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연 김상희 시인의《그대가》 ㅡ존재를 맑히는 반복의 언어 ㅡ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청연 김상희 시인의《그대가》 ㅡ존재를 맑히는 반복의 언어 2026.02.27
□ 청연 김상희 선생
■
그대가
시인 청연
내 소중한 사랑이라
좋습니다
그대가
내 영혼의 주인이라
좋습니다
그대가
내 그리움의 주인공이라
좋습니다
그대가
내가 사는 이유가 되어
좋습니다
그대가
빛과 그림자를 다 담고 있어
좋습니다
그대가
잿빛하늘에서도 떠오르는 모습
좋습니다
그대가
겹겹이 쌓인 산처럼 신비한 모습
좋습니다
그대가
그대가 있고 내가 있어
좋습니다
그대가 있어
그대가 있어
그대가,
■
청연 김상희 시인의《그대가》
ㅡ존재를 맑히는 반복의 언어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청연 김상희 시인의 《그대가》는 구조적으로 단순하다. 그러나 그 단순함 속에는 한 존재를 향한 전적인 수용과 헌신의 미학이 응축되어 있다. 이 시는 새로운 비유를 과시하지 않는다. 화려한 상징을 앞세우지도 않는다. 대신 동일한 문장을 반복한다. “좋습니다, 그대가.” 이 반복은 단순한 감정의 강조가 아니다. 그것은 존재의 확인이며, 사랑을 삶의 중심에 두는 태도의 선언이다.
시의 첫 연에서 “내 소중한 사랑이라 좋습니다 / 그대가”라고 말할 때, 화자는 이미 선택을 마쳤다. 사랑은 조건이 아니라 전제다. 이어 “내 영혼의 주인이라 좋습니다”라는 고백은 관계의 깊이를 한 단계 더 밀어 올린다. 여기서 ‘주인’은 종속의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삶의 중심을 기꺼이 내어주는 신뢰의 표현이다. 청연의 사랑은 소유가 아니라 귀속이며, 지배가 아니라 헌신이다.
이 시에서 반복되는 “좋습니다”는 체념의 말이 아니다. 그것은 적극적 동의다. 사랑이 나를 흔들어도, 그리움이 나를 적셔도, 그 존재가 있음으로 좋다는 긍정. 이는 삶을 향한 근본적 낙관과도 맞닿아 있다. 청연의 시 세계가 연못 속 연꽃처럼 오염을 맑게 걸러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진흙 속에서도 스스로를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그는 감정의 복잡함을 통과해 가장 맑은 언어만 남긴다.
“빛과 그림자를 다 담고 있어 / 좋습니다 그대가.”
이 대목에서 시는 깊어진다. 사랑은 밝은 면만을 받아들이는 일이 아니다. 빛과 그림자를 모두 수용하는 태도, 그것이 성숙한 사랑이다. 여기에는 작가의 삶의 가치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인간은 불완전하다. 그러나 그 불완전함까지도 끌어안는 것이 사랑이며, 존재의 긍정이다. 청연은 사랑을 미화하지 않는다. 대신 온전하게 받아들인다.
“잿빛 하늘에서도 떠오르는 모습”과 “겹겹이 쌓인 산처럼 신비한 모습”은 사랑하는 이를 자연의 이미지로 치환한다. 잿빛 하늘은 고난의 시간이며, 겹겹이 쌓인 산은 깊이를 상징한다. 그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시간과 층위를 지닌 존재다. 연꽃의 뿌리가 진흙 깊이 내려가듯, 그의 사랑 또한 표면적 감상에 머물지 않는다.
마지막 연의 “그대가 있고 내가 있어 / 좋습니다”는 관계의 완성이다. 사랑은 일방의 감정이 아니라 상호 존재의 확인이다. ‘그대가 있어 내가 있다’는 고백은 곧 존재론적 연대의 선언이다. 여기에는 자아를 지우는 희생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더 또렷해지는 자아가 있다.
청연 김상희 시인은 삶을 정화의 과정으로 이해하는 시인이다. 그는 연못 속 연꽃처럼 오염된 세계를 통과하되 그 물을 머금지 않는다. 대신 맑은 결만을 이끌어 올린다. 그의 사랑은 감정의 과잉이 아니라 절제된 긍정이며, 소유의 욕망이 아니라 존재의 승인이다. 그러므로 이 시는 단순한 연가가 아니다. 그것은 한 인간이 타인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다시 확인하는 과정이다.
《그대가》는 반복의 힘으로 완성된 시다. 동일한 문장이 거듭될수록 감정은 얕아지지 않고 외려 깊어진다. 사랑은 설명이 아니라 다짐이라는 사실을, 청연은 조용히 증명한다. 그가 사랑하는 임 또한 그처럼 맑으리라는 믿음은, 시인의 영혼이 이미 맑은 연꽃이기 때문이다.
ㅡ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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