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

꽃비 속에 앉아 듣는 아침의 숨 — 마경덕 수필집 《봄의 문턱을 넘어온 포로들》을 읽고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하다

꽃비 속에 앉아 듣는 아침의 숨 — 마경덕 수필집 《봄의 문턱을 넘어온 포로들》을 읽고 2026.03.12
꽃비 속에 앉아 듣는 아침의 숨 — 마경덕 수필집 《봄의 문턱을 넘어온 포로들》을 읽고

아침의 목소리

시인 수필가 마경덕

어슴푸레 창문으로 스민다. 절반은 바람에 날아간 새들의 대화가 보드라운 솜털 같다. 저 참새들을 통역할 수 없을까.

옆집 나팔꽃이 필 때 골목 끄트머리 목련나무에서 아침을 먹고 점심은 우리 집 옥상 살구나무에서 때우고 저녁은 해지기 전 공원 감나무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있을까.

무거운 눈꺼풀로 화장실에 앉아 엿듣는 은밀한 새들의 언어가 옥상 빨랫줄에서 유월의 살구나무로 옮겨 앉는다. 간장 종지나 조개껍데기 한쪽에 담길 한 꼬집의 말은 맹물처럼 맑다.

이 소리는 눈 뜨자마자 변기에 멍하니 앉았을 때만 들린다.

이른 아침 잠깐 왔다가 해 뜨면 사라지는 속삭임이 허공의 실핏줄을 타고 번져간다

꽃비 속에 앉아 듣는 아침의 숨

— 마경덕 수필집 《봄의 문턱을 넘어온 포로들》을 읽고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마경덕 선생의 문장은 언제나 낮은 곳에서 시작한다. 거창한 사유의 언덕이 아니라 창문 틈으로 스미는 어슴푸레한 빛, 화장실의 적막한 순간, 옥상 빨랫줄의 흔들림 같은 가장 사소한 자리에서 그의 글은 생겨난다.

이번 수필집 《봄의 문턱을 넘어온 포로들》 역시 그러하다.

전 4부 131편의 수필은 거대한 사건의 기록이 아니라 하루의 미세한 떨림을 채집한 조용한 채광의 작업이다.

이 책은 지상에 내린 꽃비와 같다. 페이지를 넘기는 일은 그 꽃비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는 일이며, 독자는 어느새 봄날의 고즈넉한 둔덕 위 낡은 벤치에 앉아 호사를 누리는 초대객이 된다.

<아침의 목소리>는 그의 문체와 감각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어슴푸레 창문으로 스민다”라는 첫 문장은 이미 독자를 외부의 풍경이 아닌 내부의 청각으로 데려간다.

참새의 대화는 솜털처럼 가볍고, 그들의 약속은 나팔꽃과 살구나무와 감나무 사이를 오간다.

여기서 자연은 배경이 아니라 언어의 동반자다. 인간의 말이 닿지 않는 영역에서 외려 더 분명한 의미가 살아 움직인다. 그는 새들의 말을 통역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그 말을 들으려는 자세 자체를 문장으로 남긴다. 이때 그의 글은 설명이 아니라 경청이 된다.

마경덕 선생의 수필은 감각의 정교함으로 이루어진다. 그의 문장은 눈보다 귀가 먼저 깨어나는 시간에 머문다.

간장 종지나 조개껍데기에 담길 한 꼬집만큼의 언어, 맹물처럼 맑은 소리, 허공의 실핏줄을 타고 번지는 속삭임 같은 표현들은 그의 문장이 얼마나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섬세한지를 보여 준다.

이러한 표현은 장식이 아니라 삶의 본질에 닿으려는 태도에서 나온다.

하여, 그의 문장은 화려하지 않지만 오래 남는다.

이번 수필집 전체를 관통하는 미학은 ‘머묾’이다. 그는 서두르지 않는다. 외려 멈추어 서서 오래 바라본다. 그 멈춤 속에서 세계는 비로소 또렷해진다.

이는 그의 시집 《신발론》과 《사물의 입》, 《악어의 입속으로 들어가는 밤》에서 보여 준 사물 중심의 시선이 산문 속에서 더 넓게 확장된 결과다.

사물을 오래 바라보는 태도는 곧 사람을 오래 바라보는 태도로 이어지며, 그의 문장은 인간의 고독과 연약함을 향한다.

마경덕 선생의 수필은 또한 시적 사유와 생활의 경험이 만나는 자리에서 빛난다. 그는 일상을 서정으로 승화시키되 감상으로 흐르지 않는다.

그가 선택하는 언어는 언제나 구체적이며, 그 구체성은 삶의 실감에서 비롯된다.

북한강문학상 대상, 두레문학상, 모던포엠 문학상, 김기림문학상 본상 등 다수의 수상이 보여주듯 그의 문학은 이미 충분히 인정받았으나, 이번 수필집에서는 외려 더 낮고 조용한 울림이 돋보인다.

롯데백화점 문화센터와 AK문화아카데미, 강남문화원에서 시 창작을 가르치는 그의 현재 활동 또한 이 책의 문체와 닮아 있다. 가르침이 앞서지 않고 함께 걷는 태도, 설명하기보다 보여 주는 방식이 그의 글 속에도 그대로 스며 있다.

《봄의 문턱을 넘어온 포로들》은 봄을 기록한 책이 아니라 봄을 듣게 하는 책이다. 이 수필집을 읽는다는 것은 계절을 읽는 일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다시 듣는 일이다.

마경덕 선생의 문장은

소리 없이 내리는

꽃비와 같다.

맞고 나면

젖어 있는 줄도 모른 채

오래 향기로 남는다.

□ 마경덕 시인께 드립니다

여명의 숨결을 받아 적는 사람

이름 없는 빛이 창가에 기대면

당신의 문장이 먼저 숨을 쉰다

참새의 목울대를 건너온 속삭임

가장 가벼운 말들이 가장 깊어진다

투명한 물 위에 놓인 한 점 떨림

세상은 그 파문으로 깨어난다

당신은 늘 낮은 자리에서

작은 존재들의 높이를 밝혀 왔다

조개껍데기 속의 한 줌 언어처럼

고요를 오래 품어

봄은 당신의 문장에서 열리고

사물은 당신의 눈으로 말한다

꽃비 내리는 시간마다

당신의 침묵이 먼저 걸어간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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