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

윤동주에 미친 사람, 박해환 ㅡ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윤동주에 미친 사람, 박해환 2026.02.20
윤동주에 미친 사람, 박해환

■ 윤동주 문학촌 박해환 촌장

□ 박해환 촌장 문학박사 학위 받다

윤동주에 미친 사람, 박해환

한 사람이 있다.

그는 시를 쓰지 않는다.

그러나 시를 산다.

박해환이라는 이름의 이 남자는

어느 날부터

윤동주를 자신의 삶의 중심에 놓았다.

처음에는 한 시인을 존경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존경은 곧

책장을 넘기는 습관을 넘어

삶의 방향을 바꾸는 사건이 되었다.

서울 올림픽공원

메달리스트 전당에서

손기정 옹과 나눈 한 마디가

그의 인생을 틀었다.

“나보다 윤동주가 더 절실하다.”

그 말은

한 시대를 달린 마라토너의 유언처럼

그의 가슴에 남았다.

그날 이후

박해환의 삶은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지린성에 방치된

윤동주의 생가를 떠올리며

그는 자신의 이름부터 고쳐 썼다.

윤동주의 아명,

해환(海煥).

그 이름을

자기 호적에 올렸다.

존경은

이름을 부르는 일에서 시작되지만

헌신은

이름을 버리는 일에서 완성된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내려놓고

윤동주의 이름을

삶의 문패로 걸었다.

이후

문학은 그의 학문이 되었고

장소는 그의 사명이 되었다.

12년의 시간을 건너

가천대학교에서

‘윤동주 문학의 장소성과 문화 자원화 방안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 논문은

학위 취득을 위한 문장이 아니라

한 시인을

다시 이 땅에 살게 하기 위한 설계도였다.

서울 종로의

윤동주 시인의 언덕,

윤동주 문학관 설치,

윤동주문학대상 제정,

문학지 『서시』 창간.

이 모든 일은

한 사람의 집요한 반복에서

시작되었다.

2013년

그는 천안 광덕면 무학리

무학산 자락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윤동주문학산촌’이라는

이름 없는 마을을

하나의 시로 짓기 시작했다.

그곳에는

시인의 묘지에서 가져온 흙이 뿌려져 있다.

우물 목판,

생가의 흔적,

낡은 사진 한 장까지

모두가

윤동주의 귀향을 기다리는

준비물이다.

2022년

무호적 상태였던 시인의 본적이

정부 결정으로

‘독립기념관로 1’로 부여되었다.

주소가 생겼다는 것은

돌아올 자리가 생겼다는 뜻이다.

박해환은

이제

그 자리에

생가를 세우려 한다.

복원은

건물을 다시 짓는 일이 아니다.

잊혀진 시간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일이다.

그는 말한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윤동주의 삶을

책이 아니라

공간으로 만나게 하고 싶다고.

해서

10만 평 문학산촌 중

필요한 부지를

기꺼이 내놓겠다고.

이 일은

혼자의 꿈이 아니다.

서른세 명의 발기인이

윤동주 생가 복원 추진위원회를

결성했다.

이제

한 시인의 귀향은

한 도시의 과제가 되었다.

사람들은

그를 두고 말한다.

윤동주에 미친 사람이라고.

그러나

어떤 미침은

역사를 다시 움직인다.

이름을 바꾼다는 것은

인생을 건다는 뜻이다.

박해환은

지금도

윤동주라는 이름을

자신의 하루 속에

다시 쓰고 있다.

ㅡ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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