직 자랑스럽다는 사실을, 우리는 그날 배웠다.

신안군청, 최고입니다.

그리고 그날의 고마움을, 나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 시민 김관숙 드림

□ 김관숙 교장 선생님

교단에서 길러낸 눈으로, 공직의 온기를 증언하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김관숙 교장의 글은 단순한 감사 인사로 끝나지 않는다. 이 글이 유독 깊게 읽히는 까닭은, 글쓴이가 우연히 감동을 경험한 한 시민이 아니라 평생 교직에서 학생을 지도해 온 스승이기 때문이다. 김관숙 교장은 교단에서 수많은 아이들의 눈빛을 읽고, 마음의 흔들림을 붙잡아 주며, 때로는 길을 잃은 학생에게 다시 길을 내어주던 사람이다. 더 나아가 교장직을 수행한 교육자로서 공동체를 책임지고, 학교의 온도와 방향을 지켜온 진정한 스승이다. 이력 자체가 이미 한 사람의 품격을 말해준다.

그래서 이 글에는 교육자의 시선이 배어 있다.

추위와 결항, 불안과 막막함이 교차하던 순간을 단순한 ‘불편’으로 기록하지 않는다. 그 상황이 한 인간에게 어떤 무게로 내려앉는지, 약자의 순간이 얼마나 쉽게 존엄을 흔드는지, 그리고 그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안다. 교직이란 결국 사람을 살피는 일이었고, 김관숙 교장은 평생 그 일을 해온 사람이다. 그의 문장은 그 경험의 축적 위에서 단단해진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감동을 과장하지 않는 태도다.

김관숙 교장의 글은 눈물로 독자를 끌고 가지 않는다. 대신 사실의 결을 따라간다. 바닷바람이 칼날처럼 몰아치는 신안군청 앞, 길이 막히고 몸이 떨리던 순간, 공휴일 근무 중이던 한 여직원이 운전대를 잡아 목포역까지 데려다 준 사건. 그 장면은 특별한 영웅담이 아니라, 한 사람의 양심이 선택한 일상의 결정이다. 김관숙 교장은 그것을 ‘미담’으로 소비하지 않고, 공직의 본모습으로 끌어올린다. 이 지점에서 글은 개인의 경험을 넘어 사회적 의미를 획득한다.

요즘 시민들이 공직을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만은 않다.

불신은 습관처럼 번지고, 편견은 더 빨라진다. 그러나 김관숙 교장의 글은 그 불신을 정면으로 꾸짖지 않는다. 다만 한 장면을 보여준다. 서류가 아니라 운전대를 잡고,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시민을 돕는 공직자의 태도. 그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조용히 증언한다. 그래서 김관숙 교장의 글은 비난이 아니라 신뢰의 회복으로 독자를 이끈다.

무엇보다 김관숙 교장의 글의 마지막이 아름답다.

감사는 늦었지만 진심은 늦지 않았고, 그 고마움을 ‘평생’이라는 시간으로 책임진다. 스승이란 결국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삶의 태도로 보여주는 사람이다. 김관숙 교장은 그 태도를 글로 증명한다. 김관숙 교장이 교단에서 학생을 길러냈듯, 이 글은 독자의 마음속에도 조용한 믿음을 길러낸다.

한 여직원의 작은 배려가 한 사람의 하루를 살렸고,

김관숙 교장의 진실한 기록이 공직의 이름을 다시 세운다.

김관숙 교장의 이 글은, 그 자체로 따뜻한 교육이며 품격 있는 증언이다.

ㅡ청람 김왕식

댓글

로그인 없이 바로 남길 수 있습니다. 나중에 본인이 수정·삭제하려면 이 댓글의 비밀번호를 정해 주세요. 서로 예의를 지켜 주세요.

  1. 불러오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