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철 시인의 시 <폭포에서 베틀을 읽다> ㅡ폭포의 직조와 존재의 윤리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강병철 시인의 시 <폭포에서 베틀을 읽다> ㅡ폭포의 직조와 존재의 윤리 2026.02.09
□ 강병철 시인의 시집 《폭포에서 베틀을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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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포에서 베틀을 읽다
ㅡ천지연 폭포에서
시인 강병철
하얀 함성이 펄럭이는 무명천 자락
한 방울 한 방울, 물방울로 직조되었다
허공을 가른 햇살의 파동을 날실 삼아
물방울이 씨실이 되어 짜낸 깃발이다
암벽 베틀에서 이탈하지 않으려고
햇살은 흩날리는 물방울을 안고,
물방울은 햇살에 스며들며
꼬이면 풀고, 풀리면 서로 그러안는다
순간은 영원이 되고, 영원은 순간으로
아무도 떼어낼 수 없는 포옹
푸름 속 눈부신 절규로
지축을 향해 맑은 천을 짜 나간다
허공과 지축을 있는 무명천의 기도
눈으로만 들을 수 있는 함성
천만리 먼바다까지 짜 내려가
물처럼 살지 못한 이들 눈 감을 때
구름 되어 눈물 흘리겠노라고
그눈물 방울방울 씨실이 되는 날
폭포 되어 돌아오겠노라 펄럭인다.
*제19회 ‘푸른시학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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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철 <폭포에서 베틀을 읽다>
ㅡ폭포의 직조와 존재의 윤리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강병철 시인의 시 세계는 자연을 대상화하지 않는다. 자연을 사유의 구조로 읽는다. 이는 학문적 이력과 무관하지 않다. 국제정치와 평화 연구의 현장을 지나온 그의 삶은 세계를 고립된 사물들의 집합으로 보지 않는다. 관계와 긴장, 균형과 조율 속에서 움직이는 구조로 이해한다.
<폭포에서 베틀을 읽다>는 바로 그 인식이 시적 언어로 구현된 대표적 사례다. 폭포라는 풍경은 여기서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세계 작동 원리를 드러내는 장치다.
첫 연은 작품의 인식 방향을 단호하게 제시한다. “하얀 함성이 펄럭이는 무명천 자락”이라는 표현은 자연을 청각 · 시각 · 촉각이 중첩된 장면으로 환원한다. 폭포의 소리는 함성으로 변환되고, 물줄기는 천으로 전이된다. 이는 자연을 고정된 이미지로 바라보지 않고 생성 과정으로 읽어내는 태도다. “물방울로 직조되었다”는 진술은 세계가 완성된 실체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결과임을 강조한다. 존재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엮이는 것이다.
둘째 연에서 날실과 씨실의 은유는 시 전체의 중심 축으로 작동한다. 햇살과 물방울이 서로 다른 방향의 구조로 결합하며 직조를 이룬다.
이는 상반된 요소의 긴장이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낸다는 인식이다. 정치학자의 시선이 스며 있는 대목이다. 갈등은 파괴가 아니라 구성의 동력이며, 대립은 균형을 형성하는 조건이 된다. 자연의 장면을 통해 시인은 공존의 원리를 비가시적으로 제시한다.
셋째 연의 관계 묘사는 시인의 가치철학이 가장 선명한 지점이다. “꼬이면 풀고, 풀리면 서로 그러안는다.” 이 진술은 자연 현상의 설명을 넘어 관계 윤리의 선언이다. 얽힘과 해소의 반복 속에서 구조는 지속된다.
이는 평화를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 지속적 조정 과정으로 이해하는 관점과 맞닿아 있다. 긴장은 제거의 대상이 아니라 조율의 대상이다. 강병철의 세계 인식은 이 순환적 균형 위에 서 있다.
넷째 연에서 시간 감각은 존재론적 깊이를 획득한다. 순간과 영원이 서로를 치환하는 장면은 폭포의 운동성을 철학적 시간으로 확장한다. 낙하의 찰나는 사라지지만 흐름은 지속된다. 개인의 생은 유한하지만 관계의 구조는 이어진다.
이는 역사와 인간을 함께 사유하는 시인의 시선이다. 존재는 사라져도 관계의 직물은 남는다. 이 통찰은 작품의 사유 밀도를 한 단계 끌어올린다.
후반부는 윤리적 확장으로 나아간다. “물처럼 살지 못한 이들”이라는 표현은 생의 경직과 상처를 암시한다. 폭포는 구름이 되어 눈물을 흘리겠다고 말한다.
이는 자연의 순환을 넘어 존재의 위로 구조를 제시한다. 고통은 단절되지 않고 다시 세계 속으로 편입된다. 눈물은 다시 씨실이 되고, 씨실은 다시 직조를 만든다. 회복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 여기서 드러난다. 시인의 인간관은 연민을 넘어 연결의 윤리 위에 놓인다.
작품의 미학적 특징은 과잉 장식의 배제다. 언어는 화려하지 않으나 구조는 치밀하다. 폭포를 베틀로 읽어내는 인식 전환 자체가 미학이다. 이는 사물의 표면을 넘어서 구조를 바라보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시는 감정의 분출이 아니라 인식의 재배열로 완성된다. 자연은 이미지가 아니라 사유의 장이 된다.
강병철 시인의 시적 미의식은 관계 중심적 세계관으로 요약된다. 존재는 고립된 단위가 아니라 연결된 직물의 일부다. 햇살과 물방울처럼 서로 다른 요소가 결합할 때 세계는 비로소 형태를 얻는다. 폭포는 그 결합의 지속적 현현이다.
따라서 이 작품은 자연 찬미가 아니라 존재 이해의 은유 체계다.
요컨대, <폭포에서 베틀을 읽다>는 풍경의 서정에 머물지 않는다. 세계를 직조의 구조로 해석하는 사유의 시다. 폭포는 낙하가 아니라 연결의 운동이며, 직조는 기술이 아니라 존재 방식이다. 강병철은 자연 속에서 관계의 윤리를 발견하고, 그것을 맑고 단단한 언어로 짜 올린다.
이 작품은 읽히는 시가 아니라 사유하게 만드는 시다. 폭포의 물결 속에서 세계가 엮이는 방식을 바라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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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철 시인의 시에 부쳐
절벽의 숨결 위에 걸린 흰 직물
빛과 물이 서로의 길을 짠다
낙하는 흩어짐이 아니라
존재를 엮는 낮은 노동이다
공중에 당겨진 햇살의 줄기
물방울은 떨림으로 매듭을 맺고
돌의 깊은 이마에 기대어
시간은 북처럼 왕복하며 결을 남긴다
엉킨 세계의 실타래마다
포옹으로 풀리는 침묵의 기술
순간의 이슬이 영원을 적시고
영원의 숨결이 다시 흐름을 낳는다
굳어 흐르지 못한 마음 곁에
한 폭의 물소리 놓아 두며
직조되는 삶을 오래 바라본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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