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애 시인의 시 <복사꽃 길> ㅡ 꽃이 지나간 자리의 빛 ㅡ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유동애 시인의 시 <복사꽃 길> ㅡ 꽃이 지나간 자리의 빛 2026.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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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사꽃 길
시인 유동애
창 밖에 보이는
자전거길에
복숭아꽃이 피었다.
햇살이 물결치던 어느 날,
그 길을 걸어보리라
내 안의 봄이 아직 젖어 있을 때.
비 갠 오후,
잎들만 바람에 흔들렸다.
꽃이 머물던 자리마다
잠시의 빛이 스러진다.
아, 피어 있는 날들은
저토록 한순간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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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애 시인의 시 <복사꽃 길>
ㅡ 꽃이 지나간 자리의 빛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꽃이 지나간 자리의 빛을 따라
창밖의 자전거길에 핀 복사꽃 한 줄기는 단순한 풍경이 아니다. 그것은 삶이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에 대한 조용한 선언이다.
유동애 시인의 시선은 언제나 거창한 사건을 향하지 않는다. 외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계절의 모서리, 스쳐 지나가는 빛의 기척, 잠깐 머물다 사라지는 꽃잎의 숨결을 향한다.
해서, 그의 시를 읽는 일은 자연을 보는 일이 아니라 삶의 시간을 만져 보는 일이 된다.
복사꽃이 핀 자전거길은 이동의 통로이면서 기억의 길이다. 누군가는 출근을 위해 지나고, 누군가는 아이의 손을 잡고 건너며, 또 누군가는 아무 이유 없이 걷는다.
시인은 그 길 위에 꽃을 세워 둔다. 그것은 장식이 아니라 삶의 속도를 늦추는 장치다. 꽃이 피었다는 사실 하나로 일상의 직선은 곡선이 되고, 지나감은 머묾으로 바뀐다. 이 변환의 감각이 바로 유동애 시인의 미의식이다.
그는 사물을 바라보지 않는다. 사물 속에 잠긴 시간을 건네받는다.
“내 안의 봄이 아직 젖어 있을 때.”라는 진술에는 그의 삶의 태도가 스며 있다. 봄을 외부의 계절로 두지 않고 내면의 상태로 받아들이는 시선이다.
이는 생의 시간 앞에서 스스로를 말리거나 굳히지 않으려는 의지다. 살아간다는 것은 건조해지는 일이 아니라, 여전히 젖어 있을 수 있는 감수성을 지키는 일임을 그는 알고 있다.
그의 시가 담백하면서도 따뜻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것은 경험을 과시하지 않고, 감각을 남겨 두는 삶의 태도에서 비롯된다.
비 갠 오후의 장면에서 꽃이 사라지고 잎만 흔들릴 때, 시는 비로소 깊어진다. 피어 있음이 아니라 떠나감의 자리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꽃이 머물던 자리마다 스러지는 빛을 포착하는 순간, 시인은 존재의 본질을 드러낸다. 아름다움은 지속에 있지 않고 흔적에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시인의 삶이 쌓아 온 시간과도 닮아 있다. 화려한 발화보다 조용한 지속을 선택하고, 드러남보다 남겨짐을 택해 온 태도다. 그가 써 온 문장은 빛나는 순간의 기록이 아니라 사라진 뒤에도 남는 온기의 기록이었다.
“피어 있는 날들은 한순간이었다”는 깨달음은 체념이 아니다. 그것은 시간 앞에 선 자의 평온한 수용이다. 피어남이 짧기에 더욱 귀하다는 인식, 머묾이 아니라 스침 속에서 삶의 의미를 읽어내는 태도다.
유동애 시인의 세계는 여기에서 완성된다. 그는 시간을 붙잡으려 하지 않는다. 지나감을 받아들이며, 그 지나감 속에서 삶의 결을 짚어낸다. 그래서 그의 시는 결코 소란스럽지 않다. 낮은 음성으로 말하지만 오래 남는다.
복사꽃 길은 결국 하나의 은유다. 인간의 생이 걷는 길, 피고 지는 기억의 길, 그리고 다시 계절을 맞이하는 순환의 길이다. 시인은 그 길 위에서 꽃을 바라보며 자신을 본다. 그리고 독자 또한 그 꽃 앞에 세운다.
이 시가 아름다운 이유는 풍경을 보여주기 때문이 아니라, 독자가 자신의 시간을 돌아보게 하기 때문이다.
꽃은 진다.
그러나 꽃이 지나간 자리에는 빛이 남는다. 유동애 시인의 문장은 바로 그 빛을 오래 바라보는 시선이다. 그것은 사라짐을 애도하는 눈이 아니라, 사라짐 속에서도 생을 이어 가는 온기를 발견하는 눈이다.
하여, 그의 시를 읽고 나면 계절 하나가 마음 안에 다시 피어난다.
복사꽃은 길 위에서 지지만, 시인의 문장은 독자의 시간 속에서 다시 피어난다. 그것이 그가 살아온 삶의 방식이며, 그가 남기는 문학의 온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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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사꽃 물결에 스미는 시간
창가에 서면 어느 날 풍경이 아니라 빛의 결이 먼저 눈에 닿는다. 햇살이 바람의 등에 기대어 흐르고, 공기는 물안개처럼 얇게 번진다. 그 위에 복사꽃이 피어 있다. 꽃은 피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색을 풀어 놓는다. 엷은 분홍이 허공에 스며들어 길 위에 고운 물빛을 남긴다. 유동애 시인의 삶을 떠올리면 바로 그런 번짐이 먼저 다가온다. 또렷한 윤곽보다 마음을 적시는 색의 숨결, 그것이 그의 시간의 결이다.
자전거길은 지나감의 통로이지만, 그의 눈에선 머묾의 마루가 된다. 꽃잎 하나가 떨어질 때마다 길은 잠시 숨을 고른다. 그 숨결 속에서 그는 계절의 속살을 더듬는다. 꽃을 본다는 것은 피어 있는 사물을 보는 일이 아니라, 그 사물 속에 잠든 시간을 듣는 일이다. 유동애 시인의 문장은 바로 그 시간을 길어 올린 이슬 같은 것이다. 조용히 맺혔다가 읽는 이의 마음에 스며든다.
햇살이 물결치던 어느 날 길을 걷겠다는 그의 마음에는 바람결 같은 다짐이 담겨 있다. 그것은 발걸음이 아니라 심연의 순례다. 내면에 아직 봄물이 고여 있는지, 감각의 샘이 마르지 않았는지 스스로를 비추어 보는 일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을 쌓는 일이 아니라, 마음속 연못의 잔물결을 지켜보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 잔물결 위에 언어가 떠오르고, 그 언어는 다시 시가 된다.
비 갠 오후,
꽃은 이미 흩어지고 잎새만 은빛으로 흔들린다. 그러나 그 자리는 비어 있지 않다. 떠난 꽃의 향내가 여전히 공기 속에 머문다. 사라짐은 허공이 아니라 여백이다. 유동애 시인은 그 여백을 오래 바라본다. 찬란함보다 스러짐의 고요를 귀히 여기는 태도, 그것이 그의 삶의 미학이다. 사라진 자리에서 빛나는 미세한 떨림을 읽어 내는 눈, 그 눈이 그의 문장을 이루어 왔다.
그의 삶은 농채濃彩가 아니라 담채 淡彩다. 진한 획 하나로 세상을 긋지 않는다. 물을 머금은 붓끝으로 색을 번지게 두고, 번진 색이 서로 스미도록 기다린다. 기억과 계절, 그리움과 현재가 한 폭의 종이 위에서 서로를 적신다. 그렇게 번진 흔적 속에서 인간의 마음은 비로소 제 빛을 얻는다.
꽃이 피어 있는 날들이 한순간임을 그는 안다. 그것을 덧없다 말하지 않는다. 짧기에 더 눈부시고, 스쳐 가기에 더 오래 남는다는 것을 이미 삶으로 배웠기 때문이다. 그는 붙잡지 않는다.
다만 바라본다. 그리고 바라본 시간을 고운 언어로 빚어 둔다. 그 언어는 물비늘처럼 반짝이며 독자의 마음 위에 내려앉는다.
복사꽃 길은 한 인간의 내면과 닮아 있다. 계절이 머물다 떠나고, 색이 번졌다가 사라지는 자리. 그러나 사라짐은 끝이 아니다. 마른 뒤에도 종이에는 물빛의 흔적이 남는다.
유동애 시인의 삶 또한 그러하다. 지나간 날들은 지워지지 않고, 마음의 결 위에 고요히 스며든다.
꽃은 스러져도 빛은 남는다. 바람은 지나가도 숨결은 남는다. 그의 문장은 바로 그 남겨진 것들의 이름이다. 복사꽃이 지는 오후, 길 위에 남은 은은한 색처럼 그의 삶은 조용히 번져 오래 머문다.
세월이 흐른 뒤에도 누군가의 마음속에 다시 피어날, 한 점의 물빛으로.

□
복사꽃 길에서
길 위에 번진 봄 한 겹
햇살이 꽃잎의 숨을 풀어 둔다
피어남은 머무름이 아니라
빛을 남기고 지나가는 기술
바람의 손끝에 흔들리던 색
시간의 물에 잠시 풀렸다가
마음의 종이에 스며든다
지워지지 않는 연한 분홍
꽃이 떠난 자리에서도
계절은 여전히 걸어간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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